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 20명에게 집 사준 '연탄집 사장님'

신동일 국민은행압구정PB센터 부센터장 | 2012.04.02 09:02

[머니위크]신동일 PB의 부자리포트/사채업자도 내 편 만든 '신용'

◆50여년 전, 30대 중반이었던 배승철(가명) 사장은 금융회사에 다니며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남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 것이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속은 시원했지만 세상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아내는 임신 7개월이었고 결혼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신혼부부는 당장 다음날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 현실은 배 사장의 선택을 실험하기라도 하듯 너무도 냉혹했다. 그렇지만 이미 던진 사표를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번뿐인 인생을 위한 선택


'까짓 거, 인생은 한번뿐인데 멋지게 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10가지 넘게 사업을 해봤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실패 횟수가 점점 늘어났지만 배 사장은 두손을 불끈 쥐고 지인에게 어렵게 돈을 빌려 소금 임대업을 시작했다. 당시 소금 임대업이 큰 인기를 끌었지만 그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큰돈을 투자해 대형 창고를 가지고 소금 임대업을 하는 경쟁업체에 비해 배 사장의 사업은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빌린 사업자금도 바닥나고 월세도 밀렸다. 한마디로 곧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였다.


사진 머니투데이

귀가 떨어져 나갈것처럼 추운 쪽방에서 추위에 떨며 고민하던 배 사장은 방을 따뜻하게 데워줄 연탄 한장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순간 섬광처럼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맞아, 연탄장사! 추운 겨울 집집마다 연탄을 공급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차피 연탄은 어느 집에나 꼭 필요한 거니까.'

당시만 해도 손으로 만든 연탄을 가정에서 난방용으로 사용했다. 다음 날 새벽, 배 사장은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길을 나섰다. 연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오며가며 본 적 있는 연탄 배달업소의 사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절박함이 통한 것일까. 키가 크고 건장한 배 사장은 마침 병에 걸려 그만둔 직원을 대신해 일하게 됐다. 그리고 그날부터 다른 동료들보다 몇배나 더 열심히 연탄을 배달했다. 그런 배 사장을 눈여겨본 배달업소의 사장은 그를 신임해 연탄산업 전반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당시 연탄산업은 도매업자가 광산에서 연료탄 가루를 사서 중소연탄공장에 연료탄을 공급해주는 식으로 이뤄졌다. 그중 도매업자의 마진이 가장 좋았지만 문제는 자금이었다. 6개월가량 온몸으로 부딪치며 연탄사업을 밑바닥부터 경험한 배 사장은 사업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자금문제를 해결하고 중소연탄공장의 연탄원료 구매책임자의 신임만 얻는다면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장 수중에 돈 한푼 없던 배 사장이었지만 사업구상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배 사장은 먼저 어떻게든 사업자금을 모으기 위해 사장에게 부탁해 배달 구역을 더 많이 배정받았다. 동료들이 한구역 배달을 마친 후 막걸리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배 사장은 두세 군데를 더 돌았다. 집에 들어오면 밤 12시가 넘기 일쑤였고 온몸은 땀에 절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고, 점점 사장의 신임을 받게 되자 배 사장은 왕따를 당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배 사장은 자신의 사업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기에 동료의 괴롭힘과 무시는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단련하는 좋은 채찍으로 삼았다. 항상 웃는 얼굴로 동료를 대하자 한명, 두명 배 사장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배 사장은 그런 동료들을 미래의 자기 회사직원으로 점찍어 두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나자 조그만 가게를 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사장은 부장 자리를 제안하며 배 사장을 붙잡으려 했지만 배 사장의 창업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거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한번 잘해보게. 그리고 이것은 내가 얘기해 놓은 박 사장일세. 한번 찾아가보게." 마음씨 좋은 사장은 배 사장에게 약간의 퇴직금을 쥐어주며 광산을 운영하는 박 사장을 소개해줬다. 그 덕분에 배 사장은 박 사장을 찾아가 연료탄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연탄공장들이 모두 공급업자를 갖고 있어 배 사장한테 연료탄을 사려는 공장이 한곳도 없다는 점이었다.

배 사장의 고민은 깊어갔다. 빨리 납품계약을 해야 자금 회전이 될 텐데 도무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납품담당자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때요?" 아내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배 사장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점심때가 되기 전에 납품담당자를 찾아가 명함을 건네고 얘기를 나누다가 식사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고 권했다. 담당자들은 처음에는 어색해 했지만 자주 찾아가서 안면을 익히자 자연스레 배 사장에게 친절을 베풀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장어를 파는 음식점에 납품담당자를 초대해 정보를 교환하고 식사를 대접했다. 배 사장에게 좋은 정보를 얻고 밥까지 얻어먹으니 미안해서라도 같은 값이면 배 사장한테 연료탄을 구입하는 거래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점점 더 거래처가 늘어나자 더 많은 연료탄을 구입해야 했다. 하지만 자금조달이 문제였다. 당시에는 은행 문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서 배 사장 같은 사람은 담보 없이 돈을 빌릴 수가 없었다. 고리의 사채를 쓰는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배 사장은 또 한번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사채를 쓰려다가 한 사채업자를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은 당시 명동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는 사채업계의 큰 손이었다. 배 사장은 아무리 어려워도 이자는 물론 원금 상환일을 단 한차례도 어기지 않았다. 게다가 명절 때가 되면 고마움의 표시로 고급양복을 한벌씩 선물하니 사채업자 사이에서 "배 사장에겐 한번에 20억~30억원을 빌려줘도 안전하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연말이면 석탄공사에서 연료탄이 많이 나왔는데 배 사장은 이렇게 쌓은 신용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해 그 연료탄을 사들였고 그것이 큰 수익으로 돌아왔다. 배 사장의 신용을 믿은 명동의 큰손 사채업자가 나서서 자금을 모아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원들의 회사

그렇게 5년가량 신용을 쌓으며 착실하게 사업을 다져가자 종업원이 2명에서 15명으로 늘어났다. "사업이란 시작해서 5∼10년간 망하지 않고 버티면 좋은 기회가 한두번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걸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배 사장에게 하늘이 내린 기회는 정부가 석탄가격을 인상한 것이었다. "연료탄을 샀는데 하루아침에 값이 2배로 오른 겁니다. 연료탄 가격이 몇년째 오르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드디어 보상을 받는구나 생각했죠." 연료탄을 50억원어치나 사놓았는데 값이 두배로 뛰어 순식간에 50억원을 번 것이다. 배 사장은 그 돈으로 어느새 20명으로 늘어난 종업원 모두에게 집을 한채씩 사줬다.

"사업은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는 직원이 있기에 회사가 있고 사장이 돈을 벌 수 있는 것이죠. 요즘은 그 사실을 잊어버린 사업가들이 많아서 안타까워요." 이후 배 사장은 큰 욕심을 내서 사업을 확장하는 대신 처음 사업을 시작하며 결심했던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원래 꿈은 큰 대학을 세우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모교에 조금씩 장학금을 기부하기 시작했죠. 예나 지금이나 사업도 그렇고 개인적인 일도 그렇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는 말자고 스스로 다짐해요."

배 사장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착실하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 것이 사업을 30년간 해온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젊은 직장인들에게는 창업을 미리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사실 저는 간섭받거나 지시받는 것이 싫어서 무작정 회사를 그만뒀어요. 물론 창업을 하는 데는 그런 무모함도 필요하지만 직장 다닐 때 미리 사업할 준비를 했더라면 시행착오를 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근무시간에 딴짓을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근무시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나 주말에 공부도 하고 사업아이템을 개발하라는 겁니다. 회사 사장도 아무 목적 없이 회사에 왔다갔다 하는 직원보다 미래를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하는 직원을 더 좋아할 겁니다."

배 사장은 "샐러리맨은 기본적으로 열심히 직장생활을 해야 하지만 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너무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한두번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 기회를 붙잡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신동일국민은행 압구정PB센터 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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