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와 삼성전자 그리고 시안

머니투데이 베이징=홍찬선 특파원 | 2012.04.17 14:04

[홍찬선 칼럼]'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변증법

요즘 중국에서 가장 많이 화제에 오르는 사람은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다. 중국 사람이든, 한국인이든, 다른 외국인이든, 베이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빠짐없이 그를 도마 위에 올린다. 중국의 ‘5세대 리더’ 중 한 명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았던 그가 충칭시 서기에서 해임된데 이어, 25명의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원 자격마저 박탈당했으니 그를 안주로 삼는 것은 인지상정일 듯하다.

보 전 서기는 술자리 안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와 관련된 루머가 인터넷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개인적 비리와 지난해 11월 충칭시 호텔에서 의문사한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의 죽음과 관련된 것,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의 조직적 반발과 관련된 것 등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 관영 신화통신 및 CCTV(중국중앙TV) 등도 ‘법치(法治)’를 강조하고 있다. 보 전서기와 관련된 불만이 적지 않으며, 그의 당서기 해임과 정치국원 자격박탈이 아직도 현재진행형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보시라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다.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만1년이 지나는 동안 ‘중국은 과연 공산주의 국가인가?’라는 의문이 수없이 들었다. 저명한 학자를 칭화(淸華)대학교 교수로 영입하기 위해 연봉을 200만달러(약23억원)를 주고, 사장과 평사원의 연봉 차이가 한국보다 훨씬 크며, 거리에서 심심찮게 구걸하는 거지들을 발견하고, 월급을 100~200위안(1만8000~3만6000원)만 더 줘도 기꺼이 회사를 옮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국에서 자본주의를 하고 중국에서 공산주의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사의(不可思議)’라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개혁개방 정책을 30여년 추진해오면서 중국의 일상생활에서 ‘공산주의’를 찾기는 쉽지 않다. 대학교 강의실에서 마르크스-레닌을 듣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는 마오저둥(毛澤東) 전 주석의 가르침은 도로의 플래카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어(死語)가 되고 있다. 하지만 ‘보시라이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은 ‘중국은 역시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중국이 공산주의라는 것을 되새김질 하게 하는 것은 또 있다. 삼성전자가 중국 샨시(陝西)성의 시안(西安)에 10나노급 낸드 플래시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7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한 이후 단일 투자로는 최대 외국인 투자인 삼성반도체 공장에 대해 중국의 중앙 언론은 의외로 담담하다. 삼성전자 협력업체 160개가 함께 투자하고 일자리가 2만개나 생긴다며, 샨시성과 시안에서는 매우 들떠 있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연간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2000억달러나 되니, 70억달러로 야단법석을 떨 일이 아니라는 것일까?

시안완빠오(西安晩報)와 광저우르빠오(廣州日報) 등 일부 지방 언론 매체들이 실시하고 있는 인터넷 여론조사는 한술 더 뜬다. 샨시성과 시안시 정부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투자에 대해 ‘각종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 95.3%(설문조사 참가자 1만8660명 중 1만7778명)가 반대하고 있다. 외국 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은 중국기업을 차별대우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찬성하는 사람은 3.8%(711명)에 불과하다. 도처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차별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고용창출과 신기술 도입’을 위해 제공하는 혜택에 대해선 ‘공평’이란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보시라이 사건’을 다루면서 법치와 반부패를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핵심 과제라고 거듭 강조한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중심으로 한 ‘4세대 리더’와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을 비롯한 ‘5세대 리더’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동거라는 절묘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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