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방풍림' 절실…G20서도 토빈세 이슈화 전망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11.09.05 05:36

[한국 증시 개조 프로젝트 'WHY&HOW' ⑧외국인자금]

-과도한 핫머니 유출입 제동 필요성…글로벌 트렌드 변화
-"자본규제국 이미지 최소화, 지금이 논의 적기" 학계 주문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 증시선 부정적

지난 8월 대한민국 증시는 우리 손 안에 없었다. 2200에서 1700까지 코스피지수의 1/4이 날아가는 동안 증시는 철저하게 외국인 손에서 놀았다.

외국인에게 한국시장은 급할 때 손쉽게 돈을 뺄 수 있는 '아시아의 현금 인출기(ATM)'라는 말까지 나왔다. 금융계에선 이런 달갑지 않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금융거래세(토빈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토빈세는 단기투기성 자금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예일대 교수 제임스 토빈이 1972년 실질적인 생산을 동반하지 않는 투기성 자금거래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처음 제안했다.

◇ "천수답 증시…핫머니 유출입 조절해야"

시장 안정을 위해 급속한 핫머니(단기투기자본) 유출입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게 토빈세 도입 찬성론의 핵심이다. 외국자본 쏠림 현상이 강한 국내 상황에선 특히 과도한 자본변동을 조절할 적절한 '장치'가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의 주식소유 제한이 없어지면서 국내 증시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3%까지 늘어난 상태다. 아시아 최고 수준인 것은 물론, 미국(13.6%), 일본(26.7%)에 비해서도 높다.

하성근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은 "사실상 천수답 증시인 셈"이라며 "개방도가 높은 만큼 핫머니 유출입에 따른 부작용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크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증시에 그치는 않는다는 데 있다. 증시가 외국인에게 휘둘리게 되면 경제도 정상적으로 운용될 수 없다. 주가폭락으로 기업이 자금 유동성에 악영향을 입으면 고용과 생산이 위축된다. 외국인이 한꺼번에 자금을 회수하기라도 한다면 외환위기라는 최악의 사태가 재발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하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두 차례의 위기가 반복됐던 배경에는 과도한 외국자본의 쏠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경제계서도 "조건부 도입 검토 필요"

대기업 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경제계에서도 토빈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달 17일 '미국 신용등급 하락 이후의 국내외 경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조건부 금융거래세(토빈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건부 토빈세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사전에 정한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유입되면 미리 정해둔 세율로 과세해 유입량을 조절하는 제도를 말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낮지만 국가부채 리스크 확산 등으로 당분간 금융시장 불안은 계속될 우려가 높은 만큼 대책을 마련해둬야 한다는 얘기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외국인 자금이 과도하게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채권시장에 조건부 토빈세를 우선 도입하고 필요할 때는 주식시장에 확대 적용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국제사회 '자본 규제' 변화 조짐

글로벌 금융위기 확산의 출발점인 유럽에서도 토빈세 논의가 한창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오는 11월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토빈세를 핵심의제화하겠다고 밝혔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16일 정상회담에서 이미 토빈세 도입에 합의한 상태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토빈세에 적극적인 찬성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토빈세 도입에 대한 유럽의회의 찬반투표에서는 찬성 529표, 반대 127표라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표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었지만 다수의 국가가 토빈세 도입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최근 프랑스와 독일이 토빈세 카드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데도 유럽의회의 지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자본의 자유화를 주도해온 국제통화기금(IMF)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핫머니 유출입을 규제하는 자본통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도 최근 국제사회의 변화 추세를 보여주는 신호 중 하나다.

한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고 했지만 지난달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자 제일 먼저 유럽계 자금이 대거 빠져나갔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 "은행세만으로는 부족…직접 규제 필요"

토빈세 도입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올해 초에는 토빈세 문제로 서울 외환시장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월24일 은행세와 토빈세를 혼동해 토빈세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자료를 냈다가 부인하는 해프닝을 빚으면서 그렇잖아도 리비아 사태로 급등하고 있던 원/달러 환율이 훌쩍 뛰었다.

토빈세 반대론을 펴는 쪽에선 이런 부작용을 최대 걸림돌로 지적하고 있다. 토빈세를 도입하면 자본통제국으로 인식되고 국제 자본은 토빈세가 없는 국가로 빠져나가게 된다는 얘기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화 유출입 문제는 거시건전성 강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지 규제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다"라며 "개방체제를 거스를 수 없는 한 토빈세 논쟁은 철 지난 얘기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토빈세 논쟁이 다시 불거지는 것은 지금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에서다. 현재 금융당국은 지난해 6월부터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과세 부활, 은행의 비예금 외화부채 잔액에 대한 부담금(은행세) 부과 등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토빈세 검토를 주장하는 입장에선 대형 금융사가 쓰러지면 공적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은행세만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높게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 교수는 "한국이 자본통제국으로 오해받지 않으면서 토빈세 도입을 논의하자면 유럽 등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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