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도 우도 흥청망청 '파티경제' 만끽…파국은 한순간

머니투데이 아테네(그리스)=최종일 기자 | 2012.04.06 06:00

['유로존 극과 극' 그리스·독일을 가다④-1]그리스 진짜 위기는 정치


●부패엔 좌도 우도 없었다
우파정권, 재정적자규모 절반으로 축소
좌파정권, 유로존 가입 위해 회계 조작
비리조사에도 30년간 감옥간 정치인 '0'

●파티경제, 파국으로 질주
외화 저리차입, 정부도 국민도 흥청망청
총외채규모 2000억달러→5500억달러로
디폴트 우려, 자금줄 끊기자 때늦은후회


↑ 아테네대학 담벼락에 가득한 낙서들 사이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스에선 청년실업률이 50%를 넘어서면서 청년들의 정치와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아테네(그리스)=홍봉진 기자
그리스 정치권은 명확한 비전도 없이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통계를 조작해서까지 유로존 가입을 이끌었지만 단일통화의 위험성은 깨닫지 못했다. 유로존 가입 후 차입이 수월해지자 저금리를 만끽하며 정부는 해외자금을 마구잡이로 끌어왔고 국민들은 다가올 재앙은 생각하지 않고 연일 돈쓰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그리스의 '흥청망청 파티'는 자금줄이 끊긴 뒤에야 중단됐다. 되돌아보면 그리스의 유로존 가입은 축복이 아닌 재앙의 시발점이었고 파국을 향해 내달린 폭주기관차에는 제동장치가 없었다.

 새천년을 맞은 2000년 6월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을 승인받았고 이듬해 1월1일 공식 가입했다. 당시 사회당(PASOK) 소속 코스타스 시미티스 총리는 신년메시지를 통해 "그리스경제는 유로존 참여로 더욱 안정되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장밋빛 미래를 전했다.

◇유로존 가입 위해 적자규모 조작
 하지만 기쁨과 설렘은 잠시였다. 유로존 가입은 감춰져 있던 문제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계기가 됐다. 2004년 정권이 우파 신민주당(ND)으로 넘어가면서 유로존 가입과 관련한 비리가 들통났다. 유로존에 가입하기 위해 통계까지 날조한 것이다.

 게오르기오스 알로고스토피스 재무장관은 "1999년 이전 3년 동안 재정적자가 3%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전 정권을 맹비난했다. 유로존에 가입하기 위해선 재정적자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3%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 유럽연합(EU)의 규정을 벗어난 것이다.

 당시 회계조작엔 외부세력도 개입됐다. 월가의 금융권력 골드만삭스가 2001년 그리스의 유로존 가입 당시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부채를 줄이도록 분식회계를 지원했다는 의혹이 한참 뒤에 드러난 것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당시 그리스정부가 파생상품에 대한 무지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계약을 해 골드만삭스의 배만 잔뜩 불려주고 결과적으로 그리스의 채무부담만 더욱 키우는 잘못까지 저지른 것이다.

◇경제위기 터진 뒤 곧바로 야당에 책임떠넘기기
 그리스는 좌파정권의 '회계조작'으로 유로존 가입에 성공했지만 한참 뒤 우파정권이 저지른 '속임수'가 드러나면서 파국을 맞았다.

 2009년 9월 총선에서 정권을 다시 잡은 사회당은 2009년 그리스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6% 남짓이라던 이전 신민주당 정부의 주장은 허위며 실제 적자폭은 12.7%라고 밝혔다. 이 적자폭은 나중엔 15.4%까지 상향 조정됐다. 메가톤급 폭로였다.


관련기사: 부정직한 정치인이 그리스를 '빚더미'로 몰았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갔지만 대책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토스 라이린치스 아테네대학 교수는 "사회당은 집권 직후 재정상황을 알게 됐지만 이듬해 초까지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파국의 종소리는 곧바로 울렸다.

 2009년말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강등하자 2010년 들어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회당 정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전 정부인사의 개인 비리를 조사한 것이었다. 라이린치스 교수는 "정부가 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착수했지만 범죄혐의를 밝혀내고 비리정치인이 법적 제재를 받도록 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윤강덕 코트라 그리스센터장은 "그리스에선 지난 30년간 감옥에 간 정치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여야간 책임공방이 벌어진 가운데 2010년 4월 국가신용등급이 정크등급으로 떨어지자 그리스정부는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례없는 위기 속에서도 책임떠넘기기에 급급한 정치권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화를 키운 셈이다.

 라이린치스 교수는 "경제위기가 촉발된 이후 정치권은 상대에 대한 비난에만 열중했다. 좌파든 우파든 모두 한통속이었음을 가리기 위한 처사였다"며 "그리스경제의 위기는 정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흥청망청 '파티경제'
 정치권은 뚜렷한 철학도 없이 단순히 표를 모으기 위해 유로존 가입을 이끌었지만 단일통화의 위험성은 인지하지 못했다. 유로존 가입 후 대외차입이 수월해지자 저금리를 만끽하며 정부는 해외자금을 마구잡이로 끌어왔고 국민들도 저금리를 즐기며 다가올 재앙은 생각하지 않고 연일 돈쓰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니콜라오스 게오르기코폴로스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가입 전 15%를 웃돈 인플레가 이후 5% 정도로 뚝 떨어지면서 시중에 돈이 넘쳐나자 너도나도 고급 수입차로 바꾸고, 주택을 샀다"고 말했다. 민간의 최종 소비 비중은 90%를 웃돌며 유럽 국가 중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심지어 외화획득의 핵심 산업이었던 관광업까지 내수에 의존할 정도였다.

 그러는 새에 2003년 2000억달러였던 총외채 규모는 2009년 5500억달러를 넘었다. 특히 이중 절반은 해외에서 끌어온 자금이었다. 포퓰리즘정책으로 소득이 증가한 국민들이 저축이나 투자보다 소비에 집중한 결과였다. 이에 유로존 가입 당시 GDP 대비 100% 수준이었던 누적 공공부채는 지난해 160%까지 '껑충'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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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좌파든 우파든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연금과 복지혜택을 조정하고 탈세를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하지 않았다. 원칙에 입각한 과단성 있는 정책 추진은 미룬 채 인기가 떨어질 것만을 우려한 것이다.

 파국을 향해 치닫던 폭주기관차를 애써 외면한 셈이다. 이 와중에 디폴트 우려가 제기돼 해외로부터 자금줄이 끊기자 그리스는 한순간에 파국을 맞게 됐다.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맨커 올슨 교수는 "엘리트는 자유시장의 가치를 지키고 정치적으로 후퇴하지 말아야 하며 경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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