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은 바꿀 수 없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 | 2011.12.19 12:04

[머니위크]청계광장

‘얼굴’은 그 사람의 ‘얼’이 ‘굴’로 파여서 생긴 삶의 얼룩과 무늬의 합작품이라고 한다. 얼굴에는 아픔과 슬픔, 좌절과 고통, 절망과 불행의 얼룩도 있지만 기쁨과 즐거움, 승리와 환희, 성공과 행복의 무늬도 있다. 내리막길에서 체험한 긴장과 초조감이 얼굴에 나타나기도 하고 오르막길에서 분투노력하는 도전정신이 얼굴에 나타나기도 한다. 바닥에서 언제 올라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약 없이 하루를 보내는 불안감이 얼굴에 역력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정상에서 느끼는 승리의 기쁨이 순간이지만 얼굴에 담기기도 한다.

얼굴은 한사람의 인생이 담기는 축소판이자 역사적 족적(足跡)이다. 얼굴을 통해 한사람의 ‘인생’과 ‘인성’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 이유다. 인생은 한사람의 분투노력의 여정으로 만들어가는 주체적 삶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얼룩과 무늬의 교집합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 사람의 인성은 그 사람이 진공 속에서 독립적으로 축적한 삶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의 역사 속에서 생기는 관계성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인성(人性)은 그래서 인성(仁性)이다. 인(仁)은 사람(人) 몸이 둘(二)인 것처럼 ‘어질다’는 뜻이다. 한사람의 개성(個性)이나 품성(品性)도 두사람 이상의 관계 속에서 형성(形性)되는 성격(性格)이다. 오늘의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의 결과다. 나를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한다. 만나는 사람을 바꾸면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間)의 관계, 즉 인간관계(人間關係)가 바뀌고, 인간관계가 바뀌면 인간(人間)도 바뀐다. 내가 만나는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나의 인생도 인성도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매일 남에게 보이는 얼굴을 위해 거울을 보고 다짐을 하고 약속을 한다. 미소를 띠워보기도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보기도 한다. 화장(化粧)도 하고 가장(假裝)도 하며 분장(扮裝)도 하고 변장(變裝)도 하며 때로는 위장(僞裝)의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한다.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남을 위해서, 나도 볼 수 있고 남도 볼 수 있는 얼굴에 투자를 한다. 삶의 얼룩과 무늬로 만들어진 자신의 얼굴이 싫어서 성형을 한다. 성형을 통해 감춰진 본래의 얼굴 모습이 인위적으로 변장되고 위장된다. 감춰진 자신의 얼굴을 진짜 자신의 얼굴로 남에게 보여주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삶을 살아간다. 진짜 나는 변장되고 위장된 얼굴 속에 숨어 살아간다. 나를 위해서 살아가지 않고 남을 위해서 살아간다.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가기보다 행복해보이기 위해서 진짜 나의 행복을 미뤄놓고 살아간다. 진짜 나의 삶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나 깨닫는 삶을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불행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인간의 신체 중에서 내가 스스로 보기 어려운 두가지 부위가 있다. 바로 ‘뒤통수’와 ‘등’이다. 뒤통수와 등은 나는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이 그리고 쉽게 볼 수 있다. 뒤통수를 가끔 어루만지고 가다듬기는 하지만 화장을 하거나 위장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옷차림도 거울을 보면서 바꾸고 변화를 주기는 하지만 등 뒤로 보이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변화를 주는 경우는 드물다.


별로 가꾸지 않은 뒤통수와 등은 나보다 남이 더 많이 본다. 뒤통수와 등이 만들어내는 합작품이 뒷모습이다. 앞모습과 다르게 뒷모습은 내가 쉽게 꾸미고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나의 뒷모습에 내 삶의 뒤안길이 담겨 있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고뇌의 흔적이 서려 있으며, 미래를 향하는 나의 다짐과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한사람의 뒷모습에서 그 사람 인생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통시적으로 연결되어 그림자로 다가온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현재 심정과 미래에 대한 고뇌를 읽을 수 있다.

이시은의 <따뜻하고 짜릿하게>라는 책에 보면 “내가 무엇을 짊어지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얼굴’이 아니라 ‘등’이라면, 우리가 무엇보다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의 뒷모습”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힘겨운 삶, 우여곡절의 인생, 파란만장한 지난 시절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면서 살아왔기에 등이 굽는다. 곡선적 삶의 여정이 굽은 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얼굴에 숨은 젊은 날의 고뇌, 지금 겪고 있는 고통, 그리고 수시로 밀려드는 시련과 역경의 그림자가 뒤통수로 나타난다. 굽은 등과 뒤통수에 담겨진 삶의 뒤안길이 그 사람의 그림자로 따라다닌다. 철모르는 시절 방탕생활을 하고, 정착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로 끝없는 방랑을 하며, 꿈이 있지만 정확이 그 꿈이 무엇인지 찾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방황을 한다. 그러나 삶은 방탕과 방랑, 그리고 기나긴 방황 속에서 찾는 방향이 이끌어간다. 긴 곡선의 방황의 끝에 짧은 직선의 방향이 달려온다.

한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궤적은 얼굴을 비롯해 앞모습에도 담기지만 뒤통수와 등을 비롯한 뒷모습에 담긴 삶이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앞모습과 다르게 뒷모습은 내 마음대로 꾸미고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앞모습은 내 마음대로 나 혼자 바꿀 수 있지만 뒷모습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등이 가려우면 등 긁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앞모습을 꾸미고 바꾸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불행한 삶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삶의 얼룩과 무늬가 아름답게 뒷모습으로 살아나는 행복한 삶을 나누면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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