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공기업 입사 20대男, 동기들 사표내자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 2012.07.13 05:52

[열린고용 앞장서는 기업들-4]한국남동발전 박범모 사원의 "나는 고졸이다"

"고졸 공채로 취업한 친구들 중에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하는 애들이 많습니다. 희망을 안고 입사했는데, 고졸이라서 무시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원래 학력을 강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쿨' 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을 갖고 일하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해 말 한국남동발전의 고졸공채 전형인 '채용확정형 인턴사원제도'로 입사한 박범모(20세) 씨에게 고졸 학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소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우리 사회가 학력 위주로 촘촘히 짜여진 닫힌 구조로 이뤄진 탓에 자신처럼 고졸 출신들은 어쩔 수 없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다.

박 씨는 특히 사회의 틀에 박힌 편견이란 높은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패기 넘치는 입사 9개월 차 신입직원답게 당차게 얘기를 이어갔다.

"우리 사회의 높은 벽에 부딪혀 쓰러지지 않으려면 이를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과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장 힘들어질 길이 바로 고졸 취업자들이죠. 현실의 사회 구조를 수긍할 수 있는 자세와 능동적으로 도전해 보겠다는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박 씨가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굳이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취업을 택한 이유는 뭘까. 그의 성장배경 탓이다. 박 씨의 기억엔 부모란 존재는 거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는 친구들과 달리 부모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짐이자 상처였다.

그럴 때 마다 떠올렸던 건 할머니의 애정 어린 잔소리였다. 할머니는 그에게 "부모 없이 자랐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남들보다 정직하고 일을 잘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할머니의 조언은 자칫 어긋날 수도 있었던 박 씨의 학창시절을 누구보다 바르고 성실하게 보내도록 했다.

가장 역할을 했던 4살 터울의 형은 실업계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대학 진학 욕심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게 많았다. 박 씨도 중학교 3학년이 되자 가정에 보탬이 되기 위해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는 2009년 경북 구미에 있는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목표한 일은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011년 3학년에 올라가자마다 남들보다 빨리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취업이 맘처럼 되지 않았다. 박 씨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몇 차례 취업에 실패한 그는 자신을 돌아봤다.

일찌감치 취업으로 맘을 정했지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 외엔 내가 이 회사에 왜 들어가야 하는지 명확히 설명을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해 10월 남동발전의 채용 공고문이 학교 취업 벽보에 붙었다. 박 씨는 공기업 입사는 다른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취업 준비를 다시 했다.


"남동발전 면접시험은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공을 많이 들였어요. 내가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그동안 입사시험 때 강조하지 못했던 성실성과 근면성을 가장 많이 어필했습니다."

그가 남동발전 입사 시험 때 강조했던 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솔직함'과 '꼭 이 회사에 합격해야하는 이유'였다. 박 씨는 면접관들 앞에서 "부모님 없이 자랐지만, 누구보다 성실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어렵게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와 우리 가족을 위해서다"라고 솔직히 얘기했다.

"우리 생활에 필수 요소인 전기를 공급하는 직장에 근무하면 국가와 국민들에 이바지할 수 있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부심과 보람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직원들이 일하고 싶은 회사인 GWP(Great Work Place) 구현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남동발전에 꼭 들어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현재 남동발전 영흥화력본부 신영흥건설본부 시운전처 발전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 씨는 최근 고용노동부를 필두로 일고 있는 범정부 차원의 '열린 고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고졸 출신 직장인으로서 바라는 것은 없을까. "열린 고용은 특성화고를 택했을 때부터 늘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고졸자들이 결코 대졸자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 뛰어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기회가 많이 없었죠. 고졸자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학력 위주 사회를 탈피한 진정한 실력사회로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고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졸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회에서 고졸자를 향한 편견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졸 출신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씨는 다행히 남동발전이 다른 어떤 기업보다 고졸 출신이란 편견보다 잠재력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 와보니 대졸 출신보다 고졸 학력의 선배들이 중요한 곳에서 눈에 많이 띄어서다.

"다른 회사에 비해 고졸자에 대한 편견이 없어 남동발전만의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스스럼없게 어울리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라도 주눅 들지 않고, 국내 최고의 발전회사 직원이란 자부심으로 생활할 계획입니다."

박 씨는 자신의 포부도 자신감 있게 표현했다. "발전설비 분야에서 마이스터(Meister, 장인)가 되는 게 꿈입니다. 남동발전이 세계 최고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전문성을 키워나갈 겁니다. 최종 학력은 물론 고졸이지만, 업무 성과는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온 사람들 이상으로 성취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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