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끊고 1주일…채식주의 실천해보니

머니투데이 정지은 기자 | 2012.05.01 14:04

저녁 회식에 '발목' 잡히고, 식당 주인에 까탈스러운 사람 취급

채식 열풍이 불고 있다. 가수 이효리를 비롯한 연예인들의 채식 선언이 잇따르고, 채식을 권장하는 각종 서적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채식을 하다간 좌절하기 십상. 기자가 직접 채식에 도전해 봤다.

◇무심코 덤볐다가 "채식이 아니라 다이어트"핀잔만

내 사전에 '풀만 먹고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동물과 환경도 좋지만 '고기없는' 식사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딱 1주일간 채식체험을 해보라"는 권유 아닌 권유가 들어왔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동안 안 한 것이지 못한 게 아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처음에는 욕심을 부렸다. 고기와 달걀, 유제품 등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완전 채식 '비건(Vegan)'을 표방했다.

첫날인 지난 24일. 급하게 나오느라 아침을 못 먹었다. 편의점에서 연두부와 두유로 배를 채웠다. 점심은 바나나와 두유, 연두부로, 저녁은 고구마 3개와 키위 1개로 해결했다.

친구에게 "지금 채식이 아니라 다이어트 하냐"는 핀잔을 듣고 나서야 '아차'싶었다. 평생 이렇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채식 이틀째부터 현미밥, 양배추 쌈, 버섯, 브로콜리 등 그럴싸한 식단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문제는 저녁 회식. 다 같이 자유롭게 먹는 분위기에서 회 한 점의 유혹은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선과 해산물까지 먹는 페스코(Pesco)로 노선을 바꿨다.

어려움은 계속됐다. 채식 사흘째 저녁에는 한 음식점에서 버섯전골에 고기가 들어가는 지, 동물성 조미료가 들어가는 지 물어보다 주인에게 '한 소리' 들었다. 결국 다른 음식점으로 이동해 고기와 달걀 고명을 뺀 비빔밥을 주문했다.

요구사항이 긴 주문을 끝내자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돌아온 것은 까탈스러운 사람 취급.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런 불편함은 채식을 하는 일주일 내내 따라다녔다.

◇가계부 써보니…간식 값은 더 들지만 식비는 줄어
사실 마지막까지 채식체험을 망설이게 한 요소는 '식당'과 '비용' 문제였다.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할 식당이 없어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있을까 우려했다. 채식식당을 가면 일반식보다 훨씬 비쌀 것 같아 두려웠다. 게다가 야채 값이 부쩍 올랐다는 소리에 지갑이 걱정됐다.

예상과 달리 채식체험 1주일간 식비는 오히려 끼니 당 1000원에서 2000원정도 줄었다. 식당에서 사먹는 데도 이 정도라면 집에서 직접 채식식단을 짜서 해먹을 경우 식비는 더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같은 음식을 소고기나 돼지고기 대신 콩단백이나 버섯 등 식물성 재료로 만들어 먹다보니 원재료 가격이 저렴해진다는 이점도 있다.


채식 전문식당에서는 콩까스에 현미밥과 피클, 브로콜리 등을 곁들여 먹고 5900원을 냈다. 단순히 채식식당은 비쌀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일반 돈가스 전문점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저렴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후식'. 평소에는 식후 1000원짜리 초코바나1200원짜리 딸기우유를 꼭꼭 챙겨먹었던 터라 허전한 입을 달랠 길이 없었다.

채식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채식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견과류를 간식으로 먹으면 공복감에 좋다'는 추천을 받았다.

대형마트를 찾으니 호두 150g짜리 한 봉지의 가격은 5280원. 건자두는 300g짜리 한 봉지가 3680원이었고 유기농의 경우, 160g짜리가 4180원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간식비용에 당황했다. 채식 중인 지인이 "채식생활을 하다보면 간식에도 저절로 손이 덜 가게 되니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위로했다.

◇해 볼만한 채식, 문제는 배려없는 사회
결론적으로 말하면 생애 첫 채식 도전은 실패에 가까웠다. 몸무게 변화도 저울 눈금이 0.5Kg 정도 내려가는 데 그쳤다. 하지만 채식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과식을 하지 않게 돼 속이 편했다. 소화도 빨랐다.

평소처럼 자유롭게 먹은 것은 아니지만 채식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허술한 점이 많았다. 사전 준비 없이 막무가내로 채식을 시작한 탓에 균형 잡힌 식단은커녕 하루 종일 '먹을거리 고민'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외식과 비용 문제는 기우였다. 채식인들이 가진 '진짜' 고민은 배려가 없는 사회였다. 어떤 재료로 어떤 조미료를 사용해서 만들었는지 표기되지 않은 메뉴를 볼 때마다 일일이 물어봐야 하는 고충이 상당했다.

페스코 채식인 양모씨(23·여)는 "사회 전반적으로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양씨는 "대만의 경우 음식점 메뉴판에서 채식주의자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 옆에 나뭇잎 표시를 해둔다"며 "국내 일반 음식점은 대부분 동물성 식재료 사용 여부에 대한 표기나 구분이 없어 메뉴를 고를 때마다 불편하다"고 말했다.

한국채식협회에 따르면 국내에는 현재 약 1% 내외의 채식인들이 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제한적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채식인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원복 한국채식협회 대표는 "점차 채식주의자가 늘고 있지만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환경은 여전히 좋지 않다"며 "학교 급식은 육류 위주이고 직장인 식당가에도 채식 메뉴가 제공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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