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는 마음대로" 美의 유상급식 충격

머니투데이 뉴욕=권성희 특파원  | 2012.02.02 15:35

[권성희의 뉴욕리포트]우리 사회 이슈들 '이분법'으로 논의되는게 아닌지…

"다른 데 쓸 돈 안 쓰고 아이들에게 밥은 공짜로 먹일 수 있잖아요?"

"능력이 되는 사람은 자기 아이 밥값 정도는 내야 하는 거 아닌가?"란 나의 말에 한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무상급식이 한창 논란이 됐던 지난해 중반의 일이다.

"부모가 돈이 있든, 없든 학교 다니는 아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밥을 먹는 문제"라고 후배는 말했지만 학교 급식은 어느새 아이들이 학교에서 밥을 먹는 문제를 넘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이념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나는 한국과 전혀 다른 새로운 학교 급식의 세계와 만났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뒤 들른 학교 사무실에서 "급식을 아직 신청하지 않았으니 며칠은 도시락을 싸야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도시락이라니? 급식값은 나중에 내더라도 학교에 오면 아이에게 점심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황당해하는 나에게 사무실 직원은 용지 2장을 줬다. 하나는 인터넷을 통해 급식을 신청하는 방법이 적힌 설명서였고 하나는 금요일 점심 때 피자를 신청할 수 있는 용지였다.

사무실 직원은 "여긴 한국 학생들이 많아 한식도 신청할 수 있다"며 "한국 학부모회에서 이메일을 보내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일단 학교에 가면 일괄적으로 급식을 주는 체제에 익숙해 있던 나는 도무지 뭐가 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알고 보니 급식은 각자가 외부업체에 신청해 학교에서 배달받는 방식이었다. 이 업체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급식이 가능해 금요일에는 학교 학부모회에서 돈을 내고 신청하는 학생에 한해 피자를 제공했다. 아울러 사무실 직원이 알려준 대로 한식을 원하면 다른 외부업체에 한식 급식을 신청할 수 있었다.

급식을 신청하러 홈페이지에 접속한 나는 또 다시 충격을 받았다. 일주일, 한달, 분기 단위로 일괄적으로 급식을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날만 신청할 수 있어서였다. 예를 들어 1, 2일은 급식을 신청하고 3, 4일은 신청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한달치를 꼭 미리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3~4일 전에만 신청하면 급식을 배달 받을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매일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메인메뉴만 햄버거, 핫도그, 샌드위치 등등 10가지 가량이 됐고 돈을 더 내면 유기농으로도 신청이 가능했다. 여기에 샐러드, 후식, 음료까지 각각 3~4가지씩 선택이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각자 다른 점심을 먹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아이와 급식을 배달 받는 아이만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급식을 배달 받는 아이도 서로 다른 메뉴의 점심을 먹었다. 한 아이는 햄버거와 야채 샐러드, 크래커, 주스를 먹고 다른 아이는 파스타와 스프, 오렌지, 생수를 먹는 식이다.

학교에 가면 모두 같은 급식을 먹는 한국과 각자 알아서 도시락을 싸든 급식을 신청하든 선택하고 급식조차 모든 학생이 수십가지 조합으로 서로 다르게 배달 받아 먹는 미국.

이런 경험을 한국 기업의 한 주재원에게 얘기했더니 그는 "미국은 각 도시, 각 마을마다 학교 체제가 달라 급식 체제도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각 지역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급식 체제를 운영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이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주재원으로 지낸 적이 있다며 프랑스의 학교 급식은 또 다르다고 소개해줬다. 프랑스는 한국처럼 모든 학생이 똑같은 점심을 먹되 각자 내는 급식값이 다르다고 한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똑같은 점심에 대한 비용을 각자 다르게 지불하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어떤 급식 체제가 우월한지는 별개 문제다. 다만 학교 급식이 유상과 무상이라는 이분법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급식의 세계조차 이처럼 다양한데 다른 사회 이슈들은 오죽하랴. 하지만 급식을 둘러싼 유상-무상 논쟁처럼 우리 사회의 다른 많은 이슈들도 이분법으로만 논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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