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의 부활

머니투데이 권성희 뉴욕특파원 | 2012.05.14 10:21

World News/ 권성희 특파원의 New York Report

미국 동남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작은 도시 그린빌. 미국 자동차산업의 혁신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프로테라(Proterra)가 위치한 곳이다. 프로테라는 충전이 빠른 전기버스를 제조, 판매하는 벤처기업이다. 올해로 설립된 지 4년밖에 안 되지만 이미 전기버스를 생산해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 플로리다주를 포함한 미국의 주정부, 시정부 등에 판매하고 있다.


프로테라버스

론 렉스로트 프로테라 공장매니저는 "프로테라에서 만드는 에코라이드(EcoRide) 버스는 10분만에 충전이 끝나는데다 한번 충전하면 30마일(48.28Km)을 갈 수 있다"며 빠른 충전과 장거리 운행 능력이 경쟁력이라고 소개했다.

또 "100%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화석연료는 전혀 필요하지 않아 매연을 발생시키지 않고 소음도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버스가 운행하고 있을 때도 제일 뒷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이 버스운전사와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버스 안은 조용하다. 중국의 전기차회사인 비야디에 비해 배터리가 작다는 점도 매력이다.

이와 함께 프로테라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또 다른 특징은 `메이드 인 USA'라는 점이다. 프로테라 자체가 미국 기업인데다 에코라이드 버스에 들어가는 부품의 80% 이상이 미국 내에서 조달된다. 렉스트로 매니저는 "콜로라도주에서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 이르기까지 미국 33개 주에서 조달받은 소재와 부품으로 에코라이드를 만든다"고 말했다.

프로테라는 현재 6개월치 주문이 밀려 있어 매일 2시간씩 연장 근무를 하고 있다. 연간 버스 생산량은 200~300대. 앞으로 미국 각 주에서 매연 배출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지면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렉스로트 매니저는 돱현재 110명인 직원들의 숫자도 향후 1200명까지 늘어날 것돲이라고 예상했다.

프로테라를 통해 알 수 있듯 1960년대에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걷던 미국 제조업이 최근 반등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연일 `이제 (미국의) 제조업 르네상스를 선포할 때인가'(LA타임스 5월1일자) `시장의 새로운 모토-메이드 인 USA'(월스트리트저널 4월28일자) `미국 제조업 부활에서 배우는 4가지 교훈'(US월드&뉴스리포트 4월19일자) 등 미국 제조업의 회생을 조망하고 있다.


크렘슨대학 국제 자동차리서치센터 강의실 모습

이에 대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대표적인 대학인 크렘슨대학의 존 보예트 토지 및 캐피탈에셋 관리이사는 "오바마 행정부가 제조업 부활에 의지를 갖고 정책을 추진한데다 에너지 가격이 올라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으로 운송하는데 드는 비용이 올라간 것도 미국 제조업 부활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운송비용이 늘자 해외 제조기업들의 미국 투자도 늘고 있다. 프로테라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는 독일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ZF의 트랜스미션 공장이 새로 들어섰다. ZF는 현재 공장 내부에 생산설비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1분기부터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트랜스미션 그린빌 내부

루드거 루 렉크만 ZF 트랜스미션 그린빌 최고경영자(CEO)는 "그린빌에는 프랑스 타이어회사 미셸린, 독일의 자동차회사 BMW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다 주변에 기계공학으로 뛰어난 크렘슨대학까지 위치해 입지여건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렉크만 CEO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그린빌과 인건비가 저렴한 멕시코를 두고 어디에 공장을 설립할까 고민하다 그린빌을 선택했다. 항구와 공항 등 운송 인프라를 포함해 멕시코의 저렴한 인건비를 압도할만한 경쟁력이 그린빌에 풍부하다는 판단이었다.

과거에는 인건비가 싼 지역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뒤 제품을 만들어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글로벌기업의 일반적인 모델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ZF처럼 저렴한 인건비는 투자입지를 결정하는데 작은 요인일 뿐이다.

특히 최근에는 시장이 있는 곳에서 바로 생산해 그곳에서 판매하는 글로벌기업이 늘고 있다. 그린빌에 위치한 미셸린의 스티브 에버레드 대정부 담당 부사장은 "그린빌 공장에서 생산한 타이어는 90% 이상 미국 내에 판매된다"며 "시장이 있는 곳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 미셸린의 모델"이라고 말했다.

다이 히가시로 일본 무역진흥기구(JETRO) 뉴욕사무소 수석이사도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에 투자할 곳을 결정할 때 인건비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소비자의 구매력을 살펴 제품을 생산해 판매할 시장이 있는지 본다"고 말했다.

미국은 일본기업들이 중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에 이어 6번째로 생산을 많이 하는 해외 생산기지다. 고가 생산품만 따지면 미국은 중국과 태국에 이어 일본기업들의 3번째 해외 생산기지다.

미국의 인건비도 저렴해졌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가 최근 발표한 `산업혁명'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정점을 찍은 이후 미국의 인건비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50%가 줄었다.

이처럼 인건비가 낮아진 이유는 노조가 기업과 협조적으로 변한데다 노조가 없는 공장이 늘어나고 기술 발전으로 단순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의 인건비는 지난 2년간 10% 올랐다.

지난 10여년간 미국 달러가치가 45%가량 절하되며 미국의 전반적인 비용이 낮아진 것도 미국 제조업 부활에 기여했다. 40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매닝&내피어에 따르면 미국 제조업이 회생하면서 지난 2010년 1월부터 올 2월까지 거의 50만개의 일자리가 제조업에서 만들어졌다. 제조업 일자리가 늘면서 지난 20여년 이상 계속돼왔던 제조업 고용 비중의 하락세도 처음으로 멈췄다.

보스턴 컨설팅그룹은 이 같은 미국 제조업의 부활로 2020년까지 200만~300만개의 일자리가 미국에서 새로 만들어지고 연간 산업생산이 200억~550억달러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여전히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는 소비가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소비 중심의 경제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늘리는 역할을 했고 급기야 S&P는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트리플A 등급을 빼앗는 굴욕을 안겼다. 미국의 제조업 르네상스가 소비 중심의 미국 경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수준으로까지 파급력이 있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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