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인질'된 임대아파트 세입자

머니투데이 최윤아 기자 | 2011.12.27 04:31

['부도사업장' 9093가구의 피눈물]


- 사업주, 국민주택기금 연체로 경매처분 위기
- 보증보험 가입안돼 한 푼 못 받고 나앉을 판
- 정치권, 임대보증보험 강제·사업주 처벌 추진


# 충남 공주의 임대단지인 G아파트에 사는 서모(27)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언제 쫓겨날지 걱정돼서다. 지난 2009년 서씨는 임대보증금 3300만원(전용 49.5㎡)에 이 곳으로 이사왔다. 처음 1년은 걱정없이 살았다. 그러나 지난 9월 은행으로부터 이 아파트가 곧 경매처분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업자가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국민주택기금을 6개월 이상 연체해 은행이 채권회수를 위해 아파트를 통째로 경매에 부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경매 돌입전 사업자가 밀린 이자를 납부했지만 이후 국민주택기금은 또다시 밀렸고 내년 2월까지 갚지 못하면 경매절차에 돌입한다.

서씨는 "경매로 넘어가면 전 재산인 보증금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된다"며 "책임져야 할 사업자가 오히려 이를 이용해 '더 이상 돈이 없으니 보증금 날리지 않으려면 그냥 분양전환 받으라'고 압박한다"고 말했다.

# 같은 지역 Y아파트에 사는 정모(34)씨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2002년 입주한 이 아파트는 건설사 자금난 악화로 지난 10월 경매절차에 들어갔다. 주민 80%가 경매전 울며겨자먹기로 분양전환을 받았지만 정씨는 이를 거부했다.

'보증금 날리기 싫으면 분양받으라'는 건설사의 태도를 참을 수 없어서 였다. 정씨는 "입주민에 말 못할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입힌 사업주가 현금 470만원을 더 가져와야 분양전환해 주겠다며 거드름을 피우더라"며 "자금관리 못한 건설사 잘못을 왜 임차인이 메워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전국 9000여가구의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이 사업주 부도로 거리에 내몰릴 위기에 처했지만, 현재 뚜렷한 대책이 없어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얌체 사업주들이 이같은 상황을 악용, 웃돈 거래를 유도하는 등 입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27일 자유선진당 심대평 의원이 국토해양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말 현재 건설사가 국민주택기금을 6개월 이상 연체해 부도사업장으로 지정된 임대아파트는 전국적으로 1만2300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아파트는 9093가구로, 보증금만 1조800억원이다.


건설사가 일정기간내 국민주택기금을 납부하지 못할 경우 입주민들은 보증금 한 푼 돌려받지 못하고 거리로 나앉게 된다. 이를 구제하기 위해 지난 2007년 '부도 공공건설 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하 임차인 보호 특별법)'이 개정됐지만 수혜 대상이 한정돼 '한시적'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당시 개정법에 따라 2009년 12월 이전에 부도난 임대아파트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들여 임차인에 같은 임대조건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추가적인 조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오훈 정책위원장은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건설사 부도는 계속 발생하고 있음에도 변제 기간이 한정돼 2009년 이후 부도 피해자는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임대아파트에 대해서도 임대보증보험을 강제 가입시키고 국민주택기금 연체 업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회 국토해양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인 최규성 의원은 "임대아파트를 짓는 건설사가 애초에 대한주택보증의 '임대보증보험'을 가입하지 않아 비롯된 문제"라며 "임대보증보험 가입과 기금 연체 건설사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등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선 정부도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다만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할 때 당장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토부 한만희 제1차관은 "임대주택법이나 임차인 보호 특별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지만 관련 모든 법을 손질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차관은 그러면서도 일시에 경매처분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어서 일각에서 지적하는 재원 조달 문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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