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책에서 창의가 나온다고? 웃기는 소리"

머니투데이 대담=유병률 기획취재부장, 정리=이현수 최우영기자  | 2011.11.30 05:32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10> 싱어송라이터 싸이

싸이는 “이제껏, 질러놓고 후들거리고, 후들거리며 다시 지르는 삶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선택 후엔 그 선택에 대한 불안과 망설임도 있지만, 후회 없는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온 몸을 던져 또 지른다는 얘기이다. 그는 이런 ‘선지름 후조치’가 바로 자기 삶의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기자는 한때 싸이가 부른 '낙원'에 꽂힌 적이 있다. '너와 나 단 둘이서 떠나가는 여행/ 너를 향한 내 마음 절대 안 변해…'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밀월여행에 대한 것이다. 한달 내내 차에서 이 노래만 틀었다. 곡도 곡이지만 가사가 쇼킹했다. 처음 떠난 밀월여행에서 한 10년 같이 안 살아보곤 절대 나올 수 없는 묘사(밥은 내가 할게/ 쌀만 담궈 놔)가 나오기도 하고, 마지막엔 이별까지 상정(나중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오늘 하루 곱씹으며 나를 잊지 말어)한다. 한국영화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만든 홍상수가 있다면, 한국가요엔 싸이가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기자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가수 이선희도 이 노래에 꽂혀 자신이 발굴한 이승기를 그에게 맡겼고, 그래서 나온 게 '내 여자라니까'라는 노래였다고 한다.

10년 전 '낙원'을 만든 '싸이' 박재상(34)을 지난 25일 서울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작업실에서 만났다. 밀월여행 한번 맘놓고 떠날 수 없는 20대의 '낙원'은 어디쯤 있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싸이코'에서 '싸이'라는 이름을 따왔고, '골 때리는 놈으로 남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지만, 그는 골 때리지도 않았고, '싸이코'의 싸이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문고전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사람들 못지않게 더 철학 있었고, 이미 정상에 선 선배들의 공중부양 같은 얘기보다 더 현실적인 삶의 경로를 제시했다. "지치면 진다. 미치면 이긴다"고 말이다. 싸이라는 이름도 바로 '미치면 이긴다'고 할 때의 싸이였다.

<선택> "똥인지 된장인지 일단 찍어서 먹어봐야 알지 않나"
노래 가사부터 하나 물어봤다. 2001년 데뷔 이후 인생 10년을 정리했다는 '싸군'이라는 노래에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보자'라는 표현이 왜 몇 번씩 나오냐고, 생활신조냐고.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후회'거든요. 어떤 노래를 타이틀로 해서 망하는 건 상관없어요. 근데, 망하고 나서 창피해하고 후회하는 게 너무 싫은 거죠. 후회할 선택이 될 것 같으면 억지로라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고 애를 쓰죠."

'망하는 선택은 괜찮지만, 후회하는 선택은 안 된다'는 그의 말, 요리조리 재다가 칼 한번 힘차게 못 뽑아보고, 뽑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얼른 도로 넣어버리는 여린 청춘들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젊은 친구들이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그러면 어떡하지, 수없이 주저하잖아요. 그런데 안 가봤잖아요. 몸을 사리면서 용케 똥을 피해 가다가 결정적인 타이밍에 똥을 만나면 어떡할 겁니까. 젊은 어느 날 된장인줄 알고 푹 찍어 먹어봤더니 똥이더라, 그 다음부턴 본능적으로 똥인지, 된장인지 식별할 수 있거든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깨져봐야 상처 아무는 속도도 빠르고, 자빠졌다 일어서는 속도도 빠른 거에요. 무모하더라도 젊었을 때 깨져보라는 거죠.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보라는 거죠."

<시작> "싸이음악의 시작은 음악이 아니라, 이상하게 웃기는 아이"
실력으로 보나 학력(버클리음대)으로 보나 어릴 때부터 음악에 대단한 열정을 가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게 정확했다.

"열정요? (대학에) 가서 생긴 거죠. 사실 음대간 것도 아버지가 싫어하는 걸 하고 싶다는 막연함 때문이었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가수 싸이의 모든 무기들은 어릴 때 다 갈고 닦았던 거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일관되게 찾았던 게 '가장 재미있는 것'이었어요. 선생님이 '너 한마디만 더해봐' 야단치면 '한.마.디.'라고 그랬죠. 죽도록 맞았죠. 그런데 재미있잖아요. 중고교때 제 관심은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는 거였어요. 그러려면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아니면 잘생기거나 해야 하는데 전 셋 다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연마한 게 재미있는 춤이었어요. 데뷔 때 췄던 이상한 춤, 그거 그때 다 갈고 닦은 거에요. 제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끝없는 고찰, 이게 제 평생이었던 것 같아요."

언뜻 들으면 불량학생의 학창시절 스토리 같지만, 얘기된다 싶었다. 어렴풋하더라도 내 마음이 가고,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일단 시작하는 것, 그러다 보면 제대로 한번 튈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싸이음악도 음악에서 시작한 게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준비> "엄청나게 온몸으로 준비한다"
대단히 즉흥적인 성격일 것 같았다. 쉽게 저지를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또한 아니었다. 외유내강이었다. 일단 선택해서 시작하면 옆 사람 질리도록 준비한단다. "가끔 랩하는 친구들 프리스타일로 즉흥랩하잖아요. 그런데 전 절대 못해요. 굉장히 연습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노력이라는 단어가 싸이의 리버럴과는 안 어울린다'고 되물으니, 그는 한 1년 짐승처럼 살았던 유학시절 얘기를 꺼냈다. "컴퓨터로 작곡하는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그때서야 음악에 푹 빠졌어요. 6개월에 한번 이발하러 밖에 나갔죠. 밥, 용변 빼고는 작업대에만 붙어있었죠. 그땐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진짜 미쳐있었던 거죠. 그때 1년을 밑천으로 지금까지 작곡도 하고 있는 거고요. 그래서 빈도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농도의 문제라는 거에요." 지금의 싸이를 만든 것은 스무 살 시절 그때 딱 1년, 세상엔 아무것도 없고 오직 작곡만 있었던 그 때 그 1년의 몰입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닐까. "천만의 말씀. 전 화성학을 몰라요.(계이름 코드 화음 등 음악의 기본이다) 다행히 귀는 좀 밝았는데, (건반을) 땅! 치면 이론은 모르는데 그 다음에 올게 뭔지는 좀 알죠. 그러면서 곡을 쓰는 거죠. 건반이랑 한 몸으로 붙어먹는 거죠." 싸이는 "이론은 모른다. 몸으로 때운다"고 했지만, 이 정도 몸으로 때울 수 있다면 이론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방법> "남들 다하는 거 말고, 반대로 가면 내 길이 나온다"
그런데 죽어라 작곡해서 한국에 가져오니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떡합니까. 저라도 불러야죠. 전 재산 털어 레시피 개발해 음식점 차렸는데 오는 손님이 없으니, 주방에서 만든 놈이 접시째 길거리 들고나와 팔아아죠." 직접 부르기로 한 건 그렇다 치고, 도무지 당시 트렌드와 싸이는 맞지 않았다. 조각 같은 얼굴, 늘씬한 몸매, 잘 맞춰진 군무 같은 춤, 모범적 언행, 당시 방송에서 볼 수 있었던 가수들의 레시피와 비교하면 싸이는 먹기는커녕, 쳐다보기도 싫은 주방 귀퉁이의 잔반같았다.

"그래서 반대로 가기로 한 거죠.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이상하게 웃겨보자 싶었죠. '쟤들이 군무를 춰? 난 막춤을 추자' '쟤들이 고운 말을 써? 난 좀 이상한 얘기나 해보자'한 거죠. 그런데 이게 먹혀버렸다.

"희소성이겠죠. 특이하다는 말, 데뷔때 정말 많이 들었어요. 특이하다는 건 특별히 이상하다는 얘기거든요. 잘 들어보세요. 특이함이 어떤 일련의 질서를 가지고 지속성이 유지되면 특별해집니다. 특이한 게 특별한 것이 될 확률은 굉장히 높지만, 평이한 게 특별해질 확률은 굉장히 희박하거든요."

<교육> "산만해라. 잡생각, 딴생각 해라. 그게 교육이다"
인터뷰하면서 그와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눈 주제는 '음악'이 아니라 의외로 우리나라 '교육'이었다. 그는 내내 고개를 내저었고, 분노도 했다.

"제가 늘 듣던 말이 '산만하다. 딴 생각하지마. 잡생각 하지마"였어요. 이골이 날 정도로 혼나고 맞았죠. 지금도 그게 억울해요. 저는 산만해서, 딴생각 많이 해서, 잡생각 많이 해서, 재미있는 이상한 아이였고, 그런 게 지금 제 음악의 모든 것이 된 거에요. 산만하고 딴짓만 하는 아이가 한번 몰입하면 얼마나 무섭게 하는데, 맨날 혼만 내면 어쩌라는 거죠? 잡생각을 잡스럽게 보니까 잡생각이지, 좋게 보면 '창의'에요. 잡생각에서 창의가 나오고, 창의가 반복되면 독창적이 되고, 독창적인 게 반복되면 독보적인 게 되는 거 아닌가요."

'잡생각에서 독보적인 것이 나온다'는 그의 알고리즘, 박재상이 어떻게 '낙원'의 싸이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영어 잘했다는 한국 애들 미국에서 '밥 먹었냐'고 물을 때 '당신은 식사를 어떻게 할 예정입니까'라고 하더라고요. 문법만 외운 거죠. 왜 모든 친구들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달달 외워야 합니까? 도대체 왜 전 과목을 다 잘해야 하나요? 전 과학이나 생물 같은 거 배우고 싶지 않았거든요."

잘된 선배들의 "인문고전에서 길을 찾아라"는 조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인문학요? 저 인문계 나온 거 말고는 '인.문.'이라는 말 몰라요. 그게 창의에 관한 거라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정말 웃기는 소리인 것 같아요. 창의는 몸에서 나와요. 잡생각하다가 이거다 싶으면 몸을 던져보라는 거죠."

<현실> "일단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이라 생각해버려라"
그렇다면 도대체 '잡생각'에 사로잡혀있다가 청춘 다 가면 어쩌란 말인가. 몰입할 무엇이 안 나오면 어쩌나. 설령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현실이 안 받쳐주면 어쩌나. 싸이처럼 돈 많은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두 번째 군대 가서 10살 어린 후배들 인생상담을 참 많이 해줬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뭘 하고 싶은지' 생각조차 못해본 거에요.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현실이 힘들다면, 그땐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이라 생각해버리라는 거죠. 때로는 크게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작게 하고 싶은 것을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해요. 전 뭐 자존심 지키며 사는 줄 아세요? 저도 하고 싶은 대로 다 못하고 살아요. 그래서 편한 후배들한텐 이렇게 얘기해요. '눈 딱 감고 자존심 버려라. 그리고 일단 해라. 이 븅신아!' 그래야 마지막에 크게 하고 싶은 걸 찾을 수도, 이룰 수도 있는 거에요.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짜 자존심 강한 사람인 거죠."

그는 "싸이라는 물건은 철들면 큰일나는 물건"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박재상은 철들어도, 싸이는 절대 철들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한다고도 했다. 자주 먹는 친근한 칼국수가 아니라, 어쩌다 한번 먹어도 소문난 맛집 찾아가는 매운 아구찜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가 온몸을 던져 차려놓은 아구찜파티가 내달 22~25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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