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 낙관주의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 2011.09.03 11:10

[머니위크]청계광장

올해 유난히 투자조언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곤혹스러웠다. 청중들은 투자에 대한 얘기 가운데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그 결과 투자에 실패했을 때 주창자나 조언자에 탓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경험 덕에 투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투자 관련 토론에 참여하거나 투자조언을 요청받을 때는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 이도저도 아닌 얘기로 눙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래 전망과 관련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올해 내 입장은 분명했다. 현재의 글로벌 경제상황은 여러 요인과 지역의 불균형 요인이 결합된 결과다. 따라서 경기회복보다는 불확실한 저성장 경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런 장세에서는 돈을 벌기란 극히 어렵다. 따라서 올해는 장을 떠나는 것이 두발 뻗고 자는 길이다. 이런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8월 금융불안이 현실화되기 전까지 이 주장은 (극)소수 의견이었다. 곳곳에서 면박 당하기 일쑤였다. 공적인 토론 자리만이 아니었다. 대학동창 10명 남짓이 모인 사석에서는 ‘주식시장에 대해 뭘 모르는 한심한 소리’ 정도로 치부됐다. 이 자리는 한 투자자문사 사장 친구가 던진 한 마디로 정리가 됐다. "대부분이 비관적인 얘기를 할 때가 바로 살 때다."

사실 이 말이야말로 올해 증시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장참가자들은 연초부터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대놓고 입 밖에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전문가건 보통 투자자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상반기까지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금융불안이 가시화된 후 나온 전망도 마찬가지다. 주가가 한단계 가라앉을 때마다 ‘지금이 주식을 싸게 살 기회’라는 주장이 판을 쳤다. 이는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험이 바탕이 된 전망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망을 한 이들은 편리하게도 추락한 시장은 되살아나지만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우리 증시에는 ‘고질적 낙관주의’(chronic optimism)가 팽배해 있다. 증시가 좋건 나쁘건 상관없이 낙관적인 전망이 주를 이룬다. 증시가 급격히 추락할 때마저 그렇다. 그런 점에서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고질적 낙관주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증시가 이번 금융불안 상황에서 주요국 증시 가운데 최악의 추락을 경험하게 한 주범 가운데 하나다. 낙관주의가 지나치게 팽배해 있다고 치자. 이럴 때 냉혹한 현실이 본모습을 드러내면 시장은 더욱 크게 흔들리는 법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한국증시의 민감성을 설명하는 요소로 수출 의존적인 경제구조와 높은 외국인 지분율, 그리고 효율적인 자본시장만을 꼽을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증시는 왜 유독 터무니없이 낙관적인가? ‘낙관주의 동맹’과 ‘집단사고’(group think)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우리 증시에는 투자자-증권사-금융당국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낙관주의 동맹이 있다. 주가가 오를 때뿐만 아니라 주가가 오른다고 할 때 이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집단들이다. 반면 누군가 나서서 비관적인 얘기를 하면 모두가 어색하고 불편해지는 구도다. 오랫동안 부동산에 비해 홀대받던 주식에 대해서는 증시참가자 전체가 힘을 합쳐 예찬론을 펴는 일이 다반사였다.

집단사고란 구성원들이 지나치게 동질적일 때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집단 병리현상을 말한다. 증시 추락이 시작되기 전 규모가 꽤 큰 투자포럼의 토론 사회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참석 패널들 가운데는 사적으로 시장을 비관적으로 보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증권사 대표들을 포함해 우리 증시의 주역들이 대거 참석한 이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전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토론을 정리해야 하는 나 자신도 ‘글로벌 경제의 불안 요인은 많지만 우리 증시는 안정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두루뭉수리 하게 마무리하고 말았다. 한달여 만에 20% 이상이 빠진 우리 주식시장에서는 아직도 고질적 낙관주의가 꼬리를 내리는 법이 없다. 현실에 부합했건 아니건 다른 목소리를 낸 이방인은 여전히 동창들과 전문가들로부터 눈 흘김을 당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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