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다" 31세男 연봉 6000만원 포기하고…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 2012.06.18 10:11

[머니위크 커버]소박함의 미학, 다운사이징/ 연봉 낮춰 옮기는 사람들

'연봉은 많지만 매일 야근해야 하는 직장' vs '연봉은 적지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직장'. 당신의 선택은?

최근 연봉정보사이트 페이오픈에 따르면 29~39세 직장인들의 직업선택 기준을 조사한 결과 연봉이 45.8%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여가생활이 41.4%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여전히 연봉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이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요즘엔 여가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높은 연봉을 좇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직장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높은 연봉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현실적으로 '고액 연봉'의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고액 연봉과 고속 승진을 포기했지만 더 많은 행복을 얻었다는 다운시프트족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연봉 6000만원 포기 후 달라진 삶
중견 제조업체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최모씨(31). 소위 말하는 금융맨으로 높은 연봉을 받던 그는 어느날 돌연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당시 경력 2년차였던 그의 연봉은 6000만원 수준. 회사의 명성이나 급여 수준만 놓고 본다면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었지만 그는 늘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높은 연봉만큼이나 빡빡한 업무를 소화하기 위해 퇴근시간은 평균 밤 11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실적압박도 어마어마했다. 개인시간을 갖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는 여건이었다. 그는 "취미생활로 직장인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밤 12시가 넘어 집에 귀가하는 패턴으로는 도저히 음악을 즐길 수가 없었다"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취미생활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높은 연봉이 무슨 소용이냐 싶었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주변의 반대는 예상만큼이나 거셌다. 금융권 간부 출신인 최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친구들 역시 내로라하는 직장을 그만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취직자리를 얻는 데도 힘겨웠다. 오히려 좋은 조건의 직장을 포기하고 나왔다는 것이 역차별로 작용했다. 연봉이 적더라도 여가시간이 확보되는 곳을 따져 회사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봤지만, 정작 그 회사는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연봉보다는 근무여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그의 설명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곳 넘게 면접을 본 것 같아요. 연봉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제 선택을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했죠.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걸린 문제인데 포기할 수 없었어요."

1년 넘게 애쓴 끝에 그가 지금의 직장에 취직한지 3년째에 접어들었다. 다시 신입직원으로 시작해 현재 그가 받는 연봉은 약 3800만원. 거의 절반가량 연봉이 줄어들었지만 그는 요즘 생활이 만족스럽다. 평균 오후 6~7시면 퇴근하기 때문에 밴드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는 "개인적인 삶의 만족도가 높다보니 회사업무도 그만큼 의욕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며 "남들은 연봉을 포기한 것으로 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더 행복한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사진_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젊은 직장인들 "야근 싫어"
헤드헌팅전문업체 스카우트코리아의 임혜진 팀장은 "예전에는 연봉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지만 요즘엔 연봉이 높다는 것만 강조해서는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최근 그가 구직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연봉이 얼마냐"가 아닌 "야근을 많이 하느냐"와 "주말에 출근하느냐"라는 것.

유통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최근 미디어콘텐츠 관련 회사로 이직한 이모씨(29)도 이 같은 경우다. 이씨는 "대기업이라 또래 평균보다 연봉이 높았다"며 "하지만 유통업무의 특성상 주말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였고, 결정적인 이직 사유였다"고 밝혔다. 특히 지방 출장이 잦아 개인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일주일 내내 회사 업무에만 매달려야 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

결국 그는 연봉을 2000만원가량 줄여 지금의 회사로 옮겼다. 이씨는 "초창기에는 업무환경이 바뀌어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며 "하지만 주말에 쉴 수 있고 재충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가장일 경우 연봉을 낮춰 이직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기자의 의견에 임 팀장은 주로 직장생활 5년차 안팎의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이 같은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첫직장을 구하는 20대들은 회사의 명성이나 연봉에 예민한 편이다"며 "하지만 막상 직장생활을 해보면 연봉이 높을수록 야근이 잦고 업무 스트레스가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이직을 고려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몇년 전만 하더라도 10명을 상담하면 그 중 1명가량이 이 같은 이유로 이직을 요구했는데 요즘은 거의 3명 꼴이다"고 귀띔했다.

자녀가 중·고등학생인 임원급은 이런 이유로 이직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초등학생 이하의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은 문의도 꽤 많은 편이다. 이들이 연봉을 줄여서라도 직장을 옮기는 이유는 바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IT업계에 종사했던 박모씨(37)는 2년 전 이 같은 이유로 이직을 결심했다. 당시 3살 된 딸아이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도심보다는 지방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방에서 다시 직장을 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회사 인지도나 연봉을 낮춰갈 수밖에 없었다. 연봉은 10% 줄었지만 지방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긴 덕분인지 예전에 비해 생활이 빡빡하지 않다.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된 덕분인지 아이의 아토피도 호전을 보여 박씨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임 팀장은 "연봉이 높아지면 그만큼 많은 업무를 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연봉을 낮추는 것 또한 각자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의 문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연봉을 갑자기 많이 줄이는 건 권하지 않는다"며 "10%가량 낮추는 선에서 조율하며 여가시간을 늘릴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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