[CEO칼럼]8월 23일 키코 판결이 갖는 의미

머니투데이 이성민 엠텍비젼 대표 | 2012.09.14 07:23
엠텍비젼은 은행과의 키코(KIKO) 계약으로 730억원 상당의 막대한 키코 손해를 당한 기업이다.

지난달 23일 씨티은행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재판부가 내린 '70% 승소' 판결이 여타 은행과의 소송에도 원용이 되면 엠텍비젼은 전체 손해금 중 510억원 상당을 배상 받게 된다. 키코 피해 발생 이전처럼 선도적인 IT중견기업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번 70% 승소는 4개 은행 중 1개 은행에서 성취한 것이지만, 기존 수백 건의 키코 판결과 달리 재판부가 처음으로 기업의 손을 사실상 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업들이 '환투기 기업'이라는 몰이해의 오명을 벗고 본연의 사업에 전념할 수 있는 단초를 열어준 것이다.

키코가 금융상품자체로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되, 분명한 것은 환율 관리에 미숙한 수출 중소기업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상품을 은행들이 신규상품 판매실적 경쟁으로 수백여 견실한 수출우량기업들에게 팔아 사업과 무관한 이유로 몰락하게 했다는 점이다.

모쪼록 이번 판결이 현재 계류 중인 대법원 및 고등법원의 관련 소송들에서 원용이 되거나, 은행들과의 합의로 조기 종결되어 기업들이 본연의 사업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엠텍비젼의 현재 시가총액이 320억원 수준인데 손해배상에 따라 수백억원의 유동성이 환수된다면 회사는 과거 최고의 반도체 팹리스 기업의 위상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엠텍비젼이 한때 시가총액 5000억까지 갔었던 회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피해의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게 된다.

키코는 워낙 복잡하고 난해한 금융공학이 적용된 금융상품으로 일반인들은 물론 금융업 종사자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재판과정에서도 상품이해에 많은 전문가의 도움과 시간이 필요해 심리가 지연됐고, 그 사이에 많은 피해기업들이 도산했다.

재판부는 은행 영업직원 조차도 상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쟁적으로 상품판매에 급급했기에 복합파생상품에 내재된 상상외의 위험성에 대해 은행들이기업에게 제대로 설명했을 리가 만무하다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간단한 수술을 하면서, 환자에게 시술이 잘못되면 만에 하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고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했다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생명을 담보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간단한 시술에 동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키코 상품도 회사의 생명까지 담보로 맡길 만큼 회사에서 꼭 가입해야 할 중요한 상품은 아니었을 것이다. 키코 상품이 기업의 환율 헤지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가입한 것이지, 자칫 기업이 도산될 수도 있다는 설명을 은행이 언급만 했었더라도, 키코에 가입할 기업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안전한 금융여수신이 주업인 은행이 키코 상품의 계약을 권유해와 가벼운 마음으로 가입한 것이다.

우리의 은행은 우리 사회에서 신용의 상징이다. 자신의 인감도장조차도 은행에 맡겨놓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의 상징이다.
그런 우리나라 은행들이 단순 이익집단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적응하기 어렵다. 최근에 터지는 국내 저축은행 사태, 카드 사태 등은 금융기관들의 도덕성에 문제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생각된다. 금융기관이 사회의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는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겠는가?

아마도 은행들은 키소 관련 항소를 준비할 것이지만, 피해를 입은 많은 키코 피해 기업들은 은행과 논리적인 다툼을 벌이는데 한계가 있다.

나 역시 3년 소멸시효에 걸리게 돼 어쩔 수 없이 마지막으로 소송에 참여를 했고, 마지막 재판에서 승소하는 눈물 어린 감격을 맛보았다. 그러나 마음이 즐겁지 않다. 기업이 은행과 다툴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다. 은행과 법정이 아닌 타협의 자리에서 만나고 싶다.

2심 고등법원, 3심 대법원까지의 지리한 공방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시장의 경쟁자들은 시시각각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 엠텍비전을 비롯한 키코 관련 기업들은 소송을 원만한 타협으로 빨리 종식시키고 기업 본연의 일에 매진하여 실추된 명예를 사업을 통해 되찾고 싶어 한다.

지금은 어쩌면 정부의 중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키코사태를 현 정부에서 잘 마무리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모두 큰 짐 하나를 더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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