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2020년, 잡스를 회상하며

머니투데이 류병운 홍익대 법대 교수 | 2011.10.13 06:00
2020년 10월13일 화요일 미래씨는 복부의 통증을 느끼며 마취에서 깨어나고 있다. 벽걸이 TV화면 하단에 자신의 이름과 혈압 맥박 체온 등의 숫자가 표시돼 있다. 누워있는 침대가 '스마트'인 모양이다. 등산 갔던 지난 토요일부터 삼사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미래씨는 정상 부근 평평한 바위에 앉아 울긋불긋한 발아래 산하를 감상하고 있었다. 땀에 젖은 무릎 아래 바지를 걷어 올리자 두 다리가 가을 햇살에 반짝인다. 그때 옆에 있던 일행이 한마디 한다. "미래씨 다리가 왜 노래. 황달 아냐?" 휴대폰을 꺼냈다. 최근에 산 아이폰9이다. '황달'을 검색한다. '헤모글로빈'으로 시작하는 기본정보에 간암 등 간질환과 담관암, 췌장암의 단어가 보인다. '참 10년 전 아이폰 창안자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죽었지.' 다시 췌장암을 검색했다. 식욕부진, 소화불량, 조기 발견이 어려움.

이번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방문한다. SNS 췌장암 그룹엔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들이 도열해 있다. 그중 하나와 접속에 성공했다. "식욕이 없고 다리가 노람." "다리를 닥터포토앱으로 촬영 후 송부." 사진을 보내자 얼마 후 "얼굴과 눈동자 사진도" 라는 답변이 왔다. 잠시 사생활 누출이 염려된다.

디지털 시대는 사생활 위기의 시대이다. 개인정보 누출은 물론 '신상털기'라는 온라인 린치가 횡행한다. 그러나 현대 기술 대부분이 개인정보의 공공화(publicness)로 창출되었다. 잡스의 대표적 유작인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사외(社外) 아이디어를 사내 정보와 함께 활용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산물 아닌가. 보다 고급 정보의 공유를 위해서는 보다 많이 나를 공개해야 한다. 얼굴과 눈동자 사진을 송부하고 서둘러 하산했다. 집에 도착할 무렵 개선장군으로부터 메시지가 도달했다. "저의 증상과 일치. 빨리 병원으로."

주말 동안 좀 더 정보를 얻기로 하고 글로벌도서관에 접속, 최근 논문, 10년 전 하버드대 도서관 서적, 영상자료를 확보했다. 다소 많은 분량을 요약앱으로 간추리고 전문번역주석앱을 통해 보다 정확히 내용을 이해한 다음 다시 미래씨 증상 중심으로 정리했다.


세계 주요 도서관 서적과 자료를 망라한 글로벌도서관의 구축은, 2011년, 미국 법원이 저작권(著作權)법 위반과 독점적 지위 구축의 이유로 구글(Google)과 저작권자그룹간의 분쟁해결합의에 대한 승인을 기각함으로써 무산될 뻔하였다.

디지털 혁명으로 저작권도 위기에 직면했다. 소수가 다량의 '해적판'을 제작, 판매하던 과거와 달리 무수한 이용자들에 의한 소량의 복제, 상호 전송과 공유의 방식이다. 음성 및 영상물 복제도 거듭 될수록 점점 질이 떨어지던 과거 아날로그 때와 달리 '오리지널'과 같은 것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또한 저작물의 창조, 반포, 수익이 네트워크에의 접근을 통해 이루어지는 디지털시대에 권리자가 저작물을 통제하는 전통적 보호방식은 아무리 그 법적 규제를 강화해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국제 온라인 위탁 저작물 관리시스템의 구축, 특히 사후 탈퇴, 즉 옵트아웃(opt-out)권한을 전제로 직접 위탁하지 않은 저작권자에게도 구속력이 미치게 하는 '확대집중라이선스(extended collective licence)'제도가 도입됨으로써 구글 등 몇 개 컨소시엄의 글로벌도서관 구축되었다. 이에 따른 접근성과 편리성을 획기적 향상은 유료 이용자를 급증시켜 오히려 추가적인 경제적 혜택이 저작권자들에게 돌아갔다.
월요일 병원에 도착하자 미래씨가 제시한 정보를 바탕으로 신속한 검진이 이루어졌고 그 다음날인 오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10년 전 잡스의 끊임없는 창의성에 위협을 느꼈던 한국 IT업계도 고유 소프트웨어 개발 및 콘텐츠 확보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 요즘 잘 나간다는 뉴스가 TV화면에 소개된다. 잡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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