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의 내부기강이 절실하다

머니투데이 최규일 한국축구사회 사무총장 | 2012.09.04 11:44

[최규일의 왓츠 업 사커]

요즘 국내 축구계는 나름 활황이다. '홍명보의 아이들'은 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프로축구도 올해 도입한 스플릿 시스템이 주효하며 후반기 개막의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표축구 혹은 프로축구의 이야기일뿐이다. 상대적으로 일반인의 관심이 덜한, 하지만 한국 축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아마 축구, 특히 학원 축구는 시름과 상처가 깊어가고 있다.

필자는 최근 제17회 무학기 전국고교대회(경남 함안군. 7월 21일~8월 2일)와 U-17 한국고교연맹전(경북 울진군.8월 17일~28일)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현장의 생생하지만 불만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요즘 일선 감독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어이없는 해프닝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사례 1.

제20회 백록기 고교대회가 열린 7월 24일 제주. 1승 1패를 기록한 수원공고는 제주 오현고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반드시 이겨야만 16강 진출이 가능한 수원공고는 후반 막판까지 3-2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종료직전 애매한 판정으로 동점골을 내줬다. 화가 난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은 선수들을 벤치로 불러들였다. 이때 주심은 추가시간을 알리는 푯말을 이용해 3이라는 숫자를 표시했다.

수원공고는 3분의 추가시간이 남은 것으로 알고 그라운드에 다시 나섰지만 주심은 바로 종료 휘슬을 불었다. 주심은 3분 안에 경기장에 나오지 않으면 몰수게임을 선언하겠다는 의미였다며 "경기 종료 여부는 심판의 고유 권한"이라고 했다. 승부차기승으론 16강 진출이 불가능한 수원공고는 다시 항의했고, 주심은 몰수패를 선언했다. 결국 이학종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당시 주심은 이후 경기일정이 남아있음에도 서울로 올라갔다.

사례 2.

언남고-진주고의 무학기 4강전이 열린 7월 30일. 언남고가 1-0으로 리드한 종료 2분전 양팀 선수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와중에 언남고 최승호 코치와 선수 1명이 퇴장을 당했다. 그런데 최 코치는 "경기 감독관이 싸움을 말리라고 해서 그라운드에 들어갔는데 레드카드를 받았다"고 어이없어 했다. 정종선 언남고 감독도 "우리 선수는 맞기만 했는데 퇴장을 당했다. 또 당시 상대팀은 벤치에 있던 선수들, 심지어 응원단까지 운동장에 난입했지만 우리 응원단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언남고 최 코치와 일방적으로 맞기만했다던 선수 역시 징계위원회 출석을 통보받았다.

두 해프닝은 당사자만의 일방적인 문제 제기가 아니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운동장엔 양팀 관계자들 외에 일반 축구팬들, 그리고 다음 경기에 나서기 위해 바로 코 앞에서 현장을 지켜본 타 팀 관계자들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당시 판정에 미흡함이 있음을 증언했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징계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축구회관에서 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언남고는 고교연맹전 결승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가던날이 장날'이라고 결승전에 때마침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볼라벤까지 겹쳐 이날 최승호 코치와 해당선수는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두 건에 대한 징계위원회 결과는 사뭇 달랐다. 언남고 건에 대해선 재조사를 지시했다. 당시 심판보고서와 경기감독관 보고서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언남고 측은 여전히 불쾌한 표정이다. 정종선 감독은 "애매한 판정 하나로 어린 선수들이 큰 상처를 받았고, 뒤숭숭한 분위기 탓에 우승의 감격도 반감됐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불거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학종 감독에겐 1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물론 수원공고는 이의신청을 할 예정이다. 이 감독은 "종전에도 애매한 판정에 당한 적이 있어서 우린 아예 모든 경기내용을 비디오로 녹화하고 있다. 또 당시 상황과 관련해 현장에 있던 많은 축구인들로부터 '판정이 잘못됐다'는 내용의 서면을 다수 받아두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비행기 타고 멀리(제주도)까지 갔는데 비상식적인 판정하나로 많은 것을 잃었다. 당시 심판이 우리 경기만 마치고 서둘러 서울로 간 것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해명조차 없었고, 우리 역시 이렇다할 소명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성의 수원공고 시절 은사로 유명한 이학종 감독은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한편 당시 징계위원회 결과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채 당사자들에게만 통보됐다. 이의신청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확정 판결'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과거엔 축구협회의 징계(상벌)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면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결과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공개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진 것이다. 최근 만난 모 언론사 부장은 "당시 징계위원회 결과를 취재하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축구)협회가 잘한 것만 부각시키려하고 치부는 감추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협회의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의 장막'이 처진 듯하다"고 개탄했다.

앞서 소개한 두 장면은 현재 아마축구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사건, 사고 들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매 대회가 열릴 때마다 판정 시비와 잡음이 끊이지 않고, 덩달아 축구인들간의 질시와 반목도 격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축구협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그저 문제가 밖으로 새나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올림픽 동메달의 쾌거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협회가 정작 내부문제에 소극적,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물의를 일으킨 축구인이 있다면 공개리에 징계해 '타산지석'을 삼고, 문제가 된 부분은 이를 공론화 해 바로잡아야 한다. 감추려할수록 의혹은 증폭되고 불신도 쌓여가는 법이다. 대한축구협회의 엄격한 자기관리와 내부기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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