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 눈 앞서 사업 보류 결정
- "이게 말이 되나" 주민들 흥분
- '속도조절론' 해법 찾기 고민
실제 서울시는 지난 11월2일 '윤덕영가'(서울시 민속자료 23호)와 추사 김정희의 '바위글씨' 등 문화재가 보존돼 있다는 이유로 종로구 옥인동 재개발사업을 관리처분 단계에서 보류했다.
이와 관련, 박원순 시장은 지난 9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올 만큼 아름다운 지역인데 벌써 관리처분 단계까지 가게 돼 안타깝다"며 "추억들이 골목마다 남아있게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옥인동 47번지 재개발 예정지 일대를 둘러본 결과 약 30%에 달하는 집이 빈 채로 방치돼 있었다. 주택이 낙후돼 단열이 되지 않는데다 도시가스도 연결되지 않아 추위를 못이기고 이사를 간 것이다.
추위를 막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지붕 위에 비닐장판을 덮어둔 주택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미로처럼 형성된 골목은 성인 1명이 지나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좁았고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재래식화장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거환경 개선이냐 vs. 속도조절이냐'
박 시장은 후보시절 전·월세난 완화와 난개발 방지를 위해 각종 개발사업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발사업이 서울 전지역에서 우후죽순 진행될 경우 멸실로 인한 이주수요로 전세난이 심화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등의 저서를 통해 마을공동체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더욱이 옥인동 사례처럼 주거환경이 열악한 사업장이 서울시의 속도조절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린다면 재개발사업의 본래 취지를 간과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도 어떤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할지 섣불리 발표하지 못하는 눈치다. 서울시 관계자는 "옥인동의 경우 한옥 터를 보존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일단 보류처분을 내려놓은 것"이라며 "개별 사업장의 추진상황이 제각각이어서 어떤 기준으로 진행속도를 조절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리처분 전(前) 단계 중 반대여론 높은 것부터 중지해야"
전문가들은 사업진척 상황과 주민참여도를 바탕으로 순서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는 "관리처분 이후 사업을 중지하는 것은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으니 그 전 단계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절)해야 한다"며 "주민참여도가 높고 반대여론이 많지 않은 사업장의 추진속도가 빠른 만큼 이를 기준으로 할 경우 분쟁이 많은 사업장은 자연스레 걸러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지구지정을 해제할 수 있는 사업장 위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주택개량사업만으로도 충분히 주거환경 개선이 가능한 곳은 지구지정을 해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법적 권한을 지닌 일종의 시민검증단을 만들어 재개발사업 현황, 장·단점 등을 조사해 주민에 투명하게 알려 사업 추진 여부를 스스로 재고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산하 SH공사는 사업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았다. SH공사 관계자는 "서울시나 공사 자체가 많은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에 사업성이 없어 민간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거나 조합설립 후에도 지지부진한 사업장을 후순위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사업성이 부족하더라도 가스·수도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을 정도로 낙후됐다면 공공재원을 투입해서라도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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