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최철규 HSG 휴먼솔루션그룹 대표 | 2012.03.05 10:24

[머니위크]청계광장

주말 내내 감기로 고생했다는 부하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말을 하겠는가? 놀랍게도 "힘들었겠구나"라고 말하는 리더는 많지 않다. 쉽고 간단한 이 말 대신 많은 이들이 "말도 마, 나도 지난달에 감기에 걸려서…"를 선택한다. 우리나라의 사회 지도층들이 패널로 참여하는 TV 토론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소통은 없다'.

얼마 전 <부러진 화살>을 주제로 한 TV 토론을 봤다. '영화내용은 가짜'라는 패널의 말과 '법원이 문제 있다'는 상대편 패널의 말이 공전(空轉)했다. 왜일까?

영화 비판 패널들은 대부분 판사출신이다. 판사의 '소명'(召命)은 무엇인가? 바로 문제되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여 객관적 진실(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지난 수십년간 이 일을 천직(天職)으로 여겨왔던 패널들에게 사건의 사실(fact) 하나하나는 너무나 중요한 이슈다. 이들 입장에선 확실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영화가 묘사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렇다면 영화 지지 패널은? 출연자들은 시민단체에서 또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들이다. 상대적으로 봤을 때 일반인의 시각에 더 가깝다. 이들 입장에선 영화 내용 하나하나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감정과 인식이 더 관심이다. 그러니 자꾸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 변해야 한다"는 얘기만을 반복하게 된다.

각자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건 각자하는 '연설'이지 '소통'은 아니다. 심리학적 시각에서 되짚어 보자. TV 토론이 마치 녹음기를 반복 재생하듯 느껴졌던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양측이 '관점전환'(Perspective Taking,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관점전환 능력이 만 6세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슬픈 사실은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가면 갈수록, 성공에 대한 추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관점전환 능력이 '퇴행'한다는 것이다. 마치 루이 14세의 왕비 마리 테레즈가 배고픈 백성들에게 "빵이 없다면 파이 껍질이라도 먹어라"고 말했듯이.

관점전환에 실패하면 그것은 곧 '공감'(Empathy)의 부재로 이어진다. 영화가 논란이 되자 법원은 공식입장을 밝혔다. '영화는 실제가 아니고 이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커져서 유감'이라는 말을 하는 데 대화의 90%를 썼다. 마지막 한문장만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이었다. 공식입장이 나왔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왜 일까?


그 이유는 '공감'(Empathy)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얘기부터 먼저 쏟아 냈다면 어땠을까? "국민이 법원을 비판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겠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 국민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으면 풀고 법원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양승태 대법원장, 1월31일 강연 중). 어떤가? 이런 얘기가 먼저 언급된 다음에 '영화는 실제가 아니고…'라는 설명이 나왔다면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와 신뢰를 얻어내지 않았을까?

이것이 바로 '공감'의 힘이다. 인간은 이해 받길 원하는 존재다. 상대가 나의 감정이나 욕구, 인식 등을 공감해 줄 때 마음의 문이 열린다. 비록 상대가 나의 요구를 받아 주지 않거나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상대방을 말이 통하지 않는 벽으로 느끼진 않게 된다.

코칭 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공감화법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보자. 일은 죽어라 열심히 하는데 성과는 절대 나지 않는 '마이너스의 손'이라 불리는 부하가 있다. 그가 연말 코칭시간에 찾아와 말한다. "사장님, 저 매일 새벽 1시에 퇴근하는 거 아시죠? 제발 내년에는 승진을…"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리더들은 이렇게 말한다. "승진? 당신이 아직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구먼. 당신이 한 일이 뭐야?" 이런 대화법이 철저히 공감이 배제된 소통이다. 그렇다면 공감화법은? "지난 1년간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승진이란 보상을 받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구먼.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네. 승진하려면 열심히 한 것도 중요하지만, 성과가…"

공감이란 상대의 요구(승진)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상대의 욕구(공정한 보상)를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것이다.

베스트 클릭

  1. 1 "유영재, 선우은숙 친언니 성폭행 직전까지"…증거도 제출
  2. 2 장윤정♥도경완, 3년 만 70억 차익…'나인원한남' 120억에 팔아
  3. 3 차 빼달라는 여성 폭행한 보디빌더…탄원서 75장 내며 "한 번만 기회를"
  4. 4 갑자기 '쾅', 피 냄새 진동…"대리기사가 로드킬"
  5. 5 예약 환자만 1900명…"진료 안 해" 분당서울대 교수 4명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