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와 아이들, 그리고 무라타 '64세' 할아버지

머니투데이 이슈팀 김우종 기자 | 2012.07.26 14:38

[런던올림픽] 홍명보 키즈들, '사고 한번 제대로 칠 준비는 끝났다'

무라타 쵸지 ⓒOSEN

▲ 노익장

일본인 무라타 쵸지. 49년생. 우리 나이로 64세.

환갑을 지난 할아버지가 마운드에 올라 역동적인 투구폼을 선보이며 공을 마구 뿌린다. 최고 구속은 무려 126km.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 역투(力投)다. 지난 2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에서 한 노익장이 보여준 역투는 국경을 뛰어넘어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가 5회 1이닝 동안 기록한 투구수는 무려 38개.

그리고 5회를 마친 후 클리닝 타임때 진행한 '스피드 킹' 이벤트 대회. 무라타 할아버지는 지칠 법도 하지만, '농군패션'까지 하며 이벤트에 참가하는 열의를 보인다. 그리고 포수 미트를 향해 힘차게 던진 제 1구. 전광판에 시속 124km가 찍힌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현역 시절 통산 3331.1이닝을 던지며 어느 타자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그 전설의 투수가,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마치 세월의 힘은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듯이. 그리고 터져나오는 '웃음'. 웃음이라... 그렇다. 이 노익장은 진정으로 이 경기 자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날의 '진짜 레전드'는 무라타 쵸지였다.

무라타 쵸지가 지난 20일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 '스피드 킹' 이벤트 대회에 출전해 혼신의 역투를 펼쳤지만 스피드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오지 않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꿇었다. (사진=중계화면 캡쳐)


▲ 홍명보와 아이들

이제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지금 이 순간 어느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있을 홍명보호의 아이들이다.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OSEN

2000년대 이전 한국 축구는 번번이 큰 대회에만 나가면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경기를 그르친 적이 많았다. 그리고 나오는 말들은 지겹도록 같았다. '골 결정력 부재'와 '수비 불안'. 하지만 골을 못 넣고 수비가 뚫리기 이전에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은 '지나친 긴장'이었다. 조국과 민족이라는 거대한 사명감을 가슴에 품고,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던 그들이었지만 그럴 수록 오히려 몸은 더 경직됐고 상대방에게 위축됐다. 제대로 된 실력 발휘도 못한 뒤의 패배는 더욱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한 세대가 흘렀다. 2002년 4강 신화를 경험한 선수들이 이제는 감독과 코치가 됐다. 그리고 그 코치진 아래에서 당돌하고 톡톡 튀는 '뉴 제네레이션' 홍명보 키즈들이 급성장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을 잘 찬다는 그 나이 때 18명의 선수들로 구성됐다. A대표팀 주전 골키퍼가 이끄는 탄탄한 수비라인에, A대표팀 멤버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공격라인까지. 역대 올림픽 대표팀 가운데 이렇게 선수 경력이 화려한 팀이 있었던가. 그들은 어떤 거창한 사명감보다도 개개인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즐기는 축구'를 구사한다. 그러면서 이제 런던에서 조용히 사고 한번 제대로 칠 세계 축구 강호들과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히딩크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즐겨라.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면서 해라. 이런 말을 하면 한국 사람들은 정색한다. 그러면 진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을 즐기면서 진지해지는 것이고 그러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또 지금 이 순간 저 멀리 MLS(미국프로축구)무대에서 '22G 연속 출장'이라는 레전드 신화를 쓰고 있는 이영표가 남긴 말도 너무나 유명하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 결국 두 사람의 뜻은 같다. 즐기는 것이 최고다.

이번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모든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경기를 즐기는 과정이 아닐까. 지난 20일 열린 강호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31분 구자철이 세 번째 골을 터트린 후 무언가 세레머니를 시도하며 모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성용이 갑자기 세레머니 참여를 거절했고 순간 무안한 구자철이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며 선수들은 웃음바다가 됐다. 아프리카의 강팀과, 아직 서로간의 주전 경쟁도 치열한, 그것도 중요한 일전을 앞둔 최종 평가전에서 선수들은 이렇게 웃으면서 진정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64세'의 무라타 할아버지처럼... 한국 축구의 선전(善戰)을 기대한다.

구자철이 영국 런던 인근 스티브니지 라멕스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3-0으로 앞서가는 세번째 골을 성공시킨 후 독특한 세리머니를 시도하려다 기성용에게 거절당했다.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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