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반찬 다버렸는데... 정전피해 증명하라니"

머니투데이 뉴스1 제공  | 2011.09.21 07:56

정전피해 접수 시작.... 피해사실 입증 놓고 마찰 예상

[뉴스1= 서재준 기자] 지난 15일 전국적인 순환정전사태가 발생한지 닷새가 지난 20일 한국전력공사는 전국 189개 지점과 중소기업진흥청, 인터넷, 전화 등을 통해 피해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20일 오전 본사를 포함한 한전 각 지점에는 피해접수를 위한 별도의 접수처가 설치됐다.

그러나 정확한 피해상황 파악과 피해액 산출에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정전 피해보상 문제의 해결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한전 측은 사태발생 다음날인 16일 전기공급약관을 들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상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현재 한전의 전기공급약관 47조와 48조에 따르면 한전은 전기의 수급 조절 등 부득이한 경우 전력의 제공을 중지 또한 제한할 수 있다. 이어 49조 1항은 한전의 직접적 책임이 아닌 이유로 47조와 48조에 따라 전력의 제공을 중지 또는 제한할 경우 한전에 면책 권한을 주고 있다.

한전측은 갑작스런 기온상승으로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 불가피한 정전 조치를 취했다며 책임이 한전 측에 있지 않기 때문에 물질적인 보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언론과 국정감사를 통해 현재 약관과는 별도로 한전을 통한 재원 마련 후 보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무부처인 지경부 장관이 보상 입장을 밝힘에 따라 이날 한전이 피해접수 및 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피해보상 절차 및 과정 등을 보면 정확한 피해보상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한전측이 밝힌 피해보상 절차는 △전화·인터넷·현장 접수를 통한 피해사실접수 △피해사실 증명에 필요한 각종 서류 제출 △현장조사를 통한 피해상황 파악 및 피해액 산출 △보상 순이다.

한전 측이 요구한 서류는 신분과 피해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 초본과 피해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 등의 피해내역 증빙서류다. 예를 들어 광어가 죽어 피해를 본 양식장의 경우 죽은 광어의 사진을 포함한 피해내역을 접수해야 정확한 보상이 가능하다는 게 한전 측의 입장이다.

이 방침은 모든 업체와 개별피해시민들이 사진·동영상 등의 가시적인 피해 내역을 남기지 않았다면 정확한 보상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피해에 대해 이같은 증명을 남기기가 힘든 만큼 피해보상 과정에서 의견차이로 인한 마찰이 불가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체가 아닌 개별가정의 경우는 더욱 애매해진다. 20일 한전강남지점을 찾은 한 주부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다 버렸다"며 "이런 건 어떻게 피해액을 따진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엘리베이터에 갇히거나 병원을 옮겨야 했던 중환자 등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위와 같은 방침으로는 보상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장조사를 통해 피해액을 산출하겠다는 방침도 적잖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함에 따라 제대로 진행될 지가 미지수다.


한전 관계자는 이날 뉴스1 과의 통화에서 "다음달 4일까지 예정된 피해접수가 끝나는 대로 피해 사업장과 가구에 조사원을 파견하여 현장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160만여 가구의 피해가 발생한 만큼 모든 피해접수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할 가용인력과 비용이 있는지, 사업장별로 다른 피해산정 기준이 마련돼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는 벌써부터 현장에서 들려오고 있다. 피해보상 접수처가 마련된 서초동 한전강남지사의 한 관계자는 "강남 일대에서만 11만 가구가 정전됐다는데 그 중에 반, 아니 10%만 접수를 해도 현장조사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사실상 피해증명 못하면 보상 안해주겠다는 뜻 아니냐"며 "실질적인 대책은 없고 보여주기에만 바쁜 거 같다"고 평했다.

또한 일부에서 보상을 노리고 무분별하게 피해접수를 할 경우 이에 대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려된다.

한전 측은 기업대표, 변호사 등 전문가들을 구성해 피해상황 파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 한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보상액은 소비자단체와 기업대표, 회계사,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정전피해 보상위원회'의 보상지침에 따라 결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세한 보상지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경부와 한전 측의 적극적인 피해보상 방침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한전의 분명하지 못한 피해보상 방침을 비판하는 여론은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또한 경실련이 별도의 집단소송을 준비한다고 밝히는 등 한전 측의 피해접수와는 별개의 움직임도 진행됨에 따라 이번 '정전대란'의 분명하지 못한 보상 과정을 둘러싼 마찰은 한동안 지속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식경제부는 20일 오후 2시 기준으로 한전 각 지점, 산업단지공단,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전국 294개소의 접수처에 167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권역별로는 수도권 67건, 충청·강원권 30건, 영남권 51건, 호남권 19건으로 나타났다.

그 중 한전에 신고된 건수는 전국 189개 지점을 통해 총 156건, 피해액은 3억30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금액이 가장 큰 쪽은 각 지역의 공단으로 전국 48개 산업단지공단 접수처엔 총 7건, 45억원 상당의 피해 보상 신고가 들어왔다.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은 피해산정 및 서류준비에 시간이 걸려 오늘 피해신고는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전 사이버 센터를 통해 들어온 300여건의 신고도 내용 부족으로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실제 피해건수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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