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있고 월400만원 버는 가장 "불안해서…"

머니투데이 황인선 문화마케팅 평론가 | 2012.04.27 12:01

[컬처 톡톡] 퐁피두가 말한 '중산층'… 知테크 투자해야 일과 재미 얻는다

며칠 전 기업체 중역들과 얘기를 하다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의 수위가 꽤 높았던 것을 보고 놀랐다. 대기업 중역들이 이 정도라니!

“모아 놓은 돈도 없고 건강은 적신호에 명퇴 불안, 거기다 100세 수명시대라는 협박까지. 중산층이고 중역이라는 껍데기는 있지만 퇴직해서 '노인과 바다'처럼 이리저리 뜯기면 딸랑 집 한 채 밖에 안 남는다." 아, 그들, 중산층!

그럼에도 필자는 이 대목에서 중산층의 위기감을 다른 각도에서 짚고 싶다. 먼저 중산층에 대한 두 정의를 보자. 한국의 모 경제연구소에서는 중산층을 이렇게 정의했다.

'4년제 정규대학을 나와, 한 회사에 10년 이상을 다니고, 자녀 둘을 두고 있으며, 월급 400만 원 이상에, 30평 이상 아파트에 살고, 2000CC 이상의 중형차를 모는 집단'.

쉽게 동의할 정의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얼마 이상은 회사에 더 다니기 힘들고, 자녀 둘은 끝도 없이 돈을 가져가며, 월급은 끊길 것이고 30평 이상 아파트는 똥값이 되어간다. 이런 중산층은 끝을 믿을 수 없다.

반면 드골 다음 프랑스 대통령 조르쥬 퐁피두가 내린 중산층 정의는 다르다. 루브르, 오르세와 함께 프랑스 3대 박물관으로 평가받는 퐁피두센터를 건립했던 퐁피두는 이런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봤다.

'세계 2~3개국에 체류를 했으며, 외국어는 1개 이상 구사하고, 악기도 1~2개는 다룰 줄 알며, 손님이 오면 직접 별미를 만들어 대접할 줄 알고, 남의 집 아이를 자신의 자식처럼 꾸짖을 수 있고, 정의를 위해서 거리에 나서는 계층.'

이미 40년 전에 내린 중산층의 정의인데 필자의 경우는 앞의 정의로는 100% 중산층이지만, 후자의 정의로는 '팔푼이' 중산층이다. 퐁피두 중산층들이 받치고 있는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국가로서 문화대국, 경제 강국의 위상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대한민국 중산층의 위기는 양적 의미의 중산층이 무너지는 것도 물론 있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건 퐁피두식 정의에 있어서의 중산층의 해저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이 명문대에 다니는 게 자신의 존재 의의고, 보신이라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지만 전시든 뮤지컬이든 문화 행사에는 언제 가봤는지 모르겠고, 1년에 10권의 책도 읽지 않으며, 회사 사람들 외에는 외부 네트워크가 없고, 퇴직 후에 대한 꿈이 없는 한국 중산층의 모습들.

그러니 은퇴 후에 책 하나 남길 콘텐츠도 없고 산외에는 갈 곳이 없고 젊은 층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노테크=재테크'에만 의존하고 정부의 복지만 기대한다. 그렇다고 세금 더 내라면 막 성을 낸다.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의 멤버인 선대인이 책 '문제는 경제다'에서 앞으로 100세 시대를 준비하려면 재테크가 아니라 '지(知)테크'에 투자하라고 권고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테크는 재미와 일자리 두 개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중산층들이 지테크에 투자해야 지산업이 일어나고, 지산업이 일어나야 닭집 편의점 스크린 골프 등에 퇴직금 '몰빵'하지 않고, 한국 중산층 삶의 다양성이 확보되며 늙었어도 낡지 않는 100세 인생이 준비될 수 있다.

보라. 중산층들이 책을 읽지 않으니 출판 산업이 위기고, 자식성적만 쳐다보니 학원 강사가 선생님보다 대단하고, 중산층의 지성이 무너지니 야동과 막말, 욕설과 독설들만 양산된다. 이런 것이 부의 양극화보다 더 경계해야 할 중산층의 위기 아닐까.

세스 고딘이 '린치 핀'에서 회사원들은 스스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예술가란 건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부품인생, 복제회사원이 아니라 자기만의 솔루션을 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지금 한국이 필요한 건 자기 스스로 예술가의 삶을 꾸밀 줄 아는 '지테크'형 중산층이다. 지금부터라도 지테크에 투자하자. 그게 자기주도형 복지고 중산층이 위대하게 살 길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 KT&G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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