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게이츠 '30년 지기-평생의 라이벌' 기구한 운명 뒤로 한 채..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 2011.10.06 11:10

퇴출·투병·실패 딛고 재기했지만 라이벌 남겨 두고 별세

라이벌, 그것도 평생의 라이벌이 있다는 사실은 행운인 동시에 굴레다. 'IT 거인'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그렇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은 1955년생 동갑내기 두 사람의 라이벌전을 '30년 전쟁'으로 표현했다. 두 사람의 날선 언쟁의 기록을 바탕으로 30년 전쟁을 되돌아본다.

◇30년 전쟁: 80년대= 기록에 남아있는 '설전'은 1985년 빌 게이츠의 멘트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이때 이미 앙숙이었다. 당시에도 잡스의 고집센 스타일이 유명했던 모양이다.

게이츠는 시애틀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잡스가 애플의 협업을 어렵게 한다"며 "애플의 규모로 보면 이런 협업이 꽤 중요한데 그 분야에 대해서는 스티브보다는 내가 조금 낫다"고 말했다.

그해 경영부진 책임으로 쫓겨나듯 애플을 나온 잡스는 '넥스트스텝'이란 회사를 세우고 새 컴퓨터 '넥스트(NeXT)를 내놨다. 4년 뒤인 1989년 게이츠는 "이 컴퓨터가 성공하면 난 혼란스러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도 컴퓨터시스템뉴스와 인터뷰에서 "MS는 우리의 성공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 우리를 돕지 않을 것"이라고 반격했다. 당시 운명의 신은 게이츠의 손을 들어줬다. 넥스트는 관심을 끌긴 했지만 값이 비싸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90년대~2000년대= 잡스는 93년 5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영 철학을 빌 게이츠와 비교하며 "무덤 속의 부자는 나에게 전혀 의미가 없다"며 "나는 무덤이 아니라 침대에 누우며 오늘도 멋진 하루를 살았다고 얘기하려 한다"고 말했다. 멀쩡히 살아있는 게이츠에게 '무덤 속 부자'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이다.

잡스는 1996년 6월 '광(狂)들의 영광(Triumph of the Nerds)'이라는 PBS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애플이 넥스트스텝을 인수하면서 잡스가 애플 복귀를 앞둔 시점이다. 그는 '윈도우 95'에 대해 "MS는 진짜 색깔이 없다"며 "그들이 성공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사람들이 삼류 제품을 산다는 게 화가 난다"며 노골적으로 MS를 비난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도 MS는 압도적 지위를 놓지 않았고 애플은 이를 맹추격, 신경전은 계속됐다. 애플에 복귀해 친정체제를 다시 꾸린 잡스는 mp3플레이어(MP3P) '아이팟'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이를테면 '왕의 귀환'이었다.

하지만 게이츠의 생각은 달랐다.

게이츠는 2005년 1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자이퉁과 인터뷰에서 "애플의 제품이 좋긴 하지만 아이팟의 성공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음악 감상에 있어 최적의 기기는 분명 휴대폰"이라고 말했다.

휴대폰이 음악감상에 좋다는 게이츠의 말은 옳았지만 사업적 성공과 실패는 엇갈렸다. MS가 MP3P '준(Zune)'을 출시했으나 재미를 못 봤고 애플은 아이팟의 여세를 몰아 마침내 2007년 아이폰을 내놓았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고무된 잡스는 2006년 8월 월드와이드웹 개발자 회의에서 "레드몬드(MS 본사가 있는 도시)에 있는 친구들은 50억 달러를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쓰지만 구글과 애플을 베끼기에 바쁘다"며 "이건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최고의 예"라고 쏘아붙였다.


◇게이츠 없으니 비로소 잡스시대= 매리 미커(Meeker)는 1995년 이른바 '닷컴 붐'의 불을 댕겼던 보고서(The Internet Report)를 작성한 인물. 지난해인 2010 2월 그의 주도로 모바일 인터넷에 관한 보고서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IT 업계는 시대별로 중대한 전환점을 보여주는데 1960년대 메인프레임 컴퓨터, 1970년대 미니컴퓨터, 1980년대 퍼스널 컴퓨터, 90년대 데스크톱 인터넷 등이다. 그리고 2000년대 모바일 인터넷 시대가 왔다.

공교롭게 80~90년대 컴퓨터업계 주인공은 소프트웨어 시장을 주도했던 MS다. 하지만 모바일 인터넷 시대의 키워드는 스마트폰, 온라인 콘텐츠 시장, 태블릿 컴퓨터 등이다. 여기서는 MS보다는 애플, 게이츠보다는 잡스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결국 게이츠 없는 MS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잡스가 이끄는 애플은 모바일 인터넷 시대라는 파도에 제대로 올라탄 셈이다.

그동안 두 회사는 양보 없는 신경전을 펼쳐 왔다. MS가 최악의 운영체제로 평가받은 '윈도우 비스타'로 고전할 때 애플은 매킨토시를 부각시키며 비방 광고를 내보내 MS를 곤혹스럽게 했다. MS 경영진이 애플 아이팟· 아이폰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루머는 업계에 기정사실로 통한다.

◇잡스의 승리?..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게이츠는 지난해 4월 21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인터뷰에서 애플 아이패드가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괜찮네요"(It's OK)라고 답했다.

게이츠는 "시나리오(아이패드의 성공)는 확실치 않았지만 어쨌든 아이패드는 예쁘다"고 말했다. 이어 "잡스는 디자인을 잘한다"며 "아이패드는 그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뼈가 있는 말이었다. 게이츠는 잡스에 대해 그저 "디자인은 잘한다"고 평가한 것뿐이다. 현지 언론은 이에 대해 미지근한(lukewarm) 칭찬이었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현직에서 일할 때 벌였던 승부에선 게이츠가 대부분 우위에 있었다. 뒤집어보면 지금 애플 전성시대를 열어 제친 잡스의 영광은 게이츠가 일선에서 은퇴를 했기에 가능했다.

어쨌든 지난해 4월 22일 애플의 S&P 지수 시가총액은 처음으로 MS를 추월했고 2011년에도 애플의 우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게이츠보다 잡스에게 가혹했다. 가정환경과 건강, 사업까지 비교적 평탄했던 게이츠와 달리 잡스는 간 이식과 췌장암 투병으로 여러 차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지난해 급격히 수척해진 외모 탓에 시한부 설이 나돌기도 했다.

게이츠의 은퇴로 두 사람의 현장 경쟁은 이미 끝났고 잡스가 게이츠보다 먼저 사망하면서 영영 둘의 라이벌 대결은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사실상 동의어로 쓰이고 'MS'와 '빌 게이츠' 역시 따로 생각하기 어렵다. 동시대에 IT 산업을 개척한 잡스와 게이츠. 자신들이 세운 회사가 문을 닫기 전까지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라이벌로 남을 전망이다.

게이츠는 5일 잡스 사망 소식에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어 행운이었고 대단한 영광이었다"며 "스티브를 한없이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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