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과 설기현... 그리고 미우라 가즈요시

머니투데이 최규일 Terra스포츠 대표 | 2012.05.29 08:54

[최규일의 왓츠 업 사커]

FC 서울-인천 유나이티드전이 열린 28일 상암 월드컵 경기장 스탠드 정중앙엔 '2002 월드컵 10주년! , 마포가 함께 합니다'라고 쓰인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벌써 10년이라니, 세월 참 빠르기도하다.

이날의 주인공은 한국진출 100호골과 101호골을 거푸 넣은 데얀과 장기인 왼발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린 몰리나, 이른바 서울의 '데몰리션 콤비'였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줄곧 인천의 김남일(35)과 설기현(33)에게 집중됐다. 아마도 2002 월드컵 10주년과 당시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두 선수의 모습이 오버랩 됐기 때문인 듯하다.

2002 월드컵 당시 중원에서 매서운 카리스마를 내뿜었던 김남일과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종료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뽑았던 설기현. 둘은 여전히 그라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같은 월드컵 멤버였던 최용수 FC 서울 감독(39)이 맵시있는 양복을 입은 채 벤치를 지키고 있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인천은 김남일과 설기현을 주축으로 분전했지만 객관적인 전력상 FC 서울을 상대 하기엔 힘이 부쳤다. 결국 1-3으로 패했고, 서울이 1위로 점프한 대신 인천은 최하위로 추락했다. 경기 후 그라운드를 나서는 두 선수의 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읽었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두 선수를 보면서 떠올린 또 하나의 인물이 있다. 일본의 미우라 가즈요시(45). '킹 가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일본의 축구 영웅이자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비는 '철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우라(三浦)라는 이름(정확히는 성)에 거부감이 있었다. 어렸을 적 명성황후를 참혹하게 시해한 을미사변(1895년)의 주모자가 미우라 고로라는 일본 공사였다는 사실을 역사책을 통해 배운 게 시초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성인이 되어 축구 기자를 하던 시절 한국축구 '공공의 적'도 미우라였다. 더욱이 미우라 가즈요시에게는 함께 일본 대표를 역임한 미우라 야스토시라는 친형도 있었다.

일본 프로축구 원년(1993년) MVP였던 그는 그해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94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한국전에서 후반 15분 1-0 결승골을 터뜨려 일거에 한국 축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최종전에서 이라크를 상대한 일본이 종료 30초전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 동점골을 허용하는 바람에 한국이 일본 대신 어부지리로 본선행 티켓을 따낸 이른바 '도하의 기적'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한국은 미국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지도 못할 뻔했다.

오랜 기간동안 한국 축구의 골칫덩이였던 미우라가 요즘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마음 씀씀이 때문이다. 설기현 이동국(33)과 띠동갑인 그는 머리가 희끗한 현재에도 일본 J2리그 요코하마 FC에서 공격수로 뛰고 있다. 지난 27일 돗토리 전에선 골맛까지 봤다.


그는 올 초 한국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줄 게 없다면 은퇴하겠지만 지금은 그만둘 이유가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팀이 있다면 한국을 비롯해 어디든 달려가겠다".

가장 화려한 순간에 은퇴를 하는 게 미덕처럼 돼버린 지금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뒤로한 채 2부 리그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로 27번째 시즌을 맞는 그는 그동안 브라질 일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를 거치며 총 14개 팀을 거쳤고, 2005년엔 2개월 단기임대로 호주 시드니 FC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그 정도 되는 이름값이면 지금쯤 프로 감독을 해도 될 텐데 정작 그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건 자신 있지만 벤치는 자신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박지성과 절친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전성기 시절 아시아 최고의 스타로 김주성(현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을 꼽는 겸양의 미덕까지 갖췄다.

앞으로 경기에 출장할 때마다 플레이 하나 하나가 그대로 일본축구의 역사가 될 미우라를 보면서 올 초 은퇴한 '한국의 철인' 김기동(40)이 아쉬워지는 건 당연하다.

한편으로 김병지(42)와 최은성(41)의 파이팅을 기대하게 된다. 일부는 두 선수의 포지션이 GK라는 점을 들어 불혹의 나이가 넘은 나이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의 활약상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이는 큰 착각이다. 실제 그라운드에서 관중들에게 보여지는 골키퍼들의 운동량은 필드 플레이어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경기 출전을 위해 훈련장에서 흘리는 땀의 양은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보다 적지 않다는 것을 한번이라도 연습장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모 CF에서 야구의 안방마님으로 불리는 포수가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둣 축구의 골키퍼도 남모를 애환이 있는 법이다.

요즘은 '젊은 피'의 생기발람함과 강인함이 어디든 대세가 됐다. 축구도 마찬가지여서 30살이 넘으면 '퇴물' 취급을 받고 일부는 떠밀리듯 유니폼을 벗거나 팀을 옮기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축구도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젊은 선수들이 득세할수록 노장들의 풍부한 경험과 웅숭함도 대접받아야 한다. '조로증'을 앓고 있는 한국 축구가 미우라 가즈요시의 케이스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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