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덕(?)에 없어져서 좋은 것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 2012.08.13 11:56

[머니위크]청계광장

이제 불황은 불가피하다. 남은 문제는 불황이 얼마나 지독할 것인가 뿐이다. 글로벌 경제는 2차 세계대전 후 최장의 경기침체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출 감소 효과가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출 확대 효과를 압도하면서, 우리 경제도 크게 위축될 것이다. 대체로 3% 정도의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이 몇년간 이어질 것이다.

사상 초유의 불황은 대체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그렇다고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불황의 좋은 점으로 '청소'(sweeping-out)를 꼽는다. 경제 호황기나 신용 과다기에 넘쳐나는 경쟁력 없는 기업들을 일거에 쓸어버린다는 뜻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들만 살아남으면 호황은 앞당겨진다. 경제사학자들은 자본주의 역사상 최장의 불황이었던 1930년대마저도 부실 기업을 대폭 정리한 점만큼은 좋았다고 믿는다.

거시경제 측면이 아니라 소비 면에서도 불황의 순기능이 있다. 눈꼴 사납던 비합리적 소비가 대거 정리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몇년 전 미국의 온라인 잡지인 <스파이크닷컴>은 '경기 침체가 없애줘서 반가운 10가지 목록'을 만들었다. 그 목록에는 연비가 형편없이 자동차라기보다는 탱크에 가까운 허머(Hummer)가 포함됐다. 돈을 마구 쓴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 외의 목적은 없는 블링블링(Bling Bling; 반짝이는 보석으로 온몸을 치장하는 것) 패션도 들어 있었다. 지금은 잊혀진 패리스 힐튼이나 니콜 리치 같은 유명인들도 불황의 희생양이다. 신용 과다기에 그들의 과시적 소비는 분명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경기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갑자기 자문하게 됐다. '과연 개에게도 보석이 필요한 것일까?'

마찬가지 문제 의식을 우리에게 적용해보자. 불황이 장기화 되면서 사라질 것들 가운데 반길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다섯가지만 적어본다.

■ 20km짜리 커피 : 대부분 고급 커피 전문점 커피 한잔 값이 4000원가량이다. 이 정도면 휘발유 2L 이상을 넣을 수 있다. 이는 평균 이하의 연비를 적용해도 20km나 달릴 수 있는 기름의 양이다. 우리가 커피 한 잔을 입에 털어넣을 때 20km를 달릴 기름을 삼켜버리는 셈이다. 내수 불황이 장기화 되면 고급 커피전문점이 밀집된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 한통에 몇십만원 하는 화장품 : 그간 소비자들은 검증이 쉽지 않은 애매한 기능의 화장품에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왔다. 예를 들어 막걸리와 비슷한 성분이면서도 화장품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통에 몇십만원 하는 브랜드도 있다. 고가 브랜드의 인기가 주춤하면서 실속형 화장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 소비자 줄 세우는 명품 매장 : 우리나라 명품 매장은 학교나 군대를 방불케 했다. 상품을 둘러보고 사겠다는 고객들을 줄 세우기 일쑤였다. 매장 직원들이 자신이 명품인 양 으스대는 일도 다반사였다. 몇년 지나면 이런 꼴 보지 않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룸살롱 등 변칙 유흥업소 : 서울 강남 일대의 유흥가는 법인카드가 세운 밤의 제국이었다. 흥청망청 하는 기업, 특히 건설사나 시행사가 발행한 카드 덕에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건설 경기 쇠퇴로 벌써 불황의 된서리를 맞고 있다.

■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스마트폰 :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보유율을 자랑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기능 대부분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남들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스마트폰을 바꾸곤 했다. 특히 통화 기능마저 시원찮은 데도 매번 새 버전이 등장할 때마다 바꾸고 싶었던 스마트폰에 대한 인기는 급격히 시들해질 것이다.

불황기가 길어진다고 이런 예측들이 다 맞아들지는 모르겠다. 우리 소비자의 오랜 비합리적 소비 성향을 감안하면. 그렇지만 호황기에도 이런 소비를 언감생심 꿈도 못 꿨던 이들이라면, 불황기에 없어져서 좋은 것들을 꼽으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는 있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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