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사'와 '김검사'는 계좌번호를 묻지 않는다

머니투데이 오승주 기자 | 2011.11.03 06:00

서울경찰청, 7개월간 보이스피싱 144명 검거…피해보지 않게 주의해야

#정모씨(40·여)는 지난 8월 중순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검찰 수사관은 정씨의 개인정보가 새나갔으니 대검찰청 인터넷사이트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검찰'에서 전화를 받은 정씨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수사관이 알려주는 대로 사이트에 접속해 개인정보침해신고라는 아이콘을 클릭, 안내하는 대로 은행명과 계좌번호, 보안카드번호, 신용카드 번호, 비밀번호, 은행사이트 접속 아이디와 비밀번호,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등을 입력했다.

며칠 뒤 정씨는 자신의 통장에서 1894만원이 '털린' 것을 알고 땅을 쳤다. 검찰 수사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당한 사실을 알았지만 때는 늦었다.

#김모씨(61)도 보이스피싱에 당했다. 지난 8월23일 "농협 양재동지점인데 손님 이름으로 누가 돈을 인출하러 왔다. 그런 일을 시킨 것이 사실이냐"고 묻는 전화를 받았다. 김씨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자, 전화에서는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 같아 우리가 서초경찰서에 신고를 해 놓았으니 전화가 오면 받아라"고 했다.

실제로 '서초경찰서 강형사'라는 경찰관에게서 전화를 받은 김씨는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대는 '강형사'를 의심하지 않았다.

'강형사'는 "선생님의 사건번호는 XX호이고, XX은행 계좌로 불법 거래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며 "당장 출석해라"고 요구했다. 김씨가 몸이 아파 출석하기 어렵다고 답하자 하자, 이번에는 '검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검사님'께서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인데 XX은행 불법자금 수사와 관련해 당신 계좌가 잘 운용되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법무부 장관 명의의 가처분명령서를 보낼테니 계좌에서 내가 지정하는 계좌로 돈을 송금해라"고 윽박질렀다.

김씨는 '강형사'에 이어 '검사님'이 가짜 가처분 명령서까지 팩스로 보내자 놀란 가슴을 안고 지정한 계좌(대포통장)로 2900만원을 보냈다.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것을 안 뒤에는 후회해도 '늦은' 상태였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이처럼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두달간 32명에게 전화를 하면서 은행직원과 수사기관 등을 사칭해 금융정보를 알아낸 뒤 카드론 등을 받아 6억여원을 챙긴 보이스피싱 조직원 21명을 사기 등 혐의로 3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월11일 서울경찰청 수사과 내 전화금융사기 전담팀(13명)이 편성된 이후 지난 9월말까지 7개월간 144명이 검거됐다. 이 가운데 108명이 구속됐다. 이는 같은 기간 서울청 구속인원(208명)의 51.9%, 전국 구속인원(356명)의 30.3%를 차지했다.

유형별로는 관리책 13명(9%)과 인출책 83명(57.6%), 송금책 11명(7.6%), 통장모집책 23명(16%)으로 분석됐다. 연령별로는 10대 3명(2%), 20대와 30대가 각각 63명(43.7%), 40대가 11명(7.6%), 50대가 4명(2.8%)으로 집계됐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83명(57.6%)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어 내국인 35명(24.3%), 대만 23명(16%)으로 나타났다.

서울청이 밝힌 최근 보이스피싱 경향은 자녀납치를 빙자하거나 우체국 우편물 반송 등 전형적인 형태의 보이스 피싱 수법 외에 최근에는 3~4명이 금융회사 직원과 경찰관, 검사 등으로 각자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특징이다.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상대방을 정신없게 만든 뒤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보안카드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한 뒤 계좌정보를 이용해 통장에 든 현금 또는 카드론 대출을 받아 가로채는 수법이 성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 송금과 인출책 대부분은 중국이나 대만인이었지만 최근 집중검거로 말레이시아인이나 한국인 주부, 대학생 등을 인출책으로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검사나 경찰관은 전화로 계좌번호 등을 물어보는 일이 없기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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