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스무번째 집 ‘태평家’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장 | 2011.11.05 09:28

[머니위크]시골에서 집짓기, 그 만만찮음에 대해

나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대한민국 0.1%의 한사람이다. 집은 200여평 땅에 25평짜리 목조 전원주택이다. 그 집을 짓는데 돈이 얼마나 들까? 1억8000만원이다. 땅값이 5000만원이고 건축비가 1억2000만원, 부대비용이 1000만원이다.

◆내 집이 4억원이면 전원주택 지을 수 있다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러나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전세를 얻는 정도면 시골에 멋진 집을 지을 수 있다. 4억원짜리 아파트에 산다면 그걸 팔아 전세로 물러나고 남은 돈으로 시골에 집을 지어도 된다. 사는 집이 10억 원짜리라면 더 말해 무엇 하랴. 이 경우는 고민할 게 없다. 집을 팔아 3억원에 전세를 구하고, 3억 을 들여 아름다운 별장을 짓고, 나머지 4억 을 연 금형 보험에 들라. 아들딸 결혼이 남았다면 조금 빡빡하게 설계해보자. 전세 2억5000만원, 전원주택 2억5000만원, 연금보험 3억원, 아들 1억원, 딸 1억원. 혹시 우리 집은 6억원이라 안 되겠다고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면 다시 계산. 전세 2억원, 전원주택 2억원, 연금보험 1억원, 아들 5000만원, 딸 5000만원. 연금보험과 아들딸 몫이 조금 작은 것 같으면 지금부터 버는 돈은 그 용도에 보태시라. 우리 집은 5억원짜리라고? 이제부터는 각자 설계해보자. 잘 궁리하면 '하우스푸어'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3년 전에 아파트를 4억1000만원에 팔았다. 10여년 전에 2억1000만원에 산 아파트가 거품이 낄 때는 5억원을 훌쩍 넘어서더니 결국 꺾이기 시작해 지금은 3억3000만원 정도 하는 것 같다. 매매 수익률 90.5%. 이 정도면 내 평생 재테크 중에서 최고의 성적이다. 그래도 팔 때는 5억원짜리를 너무 헐값에 내놓는 것 같아 아깝기만 했다. 나의 '욕심셈법'은 항상 상한가를 기준으로 하니까!



◆전원마을 만들기

아무튼 아파트를 팔아 전세로 물러나고 남은 돈이 나의 종자돈이다. 그 돈으로 시골에 집을 짓기 위해 3년 정성을 들였다. 산과 개울이 아름다운 땅과 인연이 닿았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10억원의 예산을 지원해 새로 마을을 조성해 주는 곳이라 믿음이 갔다.

하지만 마을 기반공사 과정이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1년 동안 공사가 완전 중단되기도 했고, 긴 장마에 여름 내내 거북이 공사를 하기도 했다. 물 문제로 옛 동네와 옥신각신하고, 주변 산소 주인이 민원을 넣기도 했다. 상수도 관로를 묻는 데도 이웃에서 동의를 해주지 않아 골치를 썩였다. 몇 가지 인허가 요건을 놓고 군청과 줄달리기도 했다. 전기시설은 결국 마을 입구까지만 해주고 나머지 공사는 입주민들이 부담키로 양보했다. 그래도 나중에는 공사비가 부족해 쩔쩔맸다.

이런저런 문제가 돌출할 때마다 입주민끼리 의견이 달라 내홍을 겪었다. 그러나 때로는 절충하고,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밀어붙이면서 장애물을 넘었다. 20가구 입주민들은 매달 한 번씩 모여 상황을 점검하고 의견을 조율했다. 3년간 40여 차례 회의를 했다. 그래서 결국 2년7개월 만에 기반공사가 마무리됐다. 당초 계획보다 1년 반 늦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대단히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지자체가 3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더 지원했고, 입주민들이 끝까지 인내하면서 문제를 푼 덕분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하는 사업이라도 그 취지와 달리 이런저런 암초에 걸려 도중에 길을 잃고 표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원생활의 묘미 ‘따로 또 함께’

직접 시골에 적당한 땅을 사서 집을 짓는다면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대신 인허가 절차가 번거롭고 상하수도, 전기 등 기반을 갖추는데 추가적인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민간 개발사업자가 전원주택지를 조성해 분양하는 곳도 많다. 이런 곳은 땅값이 적정한지, 계약조건에 허점은 없는지, 사업자가 믿을 만 한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가 어떤 자세로 시골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지 입장 정리가 중요하다. 홀로 유유자적하려면 한적한 단독 부지가 나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서 이웃이 없으면 외롭고 쓸쓸하다. 복잡하고 분주하게 살다보니 마음은 뚝 떨어진 삶을 동경하지만 시골에서 너무 고립되면 적응하기 어렵다. 이웃을 원한다면 기존 마을에 들어가 몸으로 부대끼면서 화합하던가, 뜻이 맞는 사람들과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철학과 이념이 같은 사람들이 모였다면 유대가 강한 공동체가 될 것이고 그냥 자연이 좋은 사람들이 모였다면 느슨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 공동체 마을의 핵심은 '따로 또 함께' 다. 적당히 따로 하고 적당히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적당한 수준이란 게 애매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공동체의 틀을 짜고 내용을 채우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것은 수고롭지만 뜻 깊은 일이다. 지금 나에게도 당면 과제다.

◆집은 큰 쇼핑이다


이런 숙제를 안고 마침내 나의 집짓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평당 단가는 480만원. 꽤 비싸 보이지만 이것저것 다 따져 넣으면 아마 이 정도가 평균 수준일 것이다. 시공업체를 정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니 평당 단가를 320만원까지 부르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별도 옵션 항목으로 빠진 부분과 단열 등 품질을 높일 부분, 기반시설, 부가세 등을 더하다 보면 비용이 또 올라간다. 내 경우도 이런 것들을 다 빼면 평당 단가가 400만원 밑으로 떨어진다.

시공업체들이 제시하는 가격을 비교하고 검증할 능력이 없으니 들여다 볼수록 헷갈린다. 그래서 결국 내 결론도 똑 같다. 많이 공부하고, 많이 알아보고, 많이 발품을 팔면 분명 돈을 아낄 수 있다. 그러나 금액 차이가 크지 않다면 마음이 통하고 믿음이 가는 곳을 우선하는 것이 좋다.


집 짓는 일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과정이다. 나의 집도 처음에는 남달랐다. 모던 스타일, 이층집, 아름다운 발코니, 벽난로, 넓은 데크, 빨간 차양, 에코 하우스, 에너지 제로 하우스! 머릿속을 날던 그 집이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금씩 내려오더니 결국은 뾰족 지붕의 25평짜리 단층집이 됐다. 그것이 가장 미덥고 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단열을 위해 창호를 제일 좋은 것으로 하고, 바깥벽에 단열재를 한번 더 쓰기로 했다. 그래서 올라간 비용이 꽤 된다.

집은 큰 쇼핑이다. 부억에 700만원, 창호에 600만원, 다락에 550만원, 수납장에 500만원, 도어에 450만원, 마루에 200만원, 조명에 150만원 등등. 그래서 집은 큰 욕망이다. 그것의 한쪽 편은 큰 희망, 큰 기쁨, 큰 설레임이다. 반대 편은 큰 집착, 큰 욕심, 큰 스트레스다. 욕망이 크니 매일 마음이 요동 치고 희비가 엇갈린다. 기대에 부응하면 신나고, 안되면 스트레스 받는다. 그 스트레스는 아주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다. 집 짓는데 마음이 평안하다면 보통 내공이 아닐 것이다. 보통 사람은 속 끓인다. 설계할 때 속 끓이고, 시공할 때 속 끓인다. 집 한번 지으면 10년 늙는다고 한다. 그런 것 같다. 나도 집 지으면서 마음공부 세게 한다. 욕심을 줄이면 딱 그만큼 마음이 편해진다.

집은 전후방 효과가 크다. 가구, 가전, 이사, 조경 등등 앞뒤로 따라 붙는 것이 많다. 생각할 것도 많고 돈 들어갈 곳도 많다. 집을 다 지은 다음에는 그것을 꾸미고 가꿔 자기의 성으로 만드는 일이 숙제일 것이다. 이래저래 평화롭지 않다.

◆평생이 집을 위한 투쟁

따지고 보면 내 평생이 집을 위한 투쟁이다. 'Strugling for Housing'이다. 지금 세어보니 결혼하기 전에 12번 이사를 다녔다. 그중 우리 집이었던 적은 딱 한번이다. 결혼한 후에는 7번 옮겼고, 여섯번째에 집을 마련했다. 그 집을 팔아 지금은 다시 집이 없다. 다른 사람도 비슷하다. 월세로 산다면 전세를 위해 다투고, 전세로 산다면 자기 집을 위해 다툰다. 방이 2개라면 3개를 위해 다투고, 3개라면 4개를 위해 다툰다. 방이 4개쯤 될 때면 아들딸이 분가해 나간다. 그러면 방 한칸 팔아 장가 보내고, 또 한 칸 팔아 시집보낸다. 그래서 다시 방이 두 칸쯤 되면 거의 다 산 것이다. 스무번쯤 이사하면 저세상이 보인다.

나는 평생 집을 위해 삶과 다퉈왔다. 노숙한 적이 없으니 집에서 자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나 한번도 제대로 머물지 못했다. 마음은 항상 더 크고 좋은 집을 더듬었다. 집과 다투다가 집에 사로잡혔다. 집은 큰 소유다. 집을 가지려 하지 집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행위'만 있고 '존재'가 없다. '구매'만 있고 '누림'은 없다. 그래서 소란하다. 분주하다.

집을 지으면서 나는 내 가난한 영혼을 본다. 집에 대한 뿌리 깊은 욕심과 욕망을 깨닫는다. 이런 영혼이라면 새 집에 가서도 즐겁지 못할 것이다. 마음은 더 좋은 집, 더 아름다운 집을 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한다. 내 집에 살면서 남의 집을 그리워하지 않으려 한다. 이번에 짓는 집에서 마음 편히 끝까지 머물려 한다. 내가 내 집에 영혼을 누이고 뿌리를 내릴 때만 집도 든든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집을 갖고 있는가? 그렇다면 더더욱 집에 매이지 말라. 10억원, 20억원짜리 강남 아파트를 깔고 앉아 '하우스푸어'로 살지 말라. 집에 매달려 더 근본적인 것을 놓치지 말라. 영혼을 생각하면 집은 사소하다. 영원의 시간속에서 집은 종이 카드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훅 불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집은 머무는 사람의 향기를 밴다. 나는 내 집의 컨셉트를 '비움'으로 잡았다. 텅 비워 놓는 것이다. 이것저것 채우고 꾸미느라 여백을 다 잡아먹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텅 빈 공간이 아름답다. 더 편한다. 더 큰 공명이 있다. 그렇게 널널하게 비운 공간에서 태평하게 살고자 한다. 스무번째 내 마지막 집의 이름은 '태평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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