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림픽 이후를 생각해야 할 때

머니투데이 김삼우 기자 | 2012.08.11 06:00

[김삼우의 감독과 함께]

1948년 8월 5일 영국. 스웨덴과의 런던 올림픽 축구 2회전에서 한국 골문을 지킨 홍덕영은 공을 잡으면 관중석 쪽으로 내질렀다. 숨 돌릴 새없이 쏟아지는 상대의 강슛을 견디다 못해 생각해 낸 고육지책. 당시만 해도 공 한 개로 경기를 진행했기에 볼보이를 통해 그라운드로 공이 돌아오는 시간이 앞으로 질렀을 때 보다 더 길었기 때문이다. 경기는 기량과 체력 스피드에서 월등하게 앞선 스웨덴의 일방적인 페이스였다. 결과는 0-12 참패.(‘한국축구100년사’에 실린 축구 원로 홍덕영 선생(1926~2005)의 런던 올림픽 증언 재구성)

64년 후인 2012년 8월 5일 영국, 다시 런던 올림픽. 한국은 ‘축구종주국’이자 개최국 영국과 4강 진출을 다퉜다. 1-1로 전반전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온 홍명보 감독, 선수들에게 “영국 봤지? X도 아니잖아”라고 걸쭉한 한마디를 던졌다. 이날 한국은 라이언 긱스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스타들이 포진한 영국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5-4로 승리, 사상 첫 올림픽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기성용은 경기가 끝난 뒤 “승부차기를 즐겼다”고 했다.

비록 4강전에서 브라질에 지고 일본과 3·4위전을 가졌지만, 이렇게 달라졌다. 골키퍼가 공이 빨리 오는 게 무서워 관중석으로 볼을 차내던 한국은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던 축구 종주국을 상대하면서 감독은 “아무것도 아냐”라고 호기롭게 외치고, 선수는 피말리는 승부를 즐겼다. 영국전 뿐만이 아니었다. 멕시코, 스위스, 가봉 등을 상대한 조별리그를 비롯 브라질전때도 그랬다. 당당했다.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대회 본선에서 과거 선배들이 보이기도 했던, 지나치게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이름값에 위축되는 모습이 없었다. 올림픽에서 축구가 대회 폐막 직전까지 국민적인 관심을 모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른 종목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초반 어이없는 오심에 눈물을 흩뿌리기도 했으나 4년간 흘린 땀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펜싱의 신아람이 ‘멈춘 1초’ 판정 후 보여준 모습은 대한체육회 어른들보다 의연했다. 출전 선수 모두 ‘인류의 제전’ 올림픽을 즐기면서,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 또한 강했다.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마냥 고개를 숙이고 안타까워만 하지도 않았다.


젊은 선수들은 성숙해졌고,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을 정도로 실력은 쑥 커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종목에서, 또 선수들이 올림픽 정상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64년이라는 세월이 온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스포츠 수준이나 국력 면에서 그 세월 오히려 곤두박질친 나라도 있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오롯이 발전으로 이어온 것이다.

대회 폐막을 이틀 남겨뒀지만 ‘10-10’(금메달 10개 이상 종합 10위권 진입) 목표는 일찌감치 달성했다. 다만 이 대목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이런 성과에 뿌듯해하고 기쁨을 나누는 것은 좋으나 과대평가하거나 비약하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축구 4강에 오르자 일각에서 내놓은 "세계 축구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는 식의 평가가 그렇다.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이 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각각 제패했던 아프리카세가 여전히 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처럼 올림픽과 월드컵은 전혀 다른 무대다. 월드컵 4강에 이어 올림픽 4강까지 이룬 성취는 대단하지만, 실질적인 세계 정상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한국 축구가 또 하나씩 해결해야 할 일은 많다.

종합성적도 그렇다. 금메달 획득 숫자로 종합 순위를 매기고 국격이 높아진 것처럼 여기는 것은 이젠 촌스럽다. 상투적이기는 하나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비인기 종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회체육 인프라 확충 등에 신경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번에도 유효하다. 환희와 감동의 드라마를 잠깐 만끽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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