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 1년만에 검사 그만둔 이유가···

머니투데이 뉴시스  | 2011.09.19 07:49

"사람 잡아 넣는일 힘들어" 임용 6개월만에 사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희망하는 후보군 중 가장 많은 관심이 쏠려 있는 인물은 단연 박원순 변호사다.

박 변호사는 지난 6일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후보직 양보를 얻어낸 뒤 단숨에 가장 유력한 야권 후보로 부상했다.

박 변호사는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후보 중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여야 양자대결에서도 30%~40%대의 지지율로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고 있다.

이 같은 지지율 고공행진에는 안 원장과의 단일화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단일화 이전 박 변호사의 지지율은 5%대에 불과했다.

주요 선거 때마다 후보군에 이름이 오를 정도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박 변호사의 인지도는 크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온 진보적 성향의 변호사라는 정도만이 알려진 상태다.

이에 따라 박 변호사는 16일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지하철 탐방, 길거리 인사 등을 통해 얼굴 알리기에 나섰다. 본격적인 선거 행보가 시작되자 그가 걸어온 길, 제시하고 있는 비전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대 입학 3개월 만에 제적된 사연

박 변호사는 1956년 경남 창녕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의 7남매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이었지만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친형 덕에 중학교 졸업 후 경기고에 진학할 수 있었고 법조인이 되기 위해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입학한 지 3개월 만인 1975년 5월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제적돼 4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그는 자서전 '희망을 심다'에서 당시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우발적으로 행사에 참석하게 됐으며 이 사건이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박 변호사는 출소 이후 복교가 되지 않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고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해 1980년 합격, 검사로 임용됐다.

◇검사 생활 1년만에 퇴임…"사람 잡아넣는 일 힘들어"

투옥 경력에도 불구하고 운좋게 검사로 임용됐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쓰고 그로부터 6개월 뒤에 퇴임했다.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1983년 변호사 개업을 한 그는 1986년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부천서성고문사건'을 맡으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박종철고문치사사건', 구로동맹파업사건', '보도지침사건', '한국민중사사건', '미문화원사건' 등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사회 문제에 관여했다.

그는 1988년 조 변호사 등 진보적 성향의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박 변호사는 변론을 중단하고 1991년 8월 영국행을 택했다. 그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시민운동가로 변신…새로운 사회운동 이끌어

박 변호사는 영국에서 1년, 미국에서 1년을 보내고 돌아온 뒤 1994년 참여연대를 설립하며 시민운동가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참여연대는 기존의 저항운동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정치권, 재벌, 공공기관의 개혁을 주도했다. 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낙선·낙천 운동 등을 진행하며 주류 사회로부터 '고발연대', '참견연대'라는 핀잔도 들어야 했다.

박 변호사는 "한국 시민사회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정통적 민주화운동 세력이 가지고 있던 세력을 넘어서서 중산층 등을 운동으로 끌어들이고 조직화해야 한국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조직 운영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고 2002년 "후배들이 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며 참여연대 활동을 중단했다.

참여연대가 감시와 비판에 중점을 뒀다면 그 뒤 시작한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는 나눔 운동에, '희망제작소'는 시민 참여에 의한 지역 발전 운동에 주력했다.

성공한 시민운동가로 이름이 알려진 뒤부터는 정치 입문 권유도 적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보수보다는 진보 쪽의 성향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진보적 이념에 경도되지 않아 한나라당에서도 몇 차례 러브콜을 받았다.

결국 박 변호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시민사회에서 현실 정치권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는 18일 남산 둘레길에서 서울 시민들을 만나 "내가 모든 것을 다 한다기보다 현장에서 많은 시민이나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귀를 열고 들으면 좋은 정책이 많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햇다. 시민단체 활동으로 축적한 노하우를 서울 시정에 접목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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