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간 우리 둘, '월 120만원'의 생활기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 2012.03.29 12:10

[웰빙에세이]120만원으로 한달 살기… 첫달 성적, 6만5000원 남겨

마침내 '120만원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제부터는 정말 한 달에 120만원으로 살아야 한다. 이런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준비가 길었다. 아주 길게 보면 스물여덟부터 쉰까지 22년간 돈을 벌고 국민연금을 부었다. 모든 돈으로 시골에 작은 집을 짓고 오피스텔 두 채를 샀다. 이 오피스텔에서 매달 나오는 임대료 120만원이 우리 집의 한 달 생활비다. 이제부터 예순셋까지 그러니까 2024년까지 이렇게 살려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국민연금으로 살 것이다. 쉰까지 벌어서 연금 붓고 임대료 수입도 만들었으니 무작정 남의 돈에 얹혀사는 것은 아니리라.

쉰 즈음 삶의 무대를 문명에서 자연으로 옮기고 시골 벽지에서 철저한 자급자족을 실천했던 스코트 니어링. 그는 빠듯한 대학 강사 시절인 스물 다섯에 자신의 생계와 관련해 세 가지 기본원칙을 세운다.

첫째,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일 것
둘째, 학교 밖의 수입원을 늘일 것
셋째, 수입의 일부를 노후생활을 위해 적립할 것

그는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가르치려면, 부당한 부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가족의 생계를 보호하려면 최소한의 자립 기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를 위해 먹을 것은 가능한 한 직접 재배해서 만들어 먹고, 빨래 집짓기 수선·수리는 손수 하고, 최상의 건강을 유지해 병원비 부담을 예방하기로 한다. 집세·이자·세금 같은 고정비용을 늘이지 않고, 이자를 물어야 하는 돈이나 물건을 절대 꾸거나 빌리지 않기로 한다. 반드시 현금을 사용하고, 적어도 1년간의 실직을 견뎌낼 수 있는 예비비를 적립해 두기로 한다.

노후를 위해서는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스물다섯부터 마흔다섯까지 연금 보험료를 내고, 마흔다섯부터 예순 다섯까지 적립을 끊은 다음 예순다섯부터 죽을 때까지 연금을 수령하기로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같은 연금보험 상품이 없었다. 그는 몇몇 보험회사를 직접 찾아다니며 제안을 한 끝에 이 상품을 이끌어낸다.

스코트 니어링이 이런 인생 재무설계를 한 때가 1908년이다. 벌써 100년이 더 됐다. 그는 여든인 1963년에 자서전을 쓰면서 회고한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볼 때, 내 계획은 잘 진행돼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꼭 필요한 것은 충족되었고, 뜻밖의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그럭저럭 돈은 융통되었다."

그는 부자집 맏아들이었다. 부족한 게 전혀 없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평생 부를 경계했다. "나는 학창시절에 이미 부의 위험을 알게 되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에 따르다가 타락하고,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착취해 자기 배를 불린 다는 사실을. 한 사람은 부유하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하다면, 그 두 사람 다 불평등 때문에 타락한다. 부유한 나라는 부유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재물 때문에 부패하기 쉽다. 가난한 나라가 이토록 많은 세상에서 한 나라가 부유할 경우 부패의 정도는 훨씬 심각하다."


스코트 니어링은 100여년 전 이십대 나이에 이런 걸 간파했는데 나는 100여년 뒤 오십대가 되어서야 어렴풋 감을 잡겠다. 그나마 더 늦지 않아 다행이다. 이제부터는 헛된 부를 경계하며 바로 살아야겠다.

아무튼 '120만원 프로젝트'와 함께 나의 시골 생활도 시작됐다. 1년으로 잡았던 '하프타임'이 조금 일찍 끝나고 인생 후반전의 휘슬이 울린 것이다. 나와 동생은 바짝 긴장한다. 일단 120만원을 반반씩 나눠 60만원은 동생이, 60만원은 내가 쓰기로 했다. 동생은 부엌살림, 나는 그 밖의 바깥살림을 맡는다. 그런데 시작부터 암초다.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아슬아슬하던 배터리가 다 됐다. 이것을 바꾸는데만 13만원이다. 그렇다면 큰일 났다. 조만간 난방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등유 한드럼에 27만원이다. 의료보험은 어찌됐나? 매달 10일까지 내야 하는데…. 궁금할 틈이 없다. 바로 고지서가 날아온다. 전입신고를 했더니 아무리 시골이라도 돈 받아 가는 일은 착오가 없다. 11만6000원. 이것으로 벌써 52만6000원이다.

아직 전기와 수도 요금이 남았고, 휴대폰 요금도 내야 한다. 전기는 정식 개통이 안돼 몇 집이 묶어서 임시전기를 썼더니 누진이 돼서 이사후 보름치가 6만1000원이다. 상수도도 마을 관정 물을 끌어 올려 정수해 쓰는데 터무니없는 고비용 시스템이다. 보름치 물값이 3만2000원이다. 총계 60만9000원! 이것으로 내몫 60만원은 끝났다.

하지만 몇 가지 더 남았다. 휴대폰 요금 5만원, 차비 1만원, 저녁값 2만4000원…. 다 더하면 69만3000원. 그렇다면 이 정도로 끝인가? 월말쯤 자동차 기름을 넣어야 한다. 5만원 더하면 74만3000원, 14만3000원 초과다. 비록 한도를 넘었지만 첫 달 성적 치곤 봐줄 만 한 것 같다. 나는 한숨을 돌린다. 그런데 마지막 폭탄, 고지서가 한장 더 날아온다. 이건 뭐지? 자동차 환경개선부담금 고지서다. 2011년 하반기분 6만2000원을 내란다. 이로써 총액은 80만5000원이 되고, 적자액은 20만5000원으로 불어난다. 그나마 인터넷과 TV 개통이 늦어져 몇 만원이라도 굳었다.

동생 상황을 본다. 아낀다고 하는데 장보는 스타일이 도시적이다. 그래도 아직 약간은 여유가 있나 보다. 시골에 오니 자잘한 소비가 뚝 끊겼다. 장을 보려면 최소한 화천 읍내에 가야 하고, 큰 장을 보려면 춘천으로 나가야 한다. 참고 말지! 커피, 군것질, 외식비, 교통비 등 도시적 소비가 팍 줄었다. 텃밭을 가꾸면 먹을 거리 비용도 많이 덜 수 있을 것 같다. 텃밭 농사에 필요한 쟁기, 쇠스랑, 삽, 씨앗 등을 사고 값 5만원을 동생에게 넘긴다. 동생은 아슬아슬하게 60만원을 맞춘다. 의료보험, 휴대폰, 양재 수강료 등 개인 용돈 10만원과 산야초 효소 재료 준비 5만원, 농기구 5만원을 뺀 40만원이 순수 생활비다.

결국 3월 생활비 총액은 140만5000원. 20만5000원을 초과했다. 그런데 돌발 악재가 있으면 돌발 호재도 있게 마련. 사실 이달에는 난방 기름을 넣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아버지가 기름을 가져오셨다. 20리터 들이 통 5개를 꽉 채웠다. 총 100리터, 반드럼이다. 일하시는 공장에서 아껴 남긴 것이라 한다. 덕분에 3월은 견딜 만하다. 나는 기름값 27만원을 지출하지 않았다. 그래서 3월 가계부 성적은 장부상 합격이다. 총 113만5000원을 쓰고 6만5000원을 남겼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절반은 성공이다.

물론 내용은 실패다. 앞으로도 상황은 만만치 않다. 따져 보니 60만원으로 바깥살림을 하기에 약간이라도 여유가 있는 달이 4달 밖에 안된다. 5,6,7월에는 자동차보험료를 22만원씩 나눠 내야 한다. 그리고 겨울 11,12,1,2,3월에는 최소한 난방 기름을 한드럼씩 넣어야 한다. 이런 달에는 공과금과 세금만 합쳐도 60만원이 턱밑까지 찬다. 아무래도 자동차를 굴리고는 어려워 보인다. 이달만 해도 자동차 관련비용이 24만2000원에 이른다. 60만원의 40%다. 2년만 더 굴리다가 정 안되면 던지기로 했는데 2년도 어려워 보인다.

나는 놀고 먹기 위해 이같이 '가난한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는 물론 세상에도 해를 많이 끼친다고 판단해 일을 멈췄다. 나는 언론을 가지고 속된 장사를 한 것이 부끄럽다. 지금부터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나에게 좋고, 세상에도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을 하려 한다. 나는 더 자유롭기 위해, 더 풍요롭기 위해, 나와 세상에 더 좋은 기운을 보태기 위해 이 실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 있다. 돈이 최고인 세상인데 돈을 멀리 할 수 있을까?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 두려움은 뿌리가 아주 깊고 질기다. 나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 두려움을 바라보면서, 더 큰 자유와 풍요를 되새기면서 3월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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