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기료만 2.6억, 그래도 전기 펑펑 쓴다?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 2011.12.12 05:50

[올 겨울 또 '전력대란' 온다]<상>[르포]온도계 들고 서울 명동 가보니

편집자주 |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6도까지 뚝 떨어진 지난 9일. 기자는 이날 온도계를 들고 대한민국 최대 번화가 중 한 곳인 서울 명동을 찾았다. '대한민국에서 전기 낭비가 가장 심한 곳' 중 하나라는 명동, 전력 수요가 많은 전력피크 시간대(오전 10시∼오후 12시, 오후 5∼7시) 명동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알아봤다.

↑ 서울 명동에 있는 화장품 가게들. 하나같이 아침부터 문을 활짝 열고 영업을 하고 있다.ⓒ정진우 기자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9일, 명동엔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오전 10시, 이른 시간이었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화장품 가게를 중심으로 이미 영업을 하고 있었다. 가게들은 하나같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손님을 맞았다. 한 화장품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 안에선 전기 온풍기가 여러 대 가동되고 있었다. 바깥 온도는 영하였지만, 실내 온도는 영상 23도였다.

출입구 위에선 따뜻한 바람이 쏟아졌다. 에어커튼이었다. 하지만 문을 열어둔 탓에 입구 쪽에선 찬바람이 계속 들어왔다. 안에선 전기 온풍기가 돌고 있었다. 문을 닫고 영업을 하면 안될까. 가게 직원은 "문을 열어놓아야 손님들이 들어온다.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겨울엔 따뜻한 바람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극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끌 수 있다"며 "명동의 대부분 가게는 그렇게 영업을 한다. 하나의 마케팅 기법이다"고 했다.

↑ 서울 명동의 한 호텔 로비. 더울 정도의 난방이 이뤄지고 있다.ⓒ정진우 기자
오전 11시. 명동에 있는 A호텔을 찾았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더울 정도의 온기가 느껴졌다. 직접 온도계를 꺼냈다. 입구 근처에서 쟀을 때 20도를 조금 넘었다.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조사한 서울의 호텔 로비 평균 온도(16∼17도)보다 3∼4도 높았다. 호텔 로비는 입구와 붙어 있는 관계로 호텔 내에서 온도가 가장 낮다. 로비 온도가 20도면 다른 곳은 20도를 훌쩍 넘는단 얘기다. 이 호텔의 지난달 전기요금은 1278만3020원. 지난해 11월(914만5740원)보다 364만 원 정도 더 나왔다.

현상학 한국전력 영업총괄팀장은 "명동엔 백화점과 호텔 등 상업시설들이 많은데 전기요금이 싸다보니 전기를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다"며 "에너지 가격 왜곡 현상으로 과소비가 심하다. 사업주들이나 국민들이 심각성을 깨달아야한다"고 말했다.

↑ 서울 명동 한복판의 한 식당. 전기온풍기(위쪽)와 전기 온돌(왼쪽 아래) 등 전기로만 난방을 하고 있었다.ⓒ정진우 기자
오전 11시30분,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하나 둘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명동 한복판 B식당을 찾았다. 의자가 비치된 홀과,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방이 함께 있는 식당이었다. 난방은 전기 온풍기와 전기온돌(방바닥에 전기장판과 같은 원리로 전열선을 깔아 난방을 하는 방식) 등 모두 전기로 이뤄지고 있었다. 온풍기는 24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방바닥은 따뜻했다. 점심 손님을 맞기 위해 한 시간 전부터 난방을 했기 때문이다.

종업원에게 "왜 모든 난방기를 전기로 돌리냐"고 묻자, 그는 "전기가 가스나 휘발유보다 싸기 때문에 그렇다"며 "요즘 식당들은 대부분 전기온돌 방식으로 난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창기 에너지관리공단 녹색성장정책실 부장은 "일반 식당들은 거의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저렴한 상업용 전기요금을 적용받기 때문에 전기난방으로 교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에서 350kW를 쓰면 5만 원 좀 안 나오는데, 식당에서 그런 식으로 전기를 쓰면 가정 전기요금의 반값 정도다. 특히 누진제가 적용되는 가정보다 쓰면 쓸수록 덜 나온다"고 지적했다.


↑ 서울 명동의 오후 5시. 벌써부터 네온사인을 켜고 영업을 하는 가게들이 많다. 오는 15일부터 오후 5∼7시까지 네온사인을 키는 업주는 하루 3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정진우 기자
오후 5시, 명동성당 앞. 송유종 지식경제부 에너지절약추진단장을 비롯한 지경부 공무원들과 에너지관리공단, 중구청 직원 등 60명이 모였다. 오는 15일부터 시행되는 '에너지 사용 제한 제도'를 알리기 위해서다. 15일부터 내년 2월29일까지 계약전력 100kW이상인 일반용 및 교육용 전력다소비 건물들은 실내온도를 20도로 맞춰야 하고, 오후 전력피크시간엔 네온사인을 꺼야한다. 어기면 하루 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명동이 속해있는 중구 일대에서만 단속대상이 650곳에 이른다.

↑ 송유종 지식경제부 에너지추진단장(맨 오른쪽)과 지경부 공무원들이 명동 상인들에게 문을 닫고 영업하도록 지도하고 있다.ⓒ정진우 기자
총 8개 조로 나뉜 이들은 명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실내 난방온도 20도 제한 △오후 5∼7시 네온사인 사용금지 △출입문 닫고 영업하기 등을 지도했다. 기자도 이들과 함께 명동 곳곳을 돌아다녔다. 벌써 네온사인을 켜고 영업을 하는 가게가 많았다. 오후 5∼7시까지 네온사인을 켜면 3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오후 7시 이후엔 네온사인 1개만 허용된다.

↑ 서울 명동에서 가장 큰 신발가게. 에너지관리공단 직원이 온도를 재자 23.1도를 가리키고 있다.ⓒ정진우 기자
명동에서 가장 큰 C신발가게에 들어갔다. 역시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에너지관리공단 직원이 직접 온도를 재자 23.1도가 나왔다. 송 단장이 이 가게 종업원에 "문을 닫고 영업하라"고 당부했지만 종업원은 "하루 평균 1만 명의 손님이 오간다. 문을 닫고 영업하나 마나다"고 항변했다.

↑ 서울 명동의 유명 백화점. 고객이 많이 찾지 않는 4층 온도가 25.5도를 가리키고 있다.ⓒ정진우 기자
오후 6시30분. D백화점을 찾았다.이 백화점의 지난달 전기요금은 2억6344만7800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전기료(2억4720만3050원)보다 1624만 원이 늘었다. 비교적 한산한 4층에서 온도계를 꺼냈다. 25.5도. 이 백화점이 이렇게 영업할 경우 내년 2월29일까지 하루 300만 원씩 모두 2억2800만 원(76일×300만 원)을 내야 한다.

하루 동안 둘러본 결과 명동에 있는 빌딩과 호텔 등 대부분 상업시설은 15일부터 제도가 시행되는 걸 알 지 못했다. 송 단장은 "서울 명동과 강남, 신촌 등 번화가에서 전력피크시간에 전기를 아껴준다면 100만kW정도는 절약할 수 있다"며 "앞으로 가게들이 문을 닫고 영업하도록, 건축법을 들여다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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