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타는게 왜 성차별?" 1조 굴리는 슈퍼맘

머니투데이 구경민 기자 | 2012.01.24 15:20

[인터뷰]삼성운용 민수아 본부장, 여의도 유리벽 깨기까지

'따르릉...'
"며늘아기야. 축하한다. 몸 잘 챙기고 고생이 많다."

삼성자산운용 민수아(41) 주식운용본부장과의 인터뷰 도중 시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10살짜리 자녀를 둔 한 가정의 엄마이자 부인이며 며느리인 민본부장은 김유경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이사)에 이어 여성으로는 2번째로 주식운용 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국내 대형 운용사 기준으로는 처음이다.

남자들도 견뎌내기 힘들다는 여의도 증권가에서 여성으로 본부장의 자리에 오른 그는 금융업과 거리가 먼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에 LG그룹에 입사해 발령이 난 곳은 LG화재(현재 LIG손해보험) 투자팀이었다. 투자팀에서 주식, 채권, 대출 업무 등 자금 운용을 맡게 되면서 그녀는 특히 주식의 세계에 매료됐다.

2년 후인 98년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팀장을 포함한 임원들이 회사를 나갔고 2~3명이서 주식운용 업무를 꾸려 나가기 시작했다.
몇 안 되는 인력이었지만 오히려 그녀는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발품을 팔아가며 수많은 기업을 직접 탐방했고 수백 개의 기업들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일을 배울 선배들도 없어서 서점을 찾아 경제관련 책이란 책은 다 찾아봤다. 전공도 경제, 경영학과가 아니었고 증권, 운용사가 아닌 화재에서 주식운용을 한다는 것은 전문성 측면에서도 뒤쳐진다고 생각해 남들보다 더 노력 했다.

2002년 그녀는 새로 설립된 인피티니 투자자문 주식운용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IMF도 견디며 LG라는 대기업 타이틀을 버리고 새로 설립되는 자문사라니.

"LG화재에서 주식을 운용하다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는데 저는 주식이 아니면 안되겠더라고요. 또 한 분야에서 제 스스로 만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리를 옮긴다는 것도 아쉬웠고요. 자문사로 옮기면서 한 우물을 파서 스스로 만족할 할 수 있을 때까지 주식운용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자문사로 가게 됐습니다."

자문사에서 꾸준한 성과를 내면서 인정을 받자 그녀는 2006년 삼성자산운용에 합류해 가치주와 중소형주 펀드를 맡게 됐다.

머리 좋은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못 따라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따라간다고 했다. 즐기는 사람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도 깬다.

여성 임원, 책임자들은 대부분 일을 하느라 결혼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민 본부장은 결혼 한 지 10년이 넘은 슈퍼맘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3~4년은 힘들었다고 한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면 후회할 것 같아서 힘든 시기를 즐기기로 했다.


"회사 끝나고 집에 오면 몸이 녹초가 되죠. 하지만 아이를 보면 다시 힘이 나더라고요. 늦은 시간이라고 해도 아이와 놀아주고 오히려 매일 아이를 보는 주부들과 달리 시간 날 때 마다 아이와 함께 하고 더 많은 사랑을 쏟으려 노력했죠."

민 본부장은 사회에 진출한 여성 후배들에게 남녀차별을 의식하고, 남자들과 경쟁해 살아남겠다는 생각도 버리라고 말했다.

"저는 회사 들어와서 커피도 타봤어요. 사회 진출한 후배들은 어떻게 여자가 그런 일을 하느냐고 '성차별'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버렸어요. 제가 커피를 탈 수도 있는 것이고, 대신 무거운 짐은 남자 동기가 들어주면 되잖아요. 서로 돕고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면 남녀 차별이라는 개념도 없어지는 것 같아요."

단지 남녀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민 본부장은 "남녀를 떠나 동기들과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하고 같이 잘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로 배려하며 재미있게 일을 해나간 것이 결국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이유인 것 같다"고 답을 내렸다.

민 본부장은 꾸준히 안정된 수익을 내면서 후배들이 마음껏 운용을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민 본부장이 운용중인 '삼성중소형FOCUS' 펀드는 지난해 수익률이 12.7%로 시장수익률(-12.0%)을 크게 웃돌았다. 안정적인 수익을 낸 덕에 연기금 등 사모펀드로의 자금까지 늘어나 민 본부장이 굴리는 자금만 1조원이 넘는다.

민 본부장은 "우리나라같이 크지 않은 시장에서는 이른바 `가치주`라 하더라도 성장 동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래 성장성을 기업 가치 개념에 포함시켜 꾸준하게 수익을 내는 기업에 투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제조업이었다면 이제 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업과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 내는 인터넷, 화장품 같은업종이 세계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부장으로서 그는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일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책임은 내가 지고 펀드매니저들은 자유스럽게 본인의 운용 스타일을 펼쳐나갈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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