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불편한 진실···마트 문닫긴 했지만

머니투데이 전주(전북)=반준환 기자 | 2012.03.15 05:40
"재래시장 10년, 20년 내에 사라질 것입니다. 저희도 잘 안 가고, 어린 사람은 더 안 갑니다. 대형마트와 계속 싸움을 하는 이유는 (상인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굳이 그 분들을 끝까지 살려내겠다고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2006년부터 전통시장 지원예산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상인들이 계속 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중략) 과감히 재래시장도 행정에서 어느 정도는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영업규제에 나선 전주 시의회 의원들은 '불편한 진실'을 이렇게 털어놨다. 머니투데이가 최근 입수한 전주 시의회 본회의(지난해 9월5일) 회의록 내용이다.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들은 시청 관계자들과 재래시장 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말했다.

◇재래시장 살리자는 유통규제… 실제 이익 본 곳은 따로 있다

회의록에 따르면 의원들은 지역 농가들의 수익을 늘리기 위해서 유통업체들과 제휴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콩나물, 미나리, 배, 복숭아 등 특산물을 전국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 유통하지 못해 브랜드화에 실패했다"며 시정을 질책하는 내용이 있었다.

물론 시 의원들이 추진해온 정책이나 의회활동을 종합하면 재래시장에 대한 사명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재래시장이 사라질 것"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답답함에서 나왔을 것이다.

전주시 의회가 결정한 것은 매주 둘째, 넷째 주 일요일마다 대기업 계열 유통업체를 문 닫게 하는 것이다. 유통업체를 옥죄면 재래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게 명분이었는데, 실제 지역 소비자는 물론, 골목가게나 재래시장 상인들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드물었다.

전주 이마트 에브리데이를 비롯해 롯데슈퍼, GS수퍼마켓 등 직영점과 가맹점 총 18곳 SSM이 처음으로 일요휴무를 실시한 지난 11일 풍경은 어땠을까.

당시 재래상권을 대표하는 남부시장 가게의 1/3 이상이 문을 열지 않았다. 서부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장 인근에 노점을 차리고 있는 상인들만 손님을 맞았을 뿐, 대부분 가게가 쉬었다.

반사이익을 본 곳은 어디일까. 업계 관계자는 "SSM이 쉬었다지만 재래시장은 효과가 거의 없었고, 주택가 인근 골목가게도 수혜를 받지 못했다"며 "중소마트는 그러나 매출액이 평소보다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SSM 인근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중소마트들의 매출액만 크게 늘었던 셈이다.

전주시가 기업형슈퍼마켓(SSM) 일요 의무휴무를 첫 시행한 이달 11일 전통 재래시장인 남부시장 풍경. 평소보다 손님이 뜸했고 1/3 이상 가게가 문을 닫았다.


◇개인마트 주인 "10억원에 매장 인수해 달라" 요구도

전주에 있는 중소마트 매장면적은 500~1000㎡ 정도인데 일평균 매출액이 적게는 500만원에서 100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월 기준으로 3억원, 연간으론 30억원 가량 매출을 기록하는 곳들이다. 일부 마트 주인들은 지역 곳곳에 2~3개 마트를 갖고 있거나 프렌차이즈 가맹점을 내준 곳도 있다.


현지 유통업체 관계자는 "개인마트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중 일부는 예전에 1000㎡ 이상 점포가 있었던 사람들"이라며 "2억원에서 10억원까지 웃돈을 주고 대형 유통업체에 매장을 넘긴 후 다시 마트를 개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골목상권 살리자며 이마트 등 영업제한 시위를 하는 장면을 보니 그분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더라"며 "진짜 재래시장과 골목을 살리려면 대기업 뿐 아니라 이런 마트들도 같이 규제해야 하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전주시의 SSM규제는 점포규모(1000㎡ 이상)를 기준으로 하는데, 지역에 본점이 있는 개인마트는 예외조항으로 처리하고 있다.

마트를 유통점에 넘기고, 다시 개업하는 이른바 '마트 매매'가 본업이 된 이들도 많다고 한다. 실제 홈플러스 등에 확인해보니 개인마트들이 대형유통업체에 매장인수를 제안한 사례가 적잖았다.

◇진짜 골목 자영업자가 하는 SSM은 '역차별'

전주시 SSM은 유통업체들이 운영하는 직영점과 지역 상인들이 가맹점 형태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점이 있다. 프랜차이즈점도 영업규제 대상이다

프랜차이즈 SSM 매장 한 곳을 방문해 보니, 15명의 지역 상인들이 함께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전체 매장운영은 가맹점주가 맡지만 야채나 과일, 생선, 식육 등은 각각 다른 자영업자들이 들어와 영업하는 '매장 내 매장' 형태였다.

이들은 인근 도매시장이나 농축산가 등에서 상품을 사오고, 이를 매장에 진열해 팔고 있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70% 정도였고, 지역구매가 불가능한 세제, 샴푸, 가정용품 등만 프랜차이즈에서 공급받았다. SSM 간판만 달았을 뿐, 사실 아파트 상가슈퍼와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이곳 가맹점주는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재래시장 상인과 다를 바가 없는 처지"라며 "지역 직영점에서 하는 세일행사 등과 별개로 운영하니 고객들에게 짝퉁마트 아니냐는 항의도 받곤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지역주민들의 오해가 풀리며 이제 겨우 먹고살까 했는데, SSM 규제 때문에 무척 난감하게 됐다"며 "일요일 매출이 평소보다 10~15% 가량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전주시 의원들은 이번 SSM 규제로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고, 개인마트들도 덩달아 반사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과연 올바른 정책적 판단이 내려진 건지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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