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금 ·생활비 더 줘도 ○○는 싫어요"

머니투데이 이지현 기자 | 2012.04.28 08:29

'피안성' '정재영' 인기과만 북적..비인기과는 인력부족 악순환

대학병원에서 가정의학과 레지던트(전공의)로 근무하고 있는 A씨(28·여). A씨는 지난해 초까지 다른 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로 근무했다. 하지만 일이 힘들고 미래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어 1년간의 경력을 버린 채 전공을 바꿨다.

외과 시절 A씨는 인력이 부족해 쉬는 시간조차 없었다. 이틀에 하루는 잠을 못자기 일쑤였고 당직의사가 혼자다보니 응급환자가 들어오면 환자 처치를 묻기 위해 선배 의사들을 일일이 찾아 다녀야 했다.

A씨는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외과 의사를 버리고 다른 과로 왔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지원금, 장학금, 생활비줘도..백약이 무효= 이른바 돈 못 버는 전공을 택하는 의사들이 급격히 줄고 있다. 대한병원협회의 연도별 레지던트 지원현황을 보면 2005년 정원의 99.3%를 차지하던 외과 레지던트 지원율은 지난해 61%로 떨어졌다.

레지던트는 의과 대학을 졸업한 후 전문의가 되기 전 희망하는 과에 들어가 수련하는 예비의사다. 자신의 전공을 결정하는 시기인 만큼 미래에 예민하다.

병원들은 고육책으로 연봉을 올려주거나 장학금을 주는 식으로 외과의 레지던트를 확보하려 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

백병원은 최근 외과 계열 전공의 25명에게만 1억5000만원의 석사과정 장학금을 지급했다.

병원 관계자는 "장학금뿐 아니라 월급 외에 매년 2400만원정도 인센티브를 추가로 지급하고 있지만 지원율은 거의 제자리"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근본적 대책이 있지 않는 한 이 같은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비관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일부 병원은 레지던트 역할을 하는 PA 간호사를 뽑아 인력을 보충하고 있다. 레지던트, 간호사가 아닌 봉직 의사를 고용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흉부외과나 산부인과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2005년 78.8%였던 흉부외과 레지던트 지원율은 지난해 35.5%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산부인과는 93.5%에서 66.7%로 떨어졌다.


◇피안성, 정재영 뜨고…외과, 산부인과 지고=반면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재영'(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인기과로의 쏠림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레지던트 지원율을 보면 정신과(191.8%), 재활의학과(154.2%), 피부과(146.0%), 성형외과(143.3%), 영상의학과(138.8%) 등이 정원보다 많은 의사가 몰려 높은 지원율을 보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인기과와 비인기과의 추세는 개원가에 나갔을 때 연봉에 비례해 바뀌는 경향이 있다"며 "외과, 산부인과의 경우 개원가로 가기도 힘들고 대학병원에 남기도 힘들다는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인기과는 모든 병원에서 미달되다보니 둘이 해야 할 일을 한사람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노동 강도가 세지고 그 때문에 사람이 나가면 남은 사람의 일은 더 많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서도 비인기과 레지던트를 위해 월 50만원의 보조금 지급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초 이마저도 예산부족을 이유로 지급이 중단됐다.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 B씨는 "황당하긴 하지만 돈 50만원에 올 사람이 안 오고 안 올 사람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수가를 인상하던지 대학병원에서 교수 외에 일반 의사를 고용하는 등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며칠 전 모임을 갖고 각 학회별로 장기적인 전문의 숫자를 요청한 상태"라며 "이를 통해 현재 병원별 정원이 적정한지를 우선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산출된 정원보다) 충원율이 높다면 전망을 밝게 보는 것이고 낮다면 어둡게 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후 관련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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