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아름다운 부자

머니투데이 지영한 국제경제부장 | 2011.12.27 15:33
워렌 버핏의 전기작가 앤디 킬패트릭은 1년중 364일은 버핏에 대한 관찰과 집필에 몰두하고, 나머지 하루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를 찾는다고 한다. 기자가 그를 만난 건 2010년 5월 버크셔 주총장에서다.

앤디는 아버지가 근무하던 워싱턴 포스트에 버핏이 투자한 것을 계기로 그에게 관심을 두었다고 했다. 20년간의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버핏의 전기작가로 활동한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는다.

앤디는 버핏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잘 알려진 예이지만, 버핏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미국의 정신'이 아니라며 상속세 폐지를 앞장서 반대했고, 스스로 거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내놓기로 약속했다.

앤디는 버핏이 투자에 관한한 천재이지만, 그 보다는 30달러짜리 스테이크와 체리향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자연인 버핏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버핏이 세계에게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지만, '갑부'가 아닌 '현인(賢人)'으로 불리는 게 가장 맘에 든다고 했다.

버핏이 도덕적으로도 완결무결하다고 말한다. 버핏 집에 든 도둑이 빈손으로 도망쳤던 사건은 버핏의 소박한 생활을 반증한다. 유머있고 따뜻한 부자, 워런 버핏에 반한 앤디는 그날도 '현인'의 기록을 남기는데 신명이 난 듯 보였다.

주식 투자에 관한한 한국에도 버핏 못지 않은 이들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민병갈 선생도 '투자의 대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는 가치에 비해 주가가 훨씬 싼 기업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한 예로,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4만~5만원대에 사들여 주가가 500만원에 이르도록 장기간 보유해 많은 돈을 벌었다. 1달러짜리 투자대상을 50센트에 사는 것이 버핏이 말하는 가치투자라고 본다면, 민 선생은 정통파 가치투자자로 볼 수 있다.


민병갈 선생이 걸어온 발자취도 버핏 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선생은 1979년 한국에 귀화했다. 미국 동부 펜실베이나주가 고향이고 원래 이름은 칼 밀러였다. 미 해군 일본어 통역장교로 1945년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한국은행과 쌍용투자증권 등에서 일했다. 전쟁고아를 돌보다 4명을 입양하여 훌륭하게 키웠다. 자신은 결혼도 마다한 채 싱글로 평생을 살았다.

남몰래 주위에 선행을 베풀었던 선생은 '천리포 수목원'을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가꾸어, 우리 사회에 마지막 선물로 남긴 채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영국과 미국의 양대 펀드평가사로부터 최우수 역외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렸던 최남철 삼호SH투자자문 대표는 민병갈 선생과의 인연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1997년 첫 만남을 가진 그 해 여름, 두 사람은 40년의 나이차를 잊은 채 천리포 수목원에서 여름휴가를 함께 보냈다. 최 대표는 민병갈 선생이 마치 성직자같이 맑았고 소박한 일상에서도 늘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최 대표는 추잡한 욕심과 탐욕이 번민케 할 때마다 민병갈 선생의 진실과 사랑, 나눔의 정신이 숲이 되어 우거진 천리포 수목원의 그 오솔길을 걸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일전에 기자에게 민 선생과의 인연이 한 토막 실린 책을 주면서 '큰 꿈꾸시고, 아름다운 부자되세요'란 글을 써주었다. 돈 버는데는 '젬병'인 기자지만 그래도 싫지 않은 덕담이었다. 따뜻한 새봄이 오면 천리포를 찾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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