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규 감독이 이끄는 남자탁구대표팀이 8일(이하 한국시각) 영국 런던 엑셀 노스 아레나1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 결승전에서 세계랭킹 1위 장지커-2위 마롱-4위 왕하오의 중국을 맞아 0-3으로 분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우리 선수 3인방에겐 사실상의 올림픽 마지막 무대였다. 30대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노장 투혼은 발휘하며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다.
탁구계에서 중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탁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27개의 금메달 중 23개를 쓸어 담았다. 한국 탁구가 단체전에서 중국을 이긴 것은 1996년 싱가포르 아시아 선수권 대회가 마지막이다.
우리 선수들의 최종 목표는 만리장성을 넘고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출국 전 인터뷰에서 이들은 "다음 올림픽은 성적이 돼도 나가지 않겠다. 이번이 마지막인만큼 절실하다. 베이징 대회 때 동메달을 땄으니 이번엔 반드시 색깔을 바꿔오겠다"고 말했다. 중국과 결승전에서 맞붙기 위해서는 1번 시드를 받을 중국을 피해 2번 시드를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지난 6월 보름 사이에 일본과 브라질을 오가는 강행군을 펼치며 개인 랭킹 포인트를 쌓았고 결국 2번 시드 자리를 거머쥐었다.
남자탁구 대표팀 3인방 중 몸과 마음이 성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팀의 맏형인 오상은은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이번 런던 올림픽까지 4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남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지난 해 12월 소속팀으로부터 해고를 당해 한 달 동안 무적 선수가 됐고, 훈련할 곳이 없어 전전하던 차에 새로운 소속팀(대우증권)을 찾아 힘겹게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었다.
주세혁은 아테네 대회 이후 8년 만에 다시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주세혁은 류마티스성 베제트(만성염증성 혈관질환)라는 희귀병에 시달리며 올림픽 출전은 고사하고 선수 생명 자체가 위험했다. 주세혁 선수의 아내 김선화 씨는 “저희는 올림픽에 나간 것만으로도 잘한 것 같다고 만족하자고 했어요” 라고 소감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최근 국제대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수비형 선수다. 결승전에서도 세계 랭킹 1위 장지커를 맞아 엄청난 수비를 선보이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탁구 천재' 유승민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개인전에서 당시 세계 최강자였던 왕하오(중국)를 꺾고 김택수 코치와 얼싸안던 모습은 아직도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회자된다. 유승민도 시련은 있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오른쪽 어깨 인대와 왼쪽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꾸준한 재활 끝에 겨우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결국 이번 런던 올림픽 금메달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에 이어 3회 연속 올림픽 메달이라는 한국 탁구계의 새로운 금자탑을 세웠다.
이날 경기가 끝나자마자 한국과 중국 선수들은 모두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국 선수들의 얼굴에는 중국에 패한 분함보다는, 지난 세월에 대한 어떤 짠한 아쉬움의 표정이 묻어나왔다. 오상은(35, 세계 11위), 주세혁(32, 10위), 유승민(30, 17위), 평균 나이 32.3세. 한국 남자 탁구계를 풍미했던 '노장 3인방'이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해 아름다운 퇴장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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