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딸까지 죽게 한 악녀의 '시스템'문자 충격

뉴스1 제공  | 2012.06.19 15:13

'부안 모텔' 딸 살인사건 전말… 질투심으로 꾸민 일에 넘어가 황당한 파국

(전주=뉴스1) 박효익 기자= 지난 3월5일 부안의 한 모텔에서 자신의 두 딸을 살해한 권모(38·여)씨. 권씨는 남의 자식에 대해 질투심을 갖게 된 '악녀'가 꾸며낸 말도 안되는 허구의 기계 '시스템'의 지시대로 살다가 나락에 떨어졌다. 이는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권씨가 이 '시스템'을 믿게 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다음은 권씨의 재판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종합한 것이다. 권씨에게는 재취업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4년제 대학을 나온 그녀의 꿈은 초등학교 교사 내지는 유치원 교사였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IMF의 여파였다.

결국 취업 대신 공공근로 등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제빵제과 직업훈련을 받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8개월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 후엔 육아에만 전념했다. 남편의 벌이가 한 달에 150만 원에 불과했지만 친정의 도움을 받아 생활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겐 아직 꿈이 있었다.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양모(32·여)씨를 만났다.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그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권씨가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던 커리어 우먼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양씨는 전북지역의 한 대학 전산실에서 일한다고 했다. 또 자신이 멘사 회원이라고도 했다. 언변도 남다른 것 같았다. 권씨는 양씨의 모든 게 부러웠다. 권씨는 그런 양씨에게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하다고. 성격도 잘 맞지 않고, 가정에 무관심하기까지 하다고. 나도 당신처럼 일을 하고 싶다고. 그런 권씨의 이야기들을 양씨는 잘 들어줬다.

2010년 3월 양씨를 처음 알게 된 후 자주 만남을 가져온 지 6개월째. 양씨는 권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잘 살게 해주겠다"는 거였다. 특히 취업을 보장해 준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시스템'이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시스템'은 기계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고도로 정밀화된 기계가 지시를 내리면 그대로 하면 되는 거다.

양씨는 기계 1대를 1명이 맡아 관리한다고 했다. 양씨 자신도 시스템의 지시에 따라 살면서 지금처럼 잘 살게 됐다고 했다. 또 본사는 일본, 지사는 부산에 있고, 조 과장과 한 부장, 부사장, 교수 등이 상위관리자로서 양씨 등 하위관리자를 관리한다고 했다.

권씨는 한 번 해 볼만하다고 느껴졌다. 양씨가 제안을 한 지 3일 만에 권씨는 시스템에 가입했다. 직후 시스템의 지시가 내려왔다. 지시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전달됐다. 양씨의 말을 통해서도 하달됐다. 설거지를 해라. 빨래를 개라. 시답잖은 지시였지만 그대로 따랐다. 곧 잘살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시는 갈수록 더욱 괴이해졌다. 지정해 준 옷을 벗으라고 할 때까지 입어라, 청소를 하지 말아라, 어느 기간까지 브래지어를 입지 말아라, 요일별로 정해진 색깔대로 팬티를 입어라 등등. 본인도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양씨는 권씨에게 "조금만 참아라, 다들 그렇게 참다가 잘 살게 되는 거다"라고 말했다. 자기도 그랬다는데,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조금만 참자, 나만 힘들면 되지', 권씨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가끔 지시를 어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돌아온 것은 경제적 부담. 물건을 사내야 하는 것이다. 벌칙이라고 했다.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부터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품목도, 가격도 다양했다.

어떠한 경우라도 지시를 어기면 안되겠다고 생각할 때쯤 황당한 지시가 떨어졌다. 애들을 씻기지 말아라, 밥을 25분 안에 먹게 하라, 애들이 친구와 얼굴도 마주치지 못 하게 해라, 12시가 되기 전까지 재우지 말아라, 잠 잘 때 앉아서 자게 해라 등등 아이들과 관련된 지시였다.


권씨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어길 시 분명 벌칙이 따라붙을 터. 조금만 참으면 잘 살 수 있는데 구태여 지시를 어길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지시는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아이들을 전주역 화장실에 가둬두라는 것. 또 아이들을 데리고 노숙을 하라는 것. 추운 겨울 권씨는 5일씩, 1주일씩, 열흘씩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노숙을 했다.

터무니없이 며칠씩 노숙을 하던 애들이 멀쩡할 리 없었다. 하지만 고열이 나는 애들에게 권씨는 수돗물만 먹일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의 지시였다. 1년6개월 동안 시스템의 지시를 따랐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본인보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했다. 이미 양씨에게 줄만큼 줘 수중엔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남편의 월급날인 2012년 3월 5일, 아이들을 데리고 부안 격포로 떠났다.

피골이 상접한 아이들에게 삼겹살을 사줬다. 바다도 보여주고 마트에서 쇼핑도 했다.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했다. 마지막 선물을.

권씨는 격포에 온 지 3일 만인 8일 오전 3시께 묵어 온 모텔의 욕실에서 큰딸(10)을 욕조에 빠뜨려 죽였다. 또 12시간 뒤 둘째(6)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켰다. 권씨는 애들과 한 날 한시 세상을 떠나려 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압박붕대로 목을 메기도 하고, 모텔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려고도 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애들을 따라가야 하는데, 죽기가 무서웠다.

결국 권씨는 범행 이틀 만에 격포항 인근 공공화장실에 숨어있다 경찰에 붙잡혔다. '왜 나만 남았을까'란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알게 됐다. 자신이 살아남음으로써 감춰져 있던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시스템은 허구였다. 또 양씨가 대학 전산실에서 일한다는 것도, 멘사 회원이란 것도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이 모든 게 양씨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거였다는 사실이다. 양씨는 자신의 아들(10)보다 권씨의 큰딸이 더 똑똑해보였다는 이유로 권씨를 골탕 먹이려고 이 모든 것을 꾸몄다고 조사 과정에서 털어놨다. 권씨의 가정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린 이후에.

<저작권자 뉴스1 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뉴스1 바로가기

베스트 클릭

  1. 1 "지하철서 지갑 도난" 한국 온 중국인들 당황…CCTV 100대에 찍힌 수법
  2. 2 김호중, 뺑소니 피해자와 합의했다…"한달 만에 연락 닿아"
  3. 3 "1.1조에 이자도 줘" 러시아 생떼…"삼성重, 큰 타격 없다" 왜?
  4. 4 김호중 '음주 뺑소니' 후폭풍…끈끈하던 개그 선후배, 막장소송 터졌다
  5. 5 빵 11개나 담았는데 1만원…"왜 싸요?" 의심했다 단골 된 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