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12년 싸움' 이어간 '배변호사'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 2011.11.13 15:00

[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배금자 해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17년 전인 1994년 '오변호사, 배변호사'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월요일 심야시간에 전파를 탄 법률 상담프로그램. 변호사 두 명이 한 사건을 두고 법률적 문제를 상담하는 형식의 이 프로그램은 오세훈(50) 전 서울시장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 중 하나가 됐다.

↑배금자(50·연수원 17기) 해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당시 오 전시장과 호흡을 맞추던 이는 동갑내기 연수원 동기 배금자(50·연수원 17기) 해인법률사무소 변호사다. 정계에 진출한 오 전시장과 달리 배 변호사의 선택은 유학이었다.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오른 배 변호사는 1998년 하버드대학 로스쿨에서 석사논문 주제를 찾던 중 연일 현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던 '담배소송' 소식을 접했다.

처음은 법률가로서 호기심이었다. 지도교수에게 "논문 주제를 담배소송으로 하고 싶다"고 말하자 돌아온 대답은 "만약 한국에 돌아간다면 유사한 소송을 할 의사가 있냐"였다. 배 변호사는 담배소송 사례를 한국에 적용하는 '미국 담배소송 이론의 한국에의 적용'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수여받았다. 10년 넘게 진행된 담배소송은 이렇게 시작됐다.

◇골리앗에 맞선 12년…담배와 암 사이 연관관계 끌어내= 배 변호사는 1999년 2월 귀국하자마자 한국금연운동협의회의 협조를 구해 담배로 인한 질병에 대한 책임을 제조사 KT&G (109,300원 ▲1,800 +1.67%)(옛 한국담배인삼공사)에 묻는 담배소송 준비에 착수했다.

"석사 논문을 준비하며 자료 100권 가량을 읽어보고 놀랐어요. 식품이나 의약품에 대한 규제는 심한데 반해 담배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었어요. 일반인은 폐암 발생이 흡연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흡연자는 피해자입니다"

배 변호사는 흡연으로 폐암 등 질병을 얻은 피해자들을 모았다. 원고는 흡연 말고는 폐암을 유발할 수 없는 이들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여러 도움을 받아 가족력이나 매연에 노출된 환자를 제외했다. 그해 12월 소송을 제기했을 때 모인 암환자는 7명. 그의 가족들도 원고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소송의 쟁점은 암이 담배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과 그 책임이 제조사에 있다는 것. 배 변호사의 주장을 방어하기 위한 상대 변호인단은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 7~8명으로 꾸려졌다. "흡연으로 발생하는 유해물질은 담배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며 "담배 자체의 제조상 결함은 없다"는 반박이 나왔다.

7년동안 치열한 공방 끝에 2007년 초 나온 1심결과는 패소였다. 당사자들의 흡연과 암 발생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흡연은 당사자의 선택이라는 판단이 뒤따랐다.

배 변호사 측의 항소로 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법은 올해 2월 원심과 같이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1심과 달리 당사자들의 암발병 원인을 흡연이라고 인정했다. 지난 12년 동안의 싸움으로 한걸음 나간 판결을 이끌어 낸 셈이다.


배 변호사는 "법원이 흡연과 암의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했다"며 "제조사의 책임을 더 증명하라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조사가 영업 비밀을 이유로 내부문건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자료 미제출시 당사자에 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금자(50·연수원 17기) 해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다시 한 번 골리앗과 싸움을 준비하는 변호사= 담배소송 외에도 배 변호사의 활동은 공익소송에 집중돼 있다. 북한에 머물고 있는 주민을 대리해 1950년 한국전쟁 때 월남한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도록 한 두 건의 '북한 주민 유산 소송'역시 그의 작품이다.

배 변호사는 지난해 말 가정법원으로부터 북한 주민 윤모씨(67) 등을 대리해 월남한 아버지와의 친생자 관계를 확인하는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남한 법원에서 북한 주민의 친생자관계를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공익소송을 할 땐 개인의 명예나 돈벌이 등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공익 소송은 자기희생의 길이자 전문가가 사회봉사를 하는 길입니다. 변호사의 도움으로 만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몸을 던져야죠. 다른 얄팍한 목적을 갖고 하다보면 오히려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거나 신뢰를 잃는 등 잡음이 생깁니다"

배 변호사는 최근 한양대 로스쿨 리걸클리닉 학생들과 함께 '러시앤캐시'를 운영하는 대부업체 A&P파이낸셜대부를 상대로 공익소송을 제기했다. 제1금융권의 자동화기기(ATM)를 사용, 현금서비스 55만원을 받았는데 러시앤캐시와 대출계약이 맺어졌다는 윤모씨(46)가 원고다. 현금서비스 사용자를 속여 대출계약을 맺었다는 게 배 변호사 측의 주장이다.

배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단순히 55만원을 돌려받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소송을 맡은 학생들의 사전 조사가 있었다는 만큼 이번 계기로 대부업체의 전방위적 불법 영업형태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고를 집단으로 모아놓고 '공익'이라 포장하는 것은 진정한 공익소송의 의미가 아니다"라며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변호사의 희생이 있더라도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금자(50·연수원 17기) 해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배금자 변호사는= 부산대학교 사학과를 전공,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 17기를 수료하고 1988년 부산지법 판사로 발령받아 2년동안 법관생활을 했다. 1990년 법무법인 동서(현 광장)에 근무, 기업변호사로 활동하다 단독사무소를 개업, 현재까지 인권 및 공익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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