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는 유럽위기, 만만찮은 4가지 고민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 2011.09.05 11:54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유럽의 국가채무 문제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스는 올해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고 이탈리아는 이미 의회를 통과한 재정긴축안을 대폭 완화해 주변국의 우려를 사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위기 조짐이 있는 회원국의 국채를 매입하면서 유럽 채무위기는 일단 잠잠하지만 ECB도 마구 돈을 풀어 국채를 무한정 살 수 있는 '화수분'은 아니다. 다시 재점화되는 듯한 유럽 채무위기와 관련해 4가지 핵심 이슈를 짚어본다.

◆ECB, 최후의 자금 공급자(Last resort)?
ECB는 지난 8월9일부터 지난주까지 1150억유로를 투입해 국채를 매입했다. 지난해 5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결정한 뒤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국채를 740억달러 매입한 것보다 더 많은 규모다.

ECB의 국채 매입은 인플레이션 방어자로서 ECB가 유지하고 있는 신뢰성의 기반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현재 ECB의 궁극적 목표는 인플레이션의 안정적 유지가 아니라 유럽 국채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최후의 자금 공급자 역할로 간주될 정도다.

더 큰 문제는 국채 매입 대상이 되고 있는 국가들이 필요한 긴축 조치를 이행하지 않아도 ECB가 제재할만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지난주말 이탈리아에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엄중 경고하면서도 국채 매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실질적 제재 조치는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ECB는 현재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국채 매입을 중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탈리아 유니크레딧의 루카 카줄라니는 "유로존 문제 국가들의 국채에 매수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지 않으면 투자자들의 열정은 재빨리 식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CB의 자금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도 고민이다. 지난 6월말 현재 ECB가 유로존 은행에 대출해준 돈은 총 4180억달러이며 이 가운데 3분의 2 가량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4개국 은행에 집중돼 있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ECB의 자금 충당은 불가피해 보인다며 ECB가 유로존 회원국에 자금 충당을 요구하는 순간 유럽 통화정책 연합의 기반인 ECB의 독립성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FSF가 대안인가
ECB의 희망이라면 국채 매입의 짐을 빨리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 넘기는 것이다. 유로존 정상들은 지난 7월21일 회의에서 EFSF의 국채 매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EFSF의 역할을 확대하는 개정안은 현재 각 회원국 의회의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각 회원국 의회의 비준이 마무리되는 10월말이 되면 EFSF의 규모는 현재 2550억달러에서 4400억달러로 늘어난다. 문제는 이 자금이 벌써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온다는 점이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수익률이 고공행진을 계속하면 EFSF 기금이 1조5000억달러까지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FSF는 독립적인 기관으로 자체적으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이자 비용을 낮추기 위해 AAA 등급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유로존 핵심국가인 독일과 프랑스가 AAA 등급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EFSF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대해서도 국채 매입을 비롯해 자금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면 이는 EFSF 국채에 보증을 서야 하는 프랑스의 잠재 채무를 국내총생산(GDP)의 12.7%까지 끌어올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프랑스는 미국처럼 신용등급을 강등당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EFSF의 마지막 보루는 다시 독일만의 몫으로 전가된다. 독일이 이런 상황을 감내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유로본드, 기대만큼 효과 있을까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로존 전체의 책임으로 채권을 발행, 그리스나 포르투갈 같은 국가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유럽 위기의 궁극적 해법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른바 유로본드다.

이에 대해 독일과 네덜란드, 핀란드는 확고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까지 포괄하는 공동 채권인만큼 국채수익률이 AAA 등급보다 높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해 결과적으로 자국의 이자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용평가사 S&P는 유로존 회원국 공동 명의로 유로본드를 발행한다면 회원국 가운데 가장 신용등급이 낮은 국가의 등급이 부여될 것이라고 밝혔다.

S&P의 모리츠 크래머 유럽 신용등급 담당 이사는 "독일이 27%, 프랑스가 20%, 그리스가 2%를 보증하는 유로본드가 발행된다 해도 그리스의 신용등급인 CC 등급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긴축 약속 어겨도 제재 수단 없는데...
호아킨 알무니아 유럽연합(EU) 경쟁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3일 CNBC와 인터뷰에서 유럽이 좀더 확대된 재정 및 정치연합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며 유로존 정상들이 수개월 내에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리오 몬티 전 EU 집행위원도 CNBC와 인터뷰에서 "유럽에 강한 정치적 리더십이 부족하다"며 "우리가 한 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재정 및 정치 연합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유로본드를 발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인데다 현재로선 구제금융을 받는 국가가 재정긴축 약속을 어겨도 뚜렷한 벌칙이 없기 때문이다.

트리셰 총재는 이미 지난 6월에 예산권은 없지만 회원국의 재정 및 경쟁정책을 감독할 유럽 재무장관직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유럽 재무장관의 감독 결과 회원국이 재정건전성 규율을 어겼다는 결론이 나오면 벌금을 부과하자는 구체적인 제재안에 대해서도 의견이 제기됐다.

디디에 레인데르스 벨기에 재무장관은 "유로존에 (통화정책 통합체로서) ECB가 있지만 예산 측면에서 실질적인 통합 조직은 없다"며 "유로존 차원에서 재정 측면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황재균과 이혼설' 지연, 결혼반지 뺐다…3개월 만에 유튜브 복귀
  2. 2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3. 3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4. 4 박수홍 아내 "악플러, 잡고 보니 형수 절친…600만원 벌금형"
  5. 5 "노후 위해 부동산 여러 채? 저라면 '여기' 투자"…은퇴 전문가의 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