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갓 졸업한 열일곱의 여공이 국내 1호 국제 공인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다시 컨설팅펌 대표로 한발 한발 걸어온 궤적은 한편의 소설같다. 퍼실리테이션 전문 컨설팅펌 인피플의 채홍미 대표(39) 얘기다.
◇산업체특별학급, '외딴방'은 있었다
하루에 버스 한 대 구경하기 어려웠다. 80년대까지 전남 보성은 그랬다. 농사를 지으며 밥은 먹고 살았지만 2남 4녀의 학비를 대는 건 역부족이었다.
선생님은 부모님을 수도 없이 설득했지만 장남 바로 밑 장녀였기에 포기해야할 게 많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혈혈단신으로 광주 전남방직에 취직했다.
교복입고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대학교는 꼭 또래들과 같은 시기에 입학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직원이 2000명에 달하는 대기업이었던지라 산업체특별학급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주 3교대 근무 때문에 출퇴근 매주 바뀌면 수업 시간도 그에 맞춰 반이 바뀌었다. 담임선생님조차 수업시간을 헷갈려할 정도였다.
작업반장들은 졸업 후 직원들의 이탈을 우려해 수업을 못 듣도록 일부러 12시간 근무조로 편입시키곤 했다. 졸음을 참아가며 버텼지만 수업 진도가 제대로 나갈리 만무했다. 결국 산업체 특별학급을 그만두고 검정고시학원의 야간반에 등록했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되면 곧바로 학원으로 향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도시락을 싸올 틈도 없었다. 같은 반 학원생들은 '공순이'라고 놀렸다.
학원경리 일을 보던 여직원이 도시락을 싸와 매일같이 나눠줬다. 찾을 수 있다면 꼭 한 번 만나 "그 때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도시락 싸서 제 때 출근하고 자기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보다 제 시간에 퇴근하는 경리가 꿈이었어요."
90년 광주를 떠나 지인의 소개로 서울 자양동의 화장품 로고 인쇄공장에 들어갔다. 방직공장에 비하면 일은 수월한 편이었다. 대입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배화여전 영어통역과에 입학했다.
◇'광장'으로 나와 소통을 디자인하다
94년 GE와 삼성의 의료장비합작사인 GE메디칼에 입사했다. 여직원은 고졸출신이 대부분이고, 컴퓨터는 도스(DOS)가 대세였다. 면접관은 채 대표처럼 '대가 쎈' 여직원을 뽑을지, 말지 고심했다고 한다.
8년간 아침에 눈 뜨면 회사 갈 생각에 행복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주경야독을 계속, 한양대 경영대학원까지 마쳤다. 모기업인 GE의 '6시그마'와 잭 웰치 전 GE 회장이 자신의 최대업적으로 꼽은 '워크아웃 타운미팅'을 도입시킨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
학력이 실력을 대신하는 컨설팅 업계에서 그녀가 고유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독특한 업무이력 때문이었다. 국내최대 토종 컨설팅업체 네모파트너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컨설턴트로 전직했다.
일회적인 전략 컨설팅보다 소통을 증진시켜 클라이언트가 컨설팅경험을 자산화 할 수 있는 프로세스 컨설팅에 더 매력을 느꼈다. 2008년 초 국내 1호 IAF(International Association Facilitation) 공인 퍼실리테이터로서 인피플을 설립했다. 퍼실리테이션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던 때다.
퍼실리테이션이란 조직회의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기술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회의에서 접하는 갈등과 의견대립을 원활히 해소하고 모든 구성원이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하는 체계다.
"퍼실리테이터는 답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 내부 역량으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내부 회의를 디자인하고 이끄는 것이 주요임무에요. 전략컨설팅과 달리, 답을 도출하는 경험을 조직구성원들이 체득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전략컨설팅은 외부환경이 빨리 변해서 컨설팅 결과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일회성 프로젝트 치고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아 중소기업이 접근하기 어렵다면, 퍼실리테이션은 그 반대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인피플의 주요 클라이언트도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들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퍼실리테이션의 가치를 느낀 대기업들이 주로 러브콜을 하기 때문이다.
퍼실리테이터이자 이제 5년차 CEO, 채홍미 대표는 "꼬인 기업경영도 굴곡있는 인생도 결국 '사람 속(인피플)'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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