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 2012.05.11 10:01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6>

헨리 8세의 분노를 사 처형당한 토머스 모어는 단두대로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는 사형 집행관에게 이렇게 격려했다. "힘을 내게.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단두대에 올라 머리를 쑥 내밀면서는 수염을 조심하라고 덧붙였다. "내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니까."

주식투자를 하다 보면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두려움이야말로 투자자에게 가장 큰 적이라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 이럴 때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한 방법은 자아를 초월하는 것이다. 이게 어렵다면 그냥 웃으면 된다. 웃음은 두려움을 털어내는 훌륭한 무기다.

읽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책이 있다.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쓴 '인더풀'과 '공중그네'가 그런 책이다. 두 권 다 이라부라는 정신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소설인데 공통된 줄거리는 이라부가 신경증환자를 가히 엽기적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이라부는 의학박사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매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인물이다. 이라부와 짝을 이루는 간호사 역시 미니스커트 차림에 진료실에서 담배까지 피워댄다. 의사와 간호사가 이 모양이니 제대로 치료하기는커녕 환자가 찾아오기나 할까 싶지만 어쨌든 의사가 주인공 아닌가?

몸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아 제대로 송구를 하지 못하는 유명 프로야구선수가 들어오자 이라부가 대뜸 묻는다. "프로야구선수라면서? 그럼 이치로 사인 좀 받아줄 수 있을까. 사인 받아주면 주사 열 대, 서비스로 놔줄 수도 있는데."

뭐 대충 이런 식이다. 환자들은 하나같이 강박신경증을 앓고 있다. 뾰족한 물체에 공포를 느끼는 야쿠자 중간두목, 파트너를 믿지 못하게 된 서커스단의 공중그네 연기자, 의과대학장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대학병원 의사, 소설을 쓸 수 없게 된 여류작가, 스토커에게 당하고 있다는 망상에 시달리는 모델….

이라부는 이들에게 좌충우돌 기상천외한 치료방법을 선보인다. 그런데 환자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비로소 자기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다가 치료돼간다. 독자들도 어느새 삶이라는 게 그리 심각하거나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라부의 치료 방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세상이니 남의 눈치보지 말고 소신껏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책에 환자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투자자들 가운데도 강박신경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꽤 많다. 자신의 투자를 너무 걱정하다 보면 건강을 해치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설마 하겠지만 윌리엄 오닐이 쓴 '최고의 주식 최적의 타이밍'에 실제 사례가 나온다.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은 1961년에 브룬스윅 주식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60달러에 매수했다. 브룬스윅은 1957년 이래 대표적인 주도주였고 주가는 20배 이상 올랐다. 그는 브룬스윅 주가가 더 떨어져 50달러에 이르자 추가로 매수했고 40달러까지 하락하자 또 물타기를 했다. 브룬스윅 주가가 30달러에 이르자 골프를 치다 급사했다."

그러나 주식투자자의 가장 큰 실수는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다시는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그건 마치 모든 결과를 자신이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능력으로 투자성과를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기중심주의와 조금이라도 손실을 보면 모든 게 자기 탓이라고 여기는 자학적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려면 투자가 무엇인지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한다. 누구나 투자를 하다 보면 실수할 수 있고, 손실을 볼 수 있으며, 그렇다 해도 시장을 떠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투자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투자의 세계에서 실수로 인한 손실은 일종의 참가비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그러면 쓸데없는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다.

'사자 나라의 얼룩말' 우화로 유명한 랄프 웬저는 1987년 10월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가치가 1주일새 17%나 폭락하자 직원들에게 말했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은 지난주와 똑같지? 주식시장이 좀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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