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 국밥 한그릇이 40명의 허기를 채웁니다"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 2011.11.30 13:56

[2011 당당한 부자]<10>고제남 축령산사랑가득국밥 사장

인터뷰를 하러 갔더니 순대 국밥부터 먹으란다. 30분 전 기차역 인근 중국집에서 짬뽕 한 그릇에 허기를 달랜 터라 사양했다. 으레 하는 겸양으로 보였는지 "우리 집에 온 이상 국밥은 꼭 먹어야 한다"며 뚝배기에 국밥을 말아왔다. '이거 안 먹으면 인터뷰 안한다'는 협박(?)과 함께.

23일 전남 장성군 장성읍에 보슬비가 내렸다. 5일장이 서기 하루 전 '축령산사랑가득국밥'을 찾았다. 고제남 사장(40)은 다짜고짜 국밥부터 말아줬다.

식당 한쪽 벽 액자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고객님의 식사비에는 해외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하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고제남 사장(오른쪽)과 아내 이판임씨.
배가 허락하는 대로 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고 사장은 이 국밥을 팔아 세계 각지에서 못 먹고 교육 제대로 못 받는 어린이 40명을 먹이고 가르친다. 고 사장은 "손님들과 함께 후원한다"고 말한다. 고 사장은 '고객들과' 매월 어린이 1인당 3만원씩, 120만원을 구호단체 월드비전에 보낸다.

장성 출신인 고 사장은 조선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30대 중반까지 선교활동을 했다. 아내 이판임씨도 그때 만났다.

선교활동은 순탄치 않았다. 외부적 요인은 아니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회의를 느꼈다. 결국 34살 활동을 접었다. 그러자 냉혹한 '생활'에 직면했다.

"거주하던 임대 아파트 시공사가 부도가 났어요. 임대금 3500만원짜리인데 날아갈 판이었죠. 은행에 뺏기든지 아파트를 사든지 해야 했습니다. 결국 2500만원을 빌려 아파트를 샀는데 5000만원 이상 빚을 지게 됐어요"

무일푼의 무직자에게 은행 빚 5000만원은 가혹했다.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가족과 주변에서 닥치는 대로 돈을 융통해 서울로 떠났다. 마땅한 계획이 없었던 터라 그나마 얼마 되지 않던 돈도 까먹고 초라하게 낙향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때 고 사장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겪었다. 절친한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딸을 낳았는데 조산이었다. 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치료비가 모자랐다.

자기 코가 석자였던 고 사장은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돈을 어지간히 벌면 그때 도와줘야겠다고 혼자 마음을 먹었더란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요. 돈이 얼마가 있느냐는 남을 돕는 데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그땐 몰랐습니다. 얼마 안되는 돈이었어도 그 친구에게 진심을 다할 수 있었는데 그걸 뿌리친 것이죠"

↑식당 벽에 붙어 있는 후원 아동들의 사진들과 아동들이 보낸 편지, 후원 안내문.
지금 그 친구의 딸은 앞을 보지 못한다. 고 사장 때문은 아니지만 고 사장은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이후 그는 '나눔'에는 따로 때가 있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2006년 고 사장이 돈을 벌 기회가 찾아왔다. 식당 장사에 기운이 달리던 장모가 장사를 맡아 해보겠냐고 제의가 왔다. 고 사장은 가게를 맡아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장모가 하던 식당은 평범한 백반 집이었다. 5일장이 열리는 시골 마을에서 장사꾼들이 부담 없이 한끼를 해결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장사는 잘 됐다. 지역에서 평판이 좋았던 장모 덕이었다.


고 사장은 백반 장사 1년만에 빚 5000만원을 모두 갚았다. 독하게 마음먹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달려들자 돈이 모였다.

백반 장사가 잘 되긴 했지만 규모를 더 키우기는 한계가 있었다. 고민 끝에 맛과 가격이 서민적이면서 빨리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시장 상인들의 요구에 맞는 국밥에 도전하기로 했다.

장성 일대의 맛있다고 하는 국밥집은 다 다녀보고 연구한 뒤 2007년 국밥집을 열었다. 국밥집은 대성공이었다. 동네 국밥집 가운데 가장 늦게 문을 열었지만 장사는 가장 잘 된다.

국밥집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2009년 고 사장은 본격적인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그해 해외 아동 10명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매월 1인당 3만원씩, 30만원을 후원했다. 그리고 1년 뒤 24명을 추가하고 올 4월 6명을 더했다. 그는 현재 해외 아동 40명을 돕고 있다. 연간 1440만원 꼴이다. 후원 아동들은 라오스 과테말라 르완다 등 낙후지역에 몰려 있다.

↑손님들로 하여금 나눔활동에 동참한다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
고 사장은 5000원짜리 국밥 한 그릇에 후원금 200원이 포함됐다고 말한다. 200원은 대충 뽑아서 설명한 게 아니다. 국밥 한 그릇 값의 4%에 해당한다. 고 사장은 가게 매출의 4%를 후원한다. 월 평균 매출은 약 3000만원정도다.

고 사장은 후원금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아 '기사거리'가 되겠냐며 부끄럽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억대 기부' '억대 후원' 기사가 쏟아지는 데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라고도 했다.
관련기사☞ '억대매출'에도, 3남매와 25평 아파트서 살아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억대 후원'의 꿈을 키워가는 듯한 눈치다. 돈을 많이 벌어 그만큼 후원 규모를 늘려가겠다는 욕심이다.

그래서 2009년 국밥집 땅 주인으로부터 부지도 사들였다. 땅 임대료를 아끼면서 가게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요즘 같이 물가가 치솟는데 국밥 가격을 높이면 재료비 부담을 덜고 후원금도 늘릴 수 있을텐데 가격 올릴 계획은 없다고 한다.

"구제역 때 고기값이 두 배 오르는 바람에 너무 힘들었어요. 인근 가게는 가격 다 올렸는데 우리는 안올렸습니다. 아이들 돕겠다고 우리집에서 국밥 드시는 손님들한테 못할 짓이더라구요"

구제역 이후 고 사장 국밥집은 장사가 더 잘된다. 모두 가격을 올리는 통에 고 사장의 국밥집은 상대적으로 가격을 내린 효과가 발생해 서민들이 더 많이 찾게 된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30명에 달하는 예약손님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가게로 몰려왔다. 고 사장 부부가 바쁘게 음식을 준비하는 게 또 한 명의 '억대 후원자' 탄생이 머지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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