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영원한 것은 없다

머니투데이 이상묵 삼성생명 보험금융연구소 전무 | 2012.07.10 05:35
화석으로 생물의 역사를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들에 의하면 45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한 이래 존재했던 종의 99.9%가 멸종됐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종은 여태껏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의 0.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해 지금 남아 있는 생물들은 이렇게 희소한 생존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경이로운 존재다.

생물의 멸종을 야기하는 원인은 환경의 변화다. 기후의 변화와 같은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가 있는가 하면, 약탈자의 능력이 강해지거나 먹이로 삼던 종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경쟁 환경의 변화도 있다.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의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성공적인 변이를 통해 진하하지 못한 종은 결국 멸종되고 만다.

생물이 일으키는 변이는 의식적인 것이 아니다. 계획하는 것도 아니다. 생물 스스로가 환경의 변화를 분석하고 연구해서 유전자를 의도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생물의 변이는 전적으로 우연에 맡겨진다. 우연에 의해 일어나는 변이중에서 환경의 변화에 적합한 것이 나타나면 생존을 이어가지만 그렇지 못하면 멸종한다. 결국 우연이 종의 생존을 좌우하는 것이다.

기업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 생물의 진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기업과 생물의 흥망성쇠가 가지는 유사성에 주목한다. 미국에서는 기존의 기업 중에서 매년 10%가 사라진다고 한다. 불과 100년 전에 포춘 100대 기업에 들었을 정도로 번성하던 기업 중에서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세상을 다 집어삼킬 듯 승승장구하던 기업들이 몰락하고 이름도 없던 존재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다.

그런데 이들 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이 있다. 기업의 운명이 종의 운명에 비해 조금도 나을 게 없다는 점이다. 단위 기간이 다를 뿐 생물과 기업의 멸종이 모두 멱법칙(power law)라는 동일한 법칙에 따른다고 한다. 생물의 단위기간이 수백만, 수천만 년인 반면에 기업의 단위기간은 십년, 백년이라는 점만 다를 뿐 멸종의 양상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은 기술과 경쟁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고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한다. 그런 기업이 우연에 생존을 맡기는 생물에 비해 조금도 나을 게 없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데도 운에 맡기는 것과 결과가 다르지 않다면 어떻게 충격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학자들은 기업이 직면하는 환경의 변화 속도와 예측가능성의 한계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기업이 직면하는 환경의 변화는 생물이 직면하는 것에 비해 그 속도가 엄청나다. 빙하기의 도래는 수천만 년에 걸쳐 진행된다. 그러나 기업이 직면하는 기술의 변화는 십 년도 긴 시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 속도가 빠르다. 기업들이 나름대로 변화를 예측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그 정확도는 미미하다.

생물은 경쟁자들을 포함해 모두가 자신의 생존을 운에 맡기지만 기업은 경쟁자를 포함해 모두가 서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이다. 내가 하루 밤을 새우면 나를 침몰시키려는 경쟁자는 이틀 밤을 새운다. 무한 경쟁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남들은 우리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을 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당연한 것이고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기업을 흔들고 있다. 우리 기업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정신을 집중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도 몰락의 운명을 피하기 쉽지 않은 경쟁 환경에서 판단력이 흐려진 기업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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