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있던 TV채널들이 안보이네?"

머니투데이 김준형 증권부장 | 2011.11.30 08:05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어, 16번에서 나오던 홈쇼핑 채널이 어디로 갔지..."
내일(12월1일) 케이블 TV를 켜는 시청자들은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야 한다.
종합편성 채널 4개가 한꺼번에 15~20번대 이른바 '황금채널'에 입성하면서 기존에 있던 채널들이 어디론가 밀려나기 때문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종편에 밀려난 채널들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또 다른 채널들을 좀 더 구석으로 몰아내고 있다. 근대화 시대에나 볼 수 있던 '철거'와 '강제 이주'가 케이블 채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종편의 최대주주인 신문사들은 이미 자사 종편 채널을 안내하는 기사까지 신문에 실었다. 정작 짐을 싸야 하는 채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심지어 자기가 짐을 싸야 하는지 여부조차 모르는 황당한 상황이다.

처음 종편들이 출범일을 12월1일로 맞췄을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에이, 안 돼~' 하는 소리가 지배적이었다. 개국준비 시간이야 종편들 사정이라고 쳐도, 세상에 채널조차 안 잡혔는데 개국일을 단체로 정해두는 곳이 어디 있냐는 것이었다. 이미 15~20번대에서 방송하고 있는 채널들이 있고, 채널 번호 배정은 민간 사업자인 SO와의 협상을 거쳐야 하는 일인데 어떻게 정부나 종편들이 한 날 한 시에 한 묶음으로 채널을 가져올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세상 모르는 소리였다. 종편 방송들은 일찌감치 황금채널 입성을 기정사실화하고 1일 3부 요인을 초청, 공동 개국 기념식을 열기 위해 세종문화회관까지 빌려 놨다. 정부와의 교감이 없이는 힘든 일이다.

떼로 몰려가서 떠들면 들어준다는 이른바 '떼 법'을 가장 앞장서 비난해왔던 언론들이 황금채널을 내놓으라고 한꺼번에 떼를 써서는 결국 쟁취해내고야 마는 '떼 법'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다. 한 SO 관계자는 "채널 배정과 관련해 종편 사업자들과 이견이 생기면 그 다음날 곧바로 방통위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오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종편은 '한다면 한다'는 이 정부의 불도저식 국정운영 방식을 보여줬다.
'설마'를 비웃으며 조선 동아 중아 매경 4개 언론사를 종편 사업자로, 국영언론이나 마찬가지인 연합뉴스까지 보도채널에 선정했다. 선정된 언론들의 성향으로 미루어, 정부 지지에 대한 보은이자 내년 총선과 대선에 대비한 '우군확보'라는 비판이 뻔히 예상됐지만, 'MB정부 2인자'라는 최시중 위원장이 이끄는 방송통신위원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기사 제목과 배치, 논조를 보여 온 신문사들이 설립한 종편들의 콘텐츠가 국민들의 '채널선택권'이나 '문화적 다양성'에 어떻게 기여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새로 선정된 종편과 보도채널이라는 '4+1' 공룡들은 출범 전부터 한국 사회에 만만찮은 파장을 던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회사당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려야 하는 종편들은 출범 전부터 발걸음이 바쁘다.
머니투데이 엔터팀이 입수한 광고단가표를 보면 방송을 시작하지도 않은 종편들이 케이블내 최고 인기 채널인 CJ E&M의 10배에서 최고 18배에 달하는 광고비를 책정하고 있다. 공중파의 70%선에 달한다. 공중파 방송사들은 못하는 중간광고도 종편은 할 수 있고, '먹는 샘물'처럼 공중파를 타지 못하는 제품도 광고할 수 있다. 규제는 케이블 수준으로 느슨하게 받으면서, 대접은 공중파 급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종편들은 이미 돌아가면서 광고주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가졌다.
제작중인 드라마 주인공 연예인들이 총 출동하는가 하면, 어느 언론사는 신입 기자들을 몇 달간 연습시켜 광고주들 앞에서 춤까지 추게 했다. 참석했던 한 기업체 관계자는 "당근과 채찍이 어우러진 무력시위"같았다고 촌평했다.

정부가 '시장 논리에 맡기겠다'(다시 말해 '제 먹을 건 자기들이 챙길 것')며 시장에 풀어 놓은 '4+1'공룡들을 위해 우리 경제는 조단위가 넘는 생돈을 갹출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경기침체로 벌이는 늘어나지 않는데, 종편들의 먹거리를 마련해 주려면 기존 지출을 줄일수 밖에 없다. '콘텐츠산업 육성'을 기치로 내건 종편이 콘텐츠 사업자들을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미디어 산업이나 기업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신문사들이 만든 방송답게 종편들은 보도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편성하고 있다.
'이념의 과잉'이나 '언론 이기주의'로 인해 우리 사회의 아젠다가 이리 저리 휘둘릴때 우리 사회가 치러야할 비용은 돈으로 따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건만 터지면 '좌파'와 '우파'를 가르고, 정파성을 당당하게 드러내 온 언론의 모습들을 봐 온 터이다.

정부 정책이 변하고, 정권까지 바뀐 들, 언론사에 한번 준 방송 사업권을 거둬 들이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MB정부가 박아 놓은 '쇠 전봇대'는 위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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