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넘어 죽기살기로 배운 커피 '무한 행복' 우려내다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 2011.10.10 05:30

[10년 늘어난 중년, New Old] <14>바리스타 윤원상씨

윤원상씨(67)는 “주름도 역사인데 굳이 지우려 할 필요 있나요. 순수한 마음을 지키는 것, 새로운 일을 꾸며보는 것, 그게 젊게 사는 비결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그래서인지 윤씨가 갤러리카페 ‘어린왕자’에서 직접 뽑아준 커피에는 순수하고 깊은 맛이 있었다. /사진=이동훈기자 photoguy@
지난 7일 찾은 갤러리 카페 'Le Petit Prince'(어린왕자)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이 카페는 화초로 둘러싸여 있었다. 40여평 규모의 하얀색 유럽풍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니, 그 안에도 자그마한 정원이 있었고 내부 곳곳에는 생뗵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왕자와 여우, 장미꽃 그림이 가득했다. 일흔 살을 바라보는 전직 교장선생님의 감각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카페 주인 윤원상씨(67)씨는 "손님들이 나간 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간 것을 확인할 때 제일 보람을 느낀다"며 기자에게 "일단 커피를 마셔보고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1967년 인천여고 사회 선생님으로 교직에 첫 발을 내디딘 윤씨는 2007년 서울 금호여중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할 때까지 41년간 교직에 몸 담았다. 정년 퇴임후 사립학교 교장직 제의가 많이 있었지만 그는 다 거절했다. "40년 넘게 했으면 됐지 젊은 사람들 앞길 막을 일 있나요. 교장직을 제의한 학교들에게 말했어요. '거기도 학교 오래 지킨 사람들 있을 텐데 그 사람들 승진 좀 시켜주라'고 말이죠."

윤씨는 정년 퇴임 2년 전인 2005년부터 자신이 사는 삼청동 집 1층에 '홈 바(home bar)' 형식으로 카페를 위탁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퇴임 직후 이 카페의 운영을 본격적으로 맡기 시작했다. "원래 커피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가끔 보낼 장소가 있었으면 해서 문을 열었죠. 그런데 커피 향을 맡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퇴임하고 본격적으로 맡게 됐죠."

당시만 해도 카페 문화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바리스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윤씨는 우리나라에 원두커피 문화를 처음으로 들여왔던 '커피명가' 안명규 대표의 바리스타 강의를 듣기위해 6개월간 서울과 대구를 오갔다. 당시 안 대표는 경북대 평생교육원에서 바리스타 강의를 하고 있었다. "매주 KTX를 타고 다니며 어렵게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습니다. 나이 들어서 생소한 화학기호 외우고 커피 역사에서부터 우유, 계피 등 각종 첨가물 목록까지 일일이 다 외우느라 솔직히 그땐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일까. 환갑이 넘어 죽기살기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던 교장 선생님이 만들어주는 커피 맛은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와도, 이름있는 개인카페 커피와도 달리 깊은 맛이 있었다. 기자의 상식으로는 거품이 촘촘히 많은 아메리카노가 좋은 커피라고 알고 있었는데, 윤씨의 커피가 바로 그랬다. 쓴 맛도 전혀 없었다. 비법은 이탈리아산 고급 커피원두 '일리'와 '코스타도로'. 그는 "'라바짜' 같은 다른 이탈리아산 원두는 외국의 슈퍼에서도 팔지만, 일리는 외국에서도 전문매장에서만 팔 정도로 가치가 높은 원두"라며 "2007년 교장 퇴직 후 유럽을 다니면서 이것 저것 먹어보다 일리의 맛을 보고는 '이거다' 싶어 들여왔다"고 말했다. "코스타도로 같은 원두로 만든 커피도 우리나라 호텔 커피숍에서 1만2000원~1만3000원씩 파는데 그렇게 비쌀 이유가 없거든요. 저렴한 가격에 고급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찾아오는 거죠." 이 곳 아메리카노는 5500원. 테이크아웃을 하면 3500원으로 내려간다. "테이크아웃은 주로 젊은 친구들이 많이 하잖아요. 제가 교사 출신이라 직업병인지는 몰라도, 주머니 사정 뻔한 젊은 친구들 보면 더 잘 해주고 싶은 거지요."

사진=이동훈기자 photoguy@
이런 '착한' 가격때문인지 삼청동에 카페들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지만 '어린왕자'의 손님은 끊이질 않고 있다. "사실 원두로 만들 수 있는 메뉴는 수십 가지가 되지만 제가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품목만 골라 팔고 있어요. 저도 여기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딸도 와서 자주 커피 마시고 케익도 먹는데 아무렇게나 만들 수 있나요. 양심적으로 좋은 재료 써서 커피를 내놓으니깐 단골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윤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가장 자신 있게 추천하는 커피는 '라 그리마'. 스페인어로 눈물이라는 뜻이다. 원두는 이탈리아산 일리를 사용했고, 여기에 데킬라와 설탕 등으로 맛을 냈다. 윤씨가 직접 만들어 이름도 붙였다. "커피를 만들어서 딱 맛을 봤을 때 카페 안에 아리아 '내 안에 흐르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죠. 그래서 이름도 눈물이라고 지었습니다."

윤씨가 카페를 만드는 데 들었던 초기비용은 3억원이 조금 넘었다. 가정집을 카페로 바꾸는 데 2억원 정도 들었고,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데 1억원 가량 들었다. 이렇게 해서 올리는 월 매출은 평균 1000만원. 하지만 좋은 재료를 쓰는 탓에 재료비 비중이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훨씬 높다. 재료비로만 30~40%가 들어간다. 여기에다 직원 두 사람 인건비와 관리비 등을 빼면 윤씨의 순익은 월 300만원 가량. 카페치고는 많은 수입은 아니다. 하지만 윤씨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에는 칵테일 만드는 법을 배워서 메뉴에 칵테일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런 윤씨에게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당연히 나이 드는 건 싫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한 말을 봐도 그 사람 역시 나이 먹고 죽는 걸 싫어했잖아요." 그래도 그는 "나이 드는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더 젊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피부관리 받고, 성형외과 다니는 친구들한테 그래요. '주름도 나이에 맞게 좀 있어야지 그게 하나의 역사인데 뭘 그렇게 지우려고 하냐'고 말이죠. 얼굴의 주름을 줄이는 것보다 순수한 마음을 지키는 것, 그러면서 새로운 일을 꾸며보는 것, 이게 젊게 사는 비결 아닌가요."


바리스타 자격증은···
커피교육협의회 인증 2급 1만5000명
필기·실기··· 첫 응시생 절반 정도 합격

커피가게를 차리려면 꼭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왕 하는 것, 제대로 커피에 대해서 알고 가게를 차리고 싶다면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해볼 만하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현재 여러 민간기관에서 발급하고 있는 가장 널리 알려진 게 한국커피교육협의회.이 곳에서 발급하는 2급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이뤄진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실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1급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은 2급 자격증을 소지하고 2년이 경과한 사람들 중 커피관련기관(커피전문점, 산업체, 교육기관 등)에서 1년 이상 정규직 근무경력을 가졌거나 2급 시험 실기평가위원으로 1년 이상 활동한 사람만 응시 가능하다.

윤원상씨는 "2급 시험만 해도 필기와 실기 각 전형별로 합격률이 60~70%라 처음 응시했던 사람들 중 절반 정도만 합격할 수 있다"며 자격증 취득의 어려움을 말했다. 윤씨는 현재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2011년 현재 커피교육협의회 인증 2급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1만5000명 정도다.

2급 필기시험에서는 커피학개론, 커피추출, 커피배전(로스팅), 서비스 및 식품위생에 관한 문제가 60분 동안 60문항이 출제되며 7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2년 동안 실기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는다. 한국커피교육협의회에서 인증한 교육기관에서 3학기 15학점 이상 수료하면 필기시험을 면제 받을 수 있다.

지난 9월 16차 2급 바리스타 필기시험이 열렸으며 10월 중 2차례에 걸쳐 실기시험이 열릴 예정이다. 접수일정과 고사장 위치 및 학점 인증 교육기관 안내는 한국커피교육협의회 홈페이지(www.kces.or.kr)에서 확인 가능하다. 문의 (02)702-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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