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가 난 달은 전세를 끼고 산 강남구 대치동 139㎡ 아파트 담보대출 이자를 내기도 빠듯하다. 월세를 놓은 강남구 역삼동 소형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임대수입이 없었다면 대출이자가 부담돼 이 아파트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씨는 자신의 대치동 아파트 인근에 109㎡ 아파트 전세를 얻어 어머니(76) 부인(52) 아들(27)과 함께 거주한다. 아들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교 4학년에 복학해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내집 없이 전세살이를 하던 당시 퇴직금은 금세 바닥났고 부인이 새벽까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해 벌어온 돈으로 온 가족이 근근이 생활했다. 지금도 IMF 외환위기를 떠올리면 악몽을 꿀 정도로 '40대 초반 예기치 않은 퇴직'은 그에게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로 남아 있다.
재취업에 번번이 실패한 그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도 곧 퇴직시점이 찾아올 게 뻔했고 다시는 직장을 잃는 두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적게 벌더라도 내 일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정씨는 시험을 준비한 지 1년6개월 만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해 2002년 사무실을 열었다. 퇴직 후 4년 만에 본의아니게 등을 졌던 사회로 돌아온 셈이다.
남들보다 먼저 찾아온 퇴직과 4년의 공백은 무척 힘겨웠다. 새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은행에 남았던 동료들이 마냥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재 그는 웬만한 동료들을 역전했다고 자부한다.
몇년새 임원 승진에서 '물 먹고' 퇴직한 동료가 점점 늘고 있어서다. 은퇴는 빠르지만 재취업은 결코 쉽지 않은 나이. 이제서야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겠다"며 학원에 다니는 동료도 여럿이다. 이들은 요즘 강남에 사무실을 내고 탄탄히 자리를 잡은 정씨를 가장 부러워한다.
정씨는 매출부진을 털고 하루가 다르게 사업이 번창했으면 좋겠다. 또 더도 덜도 말고 앞으로 10년만 더 사무실을 운영하며 내일을 하고 싶다. 65세까지 일하며 자금을 마련해 풍족한 노후를 즐기는 것이 그의 인생 최종 목표다.
"내집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부인의 소원도 하루빨리 이뤄주고 싶다. 정씨 가족은 2005년 꿈에 그리던 강남에 내집(대치동 139㎡ 아파트)을 마련했지만 자금이 부족해 전세를 놓고 아직까지 입주하지 못하고 있다.
아들이 대학원을 마치고 취직 후 결혼한다고 나서면 소형아파트라도 1채 사주고 싶다. 이는 중개업소를 개업하면서 정씨가 세운 목표 중 한 가지이기도 하다. 서울 산동네 단칸방을 전전했던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뿐인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하다.
마지막으로 2009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부쩍 외로워하시는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2011년 9월 정씨의 노트에 적힌 5가지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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