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스푼걸즈', 고대 '노상텃밭' 아세요?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11.09.17 13:43

[쿨머니, 소비의 윤리]<5>도시농업 경험 담아 '청춘액션플랜' 발간한 대학생들

↑<청춘액션플랜>의 저자 황윤지 씨가 고려대 노상텃밭을 설명하다가 배추벌레를 잡고 있다. ⓒ이로운넷 유보라
14일 서울 안암동의 고려대 정문 옆길, 앞서 걷던 황윤지 씨(한국외대·24)가 뒤돌아서며 손짓한다.

"길이 안 보이죠? 이리로 내려오세요."

윤지 씨는 굽 높은 탐즈슈즈를 신고도 비탈길을 익숙하게 내려간다. 신발 앞트임 사이로 은색 매니큐어를 바른 발톱이 반짝인다. 따라 내려가니 서너 평 남짓한 텃밭이 보인다.

"우리가 만든 노상텃밭이에요. 너무 작죠? 학교가 허락을 안 해줘서 몰래 만들었어요. 그래도 지난해 겨울엔 여기서 나온 배추, 무로 김장도 담갔어요."

벌레가 먹은 배춧잎이 너덜너덜하다. 윤지 씨는 배춧잎을 뒤집더니 스스럼없이 벌레를 잡는다. "이건 유기농업이 아니라 방임농업"이라며 키득댄다.

◇"노상텃밭에서 황홀한 맛의 경지 느껴"=발단은 간단했다. 2009년 겨울, 김소은 씨(고려대·21)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후배가 전달한 곽봉석 씨(고려대·25)의 메시지였다. '농사짓고 싶으면 같이 하자.'

소은 씨는 다른 대학생들과 달리 농사를 짓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멋있을 것 같았다. 소은 씨는 봉석 씨가 주변 친구들과 만든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하 씨앗들)'에 합류했다.

이 소식을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한테 전했다. 새로운 캠퍼스 생활을 꿈꾸던 김은하 씨(고려대·24)가 '씨앗들'을 찾아갔다. 은하 씨를 따라 간 이지은 씨(이화여대·24)는 텃밭농사 짓겠다고 휴학했다.

지은 씨의 친구 윤지 씨는 텃밭에 놀러갔다가 지난 8월 말엔 책까지 냈다. 책 제목이 '청춘액션플랜', 부제가 '캠퍼스 비밀 삽질 프로젝트'다. 윤지 씨는 "씨앗들이 몸으로 쓰고, 황윤지는 글로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첫 멤버가 7명이 모두 도시사람이에요.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었죠. 조그만 텃밭이라 생산성은 떨어졌지만, 느끼는 가치는 높았어요. 일한 만큼 얻는 게 있었어요. 육체노동이 주는 즐거움이랄까요? 성장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어요."

'느껴보지 못한 경험'은 입 속에서도 일어났다. 갓 딴 작물에서 원래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 당근 잎이란 것을 키워 먹어봤을 때, 만화 <요리왕 비룡>에서나 나오는, 흑룡이 승천하고 봉황 날개 짓 소리가 들리는 맛의 경지를 느꼈다"고 봉석 씨는 예찬했다.

◇레알텃밭학교에서 '스푼걸즈'까지 느린 신드롬=15일 기준으로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온라인카페(http://cafe.naver.com/waithongbo) 회원은 386명이다. 초창기 멤버는 7명 중 4명이 졸업해 3명만 남았지만, 새로운 멤버가 그 이상 늘었다.

그 사이 '씨앗들'은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에 방과 후 교양강좌까지 개설했다. 강좌이름은 '레알텃밭학교'다. 커리큘럼은 학생들이 짰고, 강사는 귀농운동본부 등 각 분야에서 초빙했다.

수강생들은 각자 자신의 학교에 빈 땅을 찾아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변변한 농기구도 없었다. 이대생들은 심지어 첫 삽을 '숟가락'으로 떴다. 그래서 모임이름이 '스푼걸즈'다. 다른 학교 멤버들이 그 땅에 다 함께 찾아가 거름을 뿌렸다.


올해 들어 '씨앗들'은 더욱 퍼져나가고 있다. 서울대·전북대·한밭대 등 대학생들의 문의뿐 아니라 서대문구청 등 지자체의 공동사업 제안도 들어온다.

오는 17일 오후 3시엔 상자텃밭을 나눠주는 이벤트가 열린다. 장소는 서울 연세대 캠퍼스, 참가비는 무료다. 텃밭 가꾸는 법도 현장에서 들을 수 있다.

윤지 씨는 "도시농업이 뭔가 새로운 개념처럼 들리지만 사실 도시사람들도 텃밭 없이 산 건 얼마 되지 않았다"며 "도시가 발달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된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보면 한국의 식량자급률이 26%로 낮아진 것도 최근 일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자기 집 옆에 작물을 심었지, 농사짓겠다고 농촌에 가지는 않았잖아요. 내 집 앞, 골목어귀에 화분 놓고도 심었죠. 그냥 거기에 사니까 거기서 키우는 게 농사인 것 같아요. 그걸 도시에서 하면 도시농업이고요."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씨앗들)' 멤버들이 직접 키워 수확한 감자를 삶아 간식으로 먹고 있다. ⓒ씨앗들

[팁]<청춘액션플랜>의 저자 황윤지 씨가 제안하는 도시농업

◇내게 가까운 곳에 텃밭을 둔다. 아파트 거주자는 베란다, 주택 거주자는 앞마당, 대학생은 캠퍼스 등 실제로 오래 머무는 공간에 둬야 작물을 자주 들여다볼 수 있다.

◇땅이 없다면 상자나 비료포대에 흙을 담아 텃밭을 만든다. 상자텃밭에선 상추 등 뿌리가 얕은 작물이, 포대텃밭에선 감자 등 뿌리가 깊은 작물이 자란다. 생선 등 식품을 포장할 때 쓰는 스티로폼 상자는 보온력이 좋아 작물을 잘 키운다.

◇토종 종자를 뿌린다. 대부분의 종묘사에서 파는 몬산토의 불임 종자 'F1'은 채종 즉 씨앗을 받을 수 없다. 채종을 할 수 있는 종자를 키우면 다음해에 다시 씨앗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 토종 종자는 귀농운동본부 등 각 기관이 운영하는 도시농부학교에서 구할 수 있다.

◇거름을 만들어 뿌린다. 농약, 제초제나 화학비료 없이 작물을 키우면 땅도 살고 작물도 살린다. 도시에서 구하기 쉬운 유기비료는 오줌 발효액이다. 오줌을 페트병에 받아 밀폐시키면 영롱한 갈색 빛깔의 액체비료가 된다.

◇작은 텃밭이라 해도 3년 주기로 작물의 종류를 바꿔준다. 같은 작물을 매년 심으면 지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땅콩은 지력을 높여주는 작물이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를 만나 지식과 경험을 교환한다. 교육은 레알텃밭학교, 도시농부학교, 생태귀농학교 같은 곳에서 진행한다. 이 중 레알텃밭학교는 무료다. 자세한 안내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온라인카페(http://cafe.naver.com/waithongbo)에서 볼 수 있다.

◇도시농업, 텃밭 가꾸기는 책으로 배울 수도 있다. 초보자에게는 <나의 애완텃밭 가꾸기>, 주말농장이나 귀농희망자에게는 <텃밭백과>를 추천한다.

↑고려대 정문 근처 노상텃밭. ⓒ 이로운넷 유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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