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기부천사' 원혜영이 말하는 기부와 버핏세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사진=임성균 기자 | 2011.12.07 06:40

15년전 연간매출 100억 풀무원식품 지분 기부…현 시가 117억 상당

ⓒ임성균 기자
6억5895만7000원.

올해 초 한 국회의원이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등록한 재산이다. 일반인이라면 모르지만 정치인으로서 결코 많은 재산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18대 국회의원의 평균 등록 재산 36억4250만원의 6분의 1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해당 의원이 국내 굴지의 중견기업 창업자라면?

풀무원식품을 창업하고 6년간 경영했던 원혜영 민주당 의원(60) 얘기다. 원 의원은 1996년 당시 수십억 원대 가치가 나가는 자신의 풀무원 지분 전부를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500억 원대 주식을 기부하기로 한 뒤 여론조사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고,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재산세를 늘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보다 한참 전 '노블리스 오블리주(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원 의원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원 의원을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의 정치권 안팎 움직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유지, 발전하는지 새로운 성찰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명의로 된 집이 1채 있긴 하지만 현재는 지역구에서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다. 보증금을 올려주기 위해 신용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래서 올 초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사후(死後) 기부' 의사를 밝혔을 때 조국 서울대 교수는 원혜영 의원을 '기부천사의 원조'라고 추켜세웠다. 국회에 100억원 이상 재산을 가진 의원이 10명이나 된다. 하지만 원 의원은 이들 재산가 그 누구도 실행하지 못한 일을 했다.

사실 그의 기부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유신시절 민주화운동으로 복역과 도피생활을 거듭하다 보니 가장으로서 생계가 막막해졌다. 그래서 시작한 게 풀무원식품 창업이었다. 1986년 풀무원식품의 연간 매출이 100억 원에 육박하는 등 경영이 안정되자 그는 다시 재야운동에 투신할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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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치하였다. 대주주가 재야운동을 한다고 하면 그 회사에게 닥칠 시련은 불가피했다. 궁리 끝에 그는 '탁월한' 방안을 생각해 냈다. 회사를 친구 남승우(현 풀무원홀딩스 총괄사장)에게 맡기는 대신 그는 '풀무원'의 상표권만 공동 명의로 남겨 뒀다. '좋은 시절'이 오면 상표권을 회사에 팔고 지분을 되찾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1996년 풀무원 상장을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국세청에서 상표권의 가치를 수입인지 가격인 11만6000원으로 판단한 것이다. 지분을 다시 가져오려면 '증여'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분 가치의 50%에 달하는 돈을 증여세로 납부해야 할 판이었다.


원 의원은 "개인 재산으로 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지분을 모두 기부해 부천육영재단을 설립했다. 그간 이 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2000여 명, 지급액은 8억 원이 넘는다. 15년 전의 실천은 이제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됐다.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였다면, 나의 기부도 없었을 겁니다." 그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기부가 '우발적'이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버지 원경선 옹이 1950년대 처음 풀무원 농장을 시작했을 때 농장은 고아와 상이군인 등 우리 사회 약자들의 공동체나 다름없었다. 원 의원은 "어릴 때부터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생활을 해서 내 것, 네 것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때부터 몸으로 익힌 '공유의 문화'가 그의 기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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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의원은 개인의 선의에 의존하는 기부와 별개로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현재 '8800만원 초과'인 소득세 과세표준 최고 구간을 8800만∼1억5000만원, 1억5000만원 초과 등으로 세분화해 세율을 인상하자는 입장이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그것을 통해 사회적 통합이 이뤄지고, 사회적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 사회가 그런 선순환 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며 "앞으로 정치권이 국민들을 잘 설득해 나가면 큰 저항 없이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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