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손해 안봐" 하는 순간 '덫'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12.01.13 09:05

[머니위크 커버]매몰비용의 함정/전문가에게 듣는 '함정 탈출법' -이계평 IGM 교수

편집자주 | 영국과 프랑스가 자존심을 걸고 개발했다가 2003년 운항을 중단한 콩코드 여객기. 로밍 서비스의 대중화로 인기를 잃은 위성 휴대폰에 투자를 지속한 모토로라. 이 두 회사의 공통점은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졌다는 점이다. 행동경제학에서 사용하는 '매몰비용의 함정'은 더 큰 손해를 부르는 인간의 행동양식에 대한 이야기다. 미래에 손해 볼 것이 예상되고 있음에도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나 시간, 비용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고 사업이나 투자를 이어가는 현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집을 구입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출 받았다가 이자 빚에 허덕이고 있는 가계가 좋은 예다. 본전 생각에 집값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다가 손실을 키우고 있는 경우다. 매몰비용에 발목 잡힌 가장 흔한 사례는 주식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고점에서 물린 주식을 손절매 하려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소위 '물타기'를 했다가 손실을 키운 사례가 주변에 많은 이유다. 투자에 대한 원칙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신년은 기업의 경우 지난 한 해동안의 사업별 실적을 평가하고 신규 사업에 대한 의욕을 보이는, 가계의 경우 지난 1년간의 재무 상황을 정리하고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시기다. 그간 잘 챙겨보지 않았던 재무제표나 가계부를 꼼꼼히 챙겨보는 때이기도 하다.

입·출금 내역을 살펴보다 보면 성과가 시원치 않음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항목이 있다. 이왕 시작한 이상 결과를 기다리자는 심산으로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째 끌어오고 있는 계획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판단을 행동경제학에서는 '매몰비용의 함정'으로 설명한다. 미래에 손해 볼 것이 예상되고 있음에도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나 시간, 비용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고 사업이나 투자를 이어가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계평 IGM 세계경영연구소 교수와 '매몰비용의 함정에서 탈출하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매몰비용의 함정에 대한 컬럼을 봤다. 콩코드 여객기나 모토로라의 사례를 예로 들었더라.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진 국내 사례는 없나.

▲국내 사례의 경우 새만금 방조제 사업을 예로 들을 수 있다. 1991년 첫 삽을 뜬 이래 새만금 간척사업의 추진여부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환경단체와 전북주민은 경제성도 없고 환경파괴의 우려가 예상된다며 사업 중지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6년 법원은 '이미 1조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 국가적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실패한 사업이냐에 대한 이견은 있지만 매몰비용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은 맞다. KTX 역시 사업 중반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일단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평가는 비교적 후한 편이다. 편의성이나 볼거리 측면에서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기업이라면 스카이라이프의 위성TV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지금 흑자라고는 하지만 위성TV가 아닌 IPTV와 연계된 사업이다. 케이블TV가 파이를 키우고 있던 무렵 투자를 늘리기 보다 빨리 사업을 접었어야 했다.

-개인이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진 사례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크리스토퍼 시의 책 <이코노믹 액션>에 보면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진 자신의 경험이 나온다. 그의 부모는 저자가 유학차 보스턴에 머물러야 하는 사정을 생각해 7200달러짜리 집을 구해줬다. 이후 지역 부동산 경기가 하락했고 유학이 끝난 저자는 5800달러에라도 이 집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부모는 저자에게 "경제학 박사가 원금 보존의 법칙도 모르냐"는 핀잔과 함께 7200달러 밑으로는 팔 생각이 없다고 했다. 결국 그 집은 8년 뒤 3800달러에 팔렸다.


(사진=뉴시스)

사실 나도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2년 전 까지만 해도 지금 사는 강서구 염창동의 아파트의 가격은 4억5000만원이었다. 지금은 3억5000만원에도 팔릴까 말까 한 수준이다. 개인 입장에서 1억원이라는 돈은 너무 큰 금액이다. 현재 이사 계획 중이다. 앞으로의 시장이 어둡건 말건 다른 지역도 똑같이 떨어졌다.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크리스마스 때 4인 가족이 40만원에 가까운 돈을 주고 '호두까기 인형'이라는 발레를 보러갔다. 한 20분 보면 어떤 극인지 대충 감이 오지 않나. 나한테는 안 맞더라. 내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그 시간에 글을 쓰거나 돈을 버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지만 가족의 행복 때문에 자리를 지켰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비싼 돈을 주고 극장에 들어간 사람은 재미가 없더라도 중간에 나오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런데 '불법 다운로드'를 받는 사람은 5분 보다 재미없으면 미련 없이 지운다. 영화가 재미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매몰비용이 있고 없고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손절이 최선의 선택이냐에 이견이 있을 듯 하다.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그런데 전문가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관적이라고 주장해도 자신만 낙관적으로 보는 상황이 문제다. 이런 결정은 냉철하고 객관적인 것과 거리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틀렸다는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다. 상황이 불리하게 흘러가도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투자를 계속해 나가는 현상을 피하라는 것이다.

기업이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처럼 일단 해보자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사업이 마무리되고 나서 판단하자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중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효과만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이다. 결국 CEO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자각하지 않는다면 조직은 변하지 않는다.

-행동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얼마 전 수강자를 대상으로 불확실성과 관련해 실험을 했다. 80만원 짜리 상품을 선택하거나 혹은 80%의 확률로 100만원, 나머지 20%의 확률로 0원을 받는 복권을 선택하는 질문이었다. 대상의 대다수는 상품을 선택했다. 이어 범칙금 80만원을 물겠느냐 아니면 80%의 확률로 100만원, 20%의 확률로 0원의 벌금을 내는 복권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다수가 복권을 선택했다. 만약 안정을 추구한다면 확정된 선택을 해야 하지만 손해가 굳어지는 것을 기피하는 심리가 깔려있는 결과다. 이른바 손실회피심리다.

마찬가지로 한번 비용이 들어가면 이익으로 돌아온 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심리가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보는 인간의 특별한 심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손해 보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이유다.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이 있나.

▲우선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은 이미 소모돼 없어진 비용이다. 앞으로의 가능성에 기준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손해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흔히 도박 중독에 빠진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본전만 찾으면 손 털겠다'는 것이다. 손을 털기 전까지 손해는 확정되지 않았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뇌과학에서는 지속적인 의식으로 이 같은 행동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로필>서울대 경제학 학사·석사·박사/발텍 코리아 컨설팅 시니어 매니저/LG전자 DDM 사업본부 e-Biz 그룹장/LG경제연구원 산업센터 선임연구원/(현)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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