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120만원 살기 실패 "車만 없애면…"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 2012.06.05 13:30

[웰빙에세이] 한달 120만원에 살기-3 : 願은 소박하게, 爲는 단순하게

하기 싫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 그런 일이라면 안하면 된다. 누구든 그런 일 하려고 애 쓰지 않을 것이다. 돈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다. 하고 싶은 일, 하려는 일, 해야 하는 일…. 이런 일은 피하기 어렵다. 애도 쓰고, 돈도 써야 한다.

한 달에 120만원에 살려니 어떤 일이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은 많고 돈은 적은데 어쩌랴. 일이 적고 돈은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 주변에 그런 분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 나와 같다. 아니면 일도 많고 돈도 많은 분, 일도 적고 돈도 적은 분이다.

요즘 세상에 돈 없이 무얼 할까. 어떤 일이든 하려면 돈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아주 많이 든다. 하려는 일이 많아도, 해야 할 일이 많아져도 돈이 많이 든다. 모든 상품에, 모든 서비스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그래서 돈만 내면 못할 게 없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도 부쳐 먹을 수 없다.

한 달에 120만원에 살려면 하고 싶은 일과 하려는 일을 줄이고 해야 할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 일의 다이어트, 일의 워크아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 이것도 해야겠고 저것도 해야겠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가는데 그 중간에 일이 너무 많다. 일의 거미줄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나는 그 거미줄에서 이리저리 곡예를 하며 산다. 아니 거미줄에 옥죄어 옴짝달싹 못하고 산다. 거미줄에서 벗어난 무애한 삶을 모르고 산다.

누구든 죽도록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해야 한다. 돈이 얼마가 들든 꼭 해야 한다. 죽지 말고 해야 한다. 죽도록 하고픈 일을 죽도록 하지 못하면 너무 억울하다. 그 願은 恨이 된다. 사실 우리는 평생 하고픈 일을 뒤로 미루며 산다.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한 번도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살지 않는다. 願은 언제나 다음에 할 일이다.

내가 하려는 일도 결국 하고픈 일을 위한 것이다. 願을 위한 爲다. 그러나 그 爲는 願을 이루지 못한다. 爲는 항상 지금이고, 願은 항상 다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爲만 남는다. 일만 하는 爲, '爲를 위한 爲'만 남는다.

내가 해야 하는 일, 그것은 십중팔구 껍데기다. 내 안이 아니라 밖에서 오는 것이다. 세상의 법과 도덕, 규범과 규율, 관습과 관행, 문화와 문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너무 많고 복잡해 내가 해야 하는 일도 많고 복잡해졌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남자로서, 주민으로서, 국민으로서…. 當爲가 너무 많다. 當爲의 거미줄이다.


나에게 願과 爲의 관계는 정상인가? 내 願은 많이 소박해졌다. 친 도시적, 친 인공적, 친 문명적인 것에서 친 자연적, 친 야생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내가 사랑하는 강과 산과 들에는 슈퍼가 없다. 내가 걷는 오솔길에는 마트가 없다. 내 願에는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願이 소박해지니 爲도 따라서 단순해졌다. 나는 꼭 하고픈 일을 지금 바로 하면서 살려고 한다. 소박한 願과 단순한 爲를 현재 시점에서 일치시키려 한다. 너무 많은 願을 품고, 너무 많은 爲에 쫒기고, 너무 많은 當爲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아직 '물'이 덜 빠졌다. 여전히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번거롭다. 願도 많고, 爲도 많다.

'120만원 프로젝트' 석 달째. 5월엔 결국 실패했다. 총 지출은 127만8000원. 7만8000원을 더 썼다. 큰 적자는 아니다. 지난달 흑자가 있으니 평균으로 보면 '120만원'을 흔들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되겠다.

5월에는 동생이 59만6000원을 썼다. 한도를 9만6000원 넘겼다. 평소 지출과 다른 항목은 제빵 재료(8만7000원)와 홈패션 재료(2만원)다. 나머지는 별나지 않다. 장바구니 비용과 약간의 개인 용돈이다. 빵을 굽고, 바느질을 배우느라 돈이 조금 더 들었다. 이런 願도 못하고 살면 안 되겠지! 동생은 중순부터 한도가 차 보름 남짓 애를 쓰며 초긴축을 썼다.

나는 68만2000원을 썼다. 한도에서 1만8000원을 남겼다. 그러나 내용이 좋지 않다. 보일러 기름은 5월에도 넣지 않았다. 한 겨울이 아니라면 난방비용이 120만원 가계부에 결정적인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는 게 분명해졌다. 대신 5월에는 자동차 보험료 분납분 19만7000원을 냈다. 이 부담이 컸다. 아름다운 봄날, 서너 번 손님이 왔고, 외식도 서너 번 있었다. 사정을 아시는 분은 내가 내겠다고 해도 먼저 지갑을 꺼낸다. 감사~ 그러나 그러지 못할 자리가 있다. 이래저래 12만원 남짓 쓰고 나니 여유가 없다. 이때부터 한도에 걸려 씀씀이마다 마음을 쓴다. 어머니 성묘도 한 달 미뤘다. 웬일인지 5월에는 수도요금 고지서가 날아오지 않는다. 핑계 김에 수도 요금도 6월로 넘기고 가까스로 한도를 지킨다.

석 달 살림을 보니 한 달 120만원에서 나름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돈은 30만 원 정도다. 그 이상의 특별한 지출이 있으면 그 달은 어렵다. 그러니 자동차는 결정적이다. 이달에도 자동차 보험료와 기름 값 5만원을 합쳐 자동차에 24만7000원이 들어갔다. 6월에도 최소한 그만큼을 써야 한다. 6월에는 자동차 검사도 받아야 한다. 자동차를 굴리고자 하는 願 하나에 이런저런 爲가 줄줄이 달라붙는다. 그것이 아주 부담스럽다.

사실 요즘에는 자동차를 거의 쓰지 않는다. 5월에는 자동차 보유비용(19만7000원)이 운행비용(5만원)의 4배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자동차를 굴리는 달콤한 願을 거둘 때가 된 것일까? 보통의 방법은 願을 지키기 위해 爲를 늘이는 것이다. 즉, 돈 버는 일을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방법은 願을 거두어 爲을 없애는 것이다. 즉, 돈 쓰는 일을 줄이는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願을 거두면 '120만원 가계부'는 제법 널널해질 것이다. 나야 걷는 게 취미이고 장기이니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걷는 데는 보유비용도 없고 운행비용도 없고 탄소비용도 없는데~. 하지만 허리가 안 좋은 동생은 아직 아닌 듯하다. 그럼 아직 때가 아니지! 이것도 핑계 김에 뒤로 미룬다. 무르익을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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