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도 건설사의 '지적재산권'에 속하는 만큼 중요 정보의 외부유출을 막으려면 사진촬영을 금지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김씨는 이를 납득할 수 없었다.
혹시나 모를 정보유출 때문에 모든 입주예정자의 사진촬영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모델하우스와 완공 후 아파트가 달라 하자소송을 벌이는 상황을 봐온 터라 불안감은 더 컸다. 김씨는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모델하우스 사진촬영을 두고 입주예정자와 건설사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한 포털사이트의 아파트 분양정보 교환 카페에는 관련 항의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경쟁사에 도면이 유출될까봐 사진촬영을 막는다던데 그럼 이미 계약을 마친 나까지 막는 이유는 뭐냐' '혹시 다르게 시공될까봐 사진촬영을 해둔 것뿐인데 범법자 취급해 불쾌했다' 등의 내용이었다.
실제 대부분 건설사는 모델하우스 내 사진촬영을 엄격히 금지한다.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만든 도면을 경쟁사가 표절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파트 설계도면은 표절 여부를 명확히 밝히기가 쉽지 않은 만큼 사진촬영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정보유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은 이런 관행이 소비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사실 현행법상 마감재 리스트와 모델하우스 동영상 촬영본을 관할 구청에 제출하는 게 의무화됐다"며 "어차피 제출해야 하는 것인데 입주예정자가 개인적으로 찍는다는 이유로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게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선분양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모델하우스 사진촬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완공된 아파트가 아닌 모델하우스만 보고 집을 사는 것이어서 모델하우스가 계약내용을 담고 있는 일종의 '계약문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선태현 한국소비자원 차장은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는 것도 '광의(廣義)의 계약'으로 볼 수 있는 만큼 계약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고 기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건설사들이 내세우는 지적재산권 얘기는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범상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도 "도면을 유출·표절할 의도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면 현행 주택·건축·형법상 모델하우스 사진촬영을 처벌할 조항은 없다"며 "모델하우스와 다른 마감재, 인테리어 때문에 분쟁이 계속돼온 만큼 소비자들이 이를 대비해 사진을 찍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행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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